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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친 정형돈의 한마디, 예능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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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친 정형돈의 한마디, 예능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

 

"아니 좀, 근로기준법좀 지켜주세요..." 지난 11일 방영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정형돈이 내뱉은 한마디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이날 제작진은 예체능 멤버들에게 게릴라 테니스를 제안했고, 만약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퇴근이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멤버들이 테니스 시합에서 이길 때까지 밤샘촬영도 강행할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던 셈이죠. 당시 정형동은 예능이라는 상황에 맞춰 "근로기준법을 준수해 달라"고 농담을 건넨 것이었지만, 그의 한마디는 결코 웃음로만만 넘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바로 11월 13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4년전, 20대 초반의 꽃다운 청년이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품에는 근로기준법이 적힌 책이 안겨 있었고, 그는 불에 타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하라"고 외쳤습니다. 

 

맞습니다. 11월 13일. 오늘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지 꼬박 44해째 되는 날입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사회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노동자들의 인권 역시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반백년이 지난 우리의 사회는 지금 어떤모습인가요?

 

지난 10월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했으며, 지난 7일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그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로는 평소 아파트 주민들의 폭언과 모멸감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바로 어제인 12일에는 LG유플러스에서 일하던 한 30대 상담원이 회사의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청년유니온 주장에 따르면 목숨을 끊은 상담원은 일정한 판매량을 채우지 못하면 퇴근하지 못하는 등 실적압박을 강제하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직무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중소기업 중앙회 기업 대표들의 CEO 교육 연수를 담당했던 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으며, 지난 6일에는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근로자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시도한바 있습니다. 이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지난달 23일 울산지방법원이 이 노동자를 포함한 조합원 122명에게 현대차에 70억원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땀흘려 일한다는 것은 신성한 의무이며, 노동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가치를 가집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배워왔고, 또 우리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44년 전이나 또 지금이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1970년에 비해 우리 사회는 분명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당시 군부 독재 정권 아래에서 살았던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제도를 성공리에 안착시켰으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변모하였습니다.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눈부신 성장을 거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발전한 것일까요? 그런데 왜이렇게 끊임없이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비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이어가는 것일까요?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전태일 평전을 보면 당시 전태일은 '인간의 나라'를 바랐다고 합니다. 약한자도 강한자도, 가난한자도 부유한자도, 천한자도 귀한자도 모두 차별 없는 그러한 평등한 세상을 꿈꿨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꼬박 44년. 그가 꿈꿨던 세상은 여전히 요원해보이기에 오늘은 유난히 춥습니다. 단지 한파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따뜻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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