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리뷰토피아

[좌충우돌 상경기]5. “아따~ 교양있는 서울사람 되기 힘들당께~”

살아가는 이야기/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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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지금까지, 29년이라는 삶을 살아오며 한 번도 전라도를 벗어나 본적 없는 ‘촌놈’이 2011년 3월, 큰마음 먹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지역 출신들이 그러하듯, 직장생활을 이유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지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곳 서울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이야기를 <좌충우돌 상경기>에 풀어내도록 하겠습니다.










개그 프로그램의 아이템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사투리’입니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인기 코너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메이트’ 역시 ‘사투리’에 웃음 코드를 두고 있는데요. 이른바 ‘사투리 개그’는 ‘사투리’ 그 자체에서 오는 웃음이 있는가 하면,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사투리 본능’이 더 큰 재미를 유발하곤 합니다. ‘서울 메이트’ 의 웃음코드 역시 이런 식의 ‘사투리 본능’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 같이 웃고 즐기는 ‘사투리’가 때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는데요. 'in서울'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단어와 억양에서 ‘출신성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저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평소 글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표준어와 맞춤법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보다 앞서는 건 늘 본능이죠. 숨길 수 있는 ‘사투리 본능’이 튀어 나올 때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예를 들어, 상사의 지적에 무슨 해명을 하려하려고 하면, 늘 “긍게(그러니까)”가 먼저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올린 보고서나 혹은 기획안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저도 모르게 약간 흥분이 되어 말을 빨리 하려 하고, 그러는 도중에 사투리가 먼저 튀어 나오는 경우인데요. 제 입에서 “긍게”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바로 무서운 매의 눈으로 저를 노려봐주는 상사의 하예와 같은 은덕으로 지금은 그나마 “긍게”를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긍게”만 제외한다면 전라북도 출신인 제가 쓰는 사투리는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북도가 남도에 비해 사투리에서 자유로운 까닭도 있겠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대중매체의 영향과 잦은 문화교류 등으로 인해 지방과 서울의 언어 환경의 차이가 별다를 게 없는 상황이 돼버리기도 했으니 말이죠.



또한, 같은 회사 내에 ‘순도 100%’의 경상도 억양을 구사하시는 분이 계셔서 으레 사투리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그분이 주목을 받는 편입니다.

 


심지어, 회사동료들로부터 “00씨는 사투리를 하나도 안쓰것 같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실상 언어에 있어서는 이미 ‘교양있는 서울 사람’이 다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 근저에는 그동안 쭉 글을 써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표준어와 맞춤법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부심도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전라도 출신임을 만천하에 공개하게 된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사동료들이 ‘순도 100%’의 경상도 억양을 구사하시는 분과 저를 비교하며, 경상도 분에게 사투리를 좀 줄이라고, 억양을 좀 고쳐보라며 장난을 치던 날이었습니다.

 



유독 그날따라 사투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고, 상대적으로 저의 ‘올바른 언어 습관(?)’이 칭찬으로 승화되는 그런 시간이 죽 이어졌습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저는 그렇게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방심이 그날 사건의 전주곡이 될 줄, 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자꾸 어떤 분이 저에게 같은 업무를 중복해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업무 지시를 받고 바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 됐어?” “언제 돼?”, “빨리 빨리~”를 외치는 것입니다. 분명, 10, 20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고 저 역시 다른 업무를 미루고 그 업무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그런 저를 보고 있으면서도 굳이 “다 됐어?” “언제 돼?”를 반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흥분모드’로 모드 전환을 마친 제 입에서 한마디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따~ 지금 하고 있는거 빤히 보면서 왜 자꾸 보챘싼다요~ 제가 알아서 한당께요~”

 



순간, 시간이 멈췄다고 느낀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아따’......‘보챘싼다요’.....‘한당께요’.........와 같은 단어들이 사무실 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본 것은 저만의 착시였을까요....



 

십 수 명의 눈빛이 저를 향했고, 그 눈빛들 덕분에 ‘흥분모드’가 해제된 저는 다시 한 마리의 순한 양이 되어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습니다”라는 아주 똑바른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날 이후 저는 ‘어쩔 수 없는 지방인’이란 꼬리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분명, 서울말은 끝에만 올리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게 참,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역시나 교양있는 서울사람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서울 메이트>에서 완벽한 서울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오는 허경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제가 쓰는 언어에는 그동안 제가 살아온 생활방식과 문화가 녹아있는 만큼, 굳이 잘 되지 않는 표준어를 억지로 고집해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뭐라 해도 자연스러운 것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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