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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녀석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유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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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녀석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유

 

한 여자가 납치를 당한다. 방안에 감금된 그녀는 범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 112에 전화를 건다.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본인이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과 감금된 위치를 경찰에게 전한다.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상황, ‘제발 빨리 좀 와달라’고 애원하는 그녀에게 경찰은 이렇게 말한다.

 

“네? 거기가 어디라구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여보세요? 지금 계신 곳이 어디죠?….”

 

이렇듯, OCN <나쁜 녀석들>은 공권력의 무능과 한계, 그리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이야기의 기제로 삼는다. 법과 정의는 늘 옳고 우리를 지켜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드라마는 전제하고 출발한다.

 

 

 

 

‘악을 응징하는 것은 법이 아닌 또 다른 악’이라는 설정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다소 발칙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영화 같은 연출, 그리고 탄탄한 극본이 어우러지면서 또 하나의 명품 스릴러 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대체, 왜 시청자는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일까?

 

“저들은 이미 짐승인데, 어떻게 인간으로 상대를 한단 말입니까? 똑같은 짐승이 되어 상대하지 않으면 그저 잡아먹힐 뿐입니다.” 과거 어떤 이유에서 정직을 당한 형사 오구탁(김상중 분) 반장은 딸을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스스로 ‘미친개’가 되길 마다하지 않는다. 법의 심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선 그들에 버금가는 나쁜 놈들을 앞세워 ‘사냥’에 나서야 한다는 게 오구탁 반장의 지론이다. 바로 악을 악으로써 응징해야 한다는 것.

 

흥미로운 건, 이런 오구탁 반장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게 바로 경찰청장이란 사실이다. 남구현(강신일 분) 청장은 한평생 법과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온 인물이지만, 잠복근무 중이던 부하 직원이 연쇄 살인마에게 살해당한 후, 자신의 소신이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법과 정의만으로는 나쁜 놈들을 잡을 수도 없고, 또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도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남 청장의 부름으로 다시 현업에 복귀한 오 반장은 본격적인 특별 팀 구성에 나서고, 여기에 조폭 박웅철(마동석 분), 살인청부업자 정태수(조동혁 분), 연쇄 살인범 사이코패스 이정문(박해진 분)이 팀원으로 합류한다. 오구탁이 이들 세 사람에게 내건 조건은 매우 간단하다. 나쁜 놈들을 잡을 때마다 이들의 형량을 감량해주는 것. 태어나 착한 일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 세 사람은 감형이라는 목표를 위해 하루아침에 나쁜 놈들을 잡아들이는 ‘정의의 사도’로 변신하다.

 

“착한 놈을 패면 폭력이지만 나쁜 놈을 패면 정의”라는 대사처럼, 선과 악 그리고 폭력과 정의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느냐에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게다가 사회적인 질서와 법체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릴 경우, 그간 우리가 믿어왔던 ‘진실’과 ‘정의’는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된다. 과연 우리사회에서 법으로 심판하지 못할 일들이 생겼을 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울분을 가져보지 않은 자가 있을까?

 

이 드라마에 쏟아지는 호평은 바로 대중들의 철저한 ‘대리만족’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사건 해결에 나서는 당사자들이 ‘나쁜 녀석들’이라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녀석들보다 더 나쁜 놈들을 잡아들이는 과정은 통쾌하기 그지없다. 법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돈의 위세에 정의가 꼬리를 내리는 현실에서, 오로지 악당을 잡기 위한 일념으로 발톱을 치켜세우는 이들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처음에는 피해자의 생사 따윈 전혀 관심 없고, 그저 자신들의 감형에만 힘을 쏟던 이들이 조금씩 인간다움을 되찾는 과정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우리는 흔히 선거를 정의함에 있어 ‘최악이 아닌 차악을 뽑는 선택’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렇다면, 정치 역시 ‘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 사이의 싸움이 아닐까. 악으로 악을 응징한다는 이 드라마 속 설정은 분명 논쟁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따지고 보면 ‘덜 나쁜 정치인’을 지지함으로써 ‘더 나쁜 정치인’의 당선을 막으려는 우리의 정치적 행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의미며, 또 정치적 자양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마찬가지로, 악으로 악을 응징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사회 시스템이 부실하기 때문이며, 법과 정의에 대한 불신의 반작용 때문이 이 아닐까 싶다.

 

<무한도전>에 이어 매주 토요일 저녁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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