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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슬리피, 우리는 왜 래퍼의 노래에 놀랄까?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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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슬리피, 우리는 왜 래퍼의 노래에 놀랄까?

 

흔히 래퍼라고 하면, 엠넷 <쇼미더머니> 속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그려진다. 강해보이는 외모와 건들거리는 자세, 그리고 도발적인 시선까지. 그들의 입에선 당장이라고 속사포 랩이 이어질 것만 같고, 중간 중간 한 두 마디의 욕이 튀어나온다 한들 이를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가 진지하게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거나 감성에 젖어 음을 읊조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무슨 래퍼라며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실제로 각종 힙합프로그램에서 랩이 아닌 노래를 부른 참가자들은 당장 래퍼의 자격이란 이름의 단두대에 올라 대중의 심판을 견뎌야만 했다.


랩도 노래도 결국은 하나의 음악일 뿐인데, 언제부턴가 노래는 보컬리스트가 랩은 전문적인 래퍼가 하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분업과 협업이라면 모르겠는데, 마치 이게 밥그릇지키기나 혹은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지는 걸 보면, 이 또한 지독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령, MBC <복면가왕>에 출연한 래퍼들의 노래에 우리가 놀랐던 이유를 생각해보자.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 샵의 장석현, 치타와 쌈디, 그리고 지난 1일 출연했던 언터쳐블의 슬리피까지. 공통된 반응은 대부분 이들이 이런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는 놀라움이다.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예상하기 어렵고, 예측의 범위를 벗어나 정체가 드러나니 그 충격이 배가 되는 것이다.

 

물론, 래퍼가 가장 잘하는 것이 랩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래퍼라고 해서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법도 없다. 더구나 그게 단순한 편견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이라면, 그 벽은 당연히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컬리스트도 랩을 하고, 래퍼도 노래를 부를 때, 음악은 더욱 풍성해지고, 무대 위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분명 다양해질 것이다.

 

 

 

 

<복면가왕> 흥행 이후 요즘 음악예능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가수와 일반인이 짝을 이뤄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장르를 바꿔 부르는 등 다양한 변주 방식이 선을 보이면서 볼거리가 많아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예능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비슷비슷한 가수들이 반복해서 모습을 비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들이 선보이는 노래와 무대가 뛰어나다는 것은 알겠는데, 크게 놀랍거나 또 찾아봐야겠다는 생각 또한 들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복면가왕>에서 래퍼가 노래를 부를 때 놀랐던 그런 정서적인 충격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각종 음악예능에서 보여주고 있는 음악적 서사MBC <나는 가수다>에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음, 전조, 장르파괴 등등.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나는 가수다>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TV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가수들을 한자리에 초대에 무대를 꾸몄기 때문이다. 쉽게 볼 수 없었던 얼굴을 섭외한 것도 주요했다.

 

<복면가왕> 역시 마찬가지다. 넘쳐나는 음악예능의 홍수 속에서 이 프로그램이 굳건한 이유는 바로 <복면가왕>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래퍼가 선보이는 노래가 대표적이다. 래퍼들이 모여 랩 대결을 벌인다는 상상은 가능했지만 그들이 가수들과 노래 대결을 펼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예상을 벗어날수록 그 충격과 놀라움, 그리고 재미는 배가 된다.

 

래퍼의 노래에 놀랄 수 있는 이유, <복면가왕>의 진짜 경쟁력, 그리고 숨어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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