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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발언 논란, 진짜 문제는 제작진이다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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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발언 논란, 진짜 문제는 제작진이다

 

생방송이 아닌 이상 ‘방송사고’급의 발언이나 장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을 통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화제를 불러 모으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침대 발언’으로 성희롱 논란이 불거진 <매직아이>속 곽정은의 경우는 어디에 해당될까. 먼저 논란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4일 방영된 <매직아이> 게스트로 초대된 곽정은은 함께 출연한 장기하와 로이킴을 향해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곽정은은 장기하를 향해 “이 남자는 침대에서 어떨까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고, 로이킴을 향해선 “키스 실력이 궁금한 남자”라고 표현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이날 곽정은의 발언은 충분히 성희롱에 해당할 만큼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역으로 생각해서, 남자 출연자가 여자 게스트를 향해 “침대에선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거나 “키스 실력을 알고 싶다”와 같은 발언을 했다면, 아마 그 남자 출연자는 대국민사과를 해야 할 만큼의 후폭풍에 시달렸을 것이다.

 

 

 

 

<매직아이>는 <마녀사냥>이 아니다.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시청자의 연령대도 차이가 난다. 결정적으로 <매직아이>는 공중파다. 비록 그동안 곽정은이 이와 비슷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질 만큼 개방적이고 열린 태도로 방송에 임했다 하더라도, 중요한 건 ‘때’와 ‘장소’다. 아무리 국내에서 섹스칼럼을 가장 많이 쓴 기자라 할지라도, 공중파 방송에서는 조금 더 세련된 표현과 은유적인 방식을 동원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날 그녀가 밝혔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성적인 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다른 얘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주장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그 주제가 성이 됐든, 정치가 됐든, 역사가 됐든, 혹은 예술이 됐든 뭐가 됐든, 우리 사회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또 자유롭게 소통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당장 방송 이후 논란이 일자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곽정은의 ‘19금 발언’에 대해 문제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만 봐도 그렇다. 금기된 주제 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발언을 하는 것도 또 다른 의미에서 방송인의 덕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곽정은의 19금 발언과 이번 논란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비난의 화살이 곽정은 개인에게만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이번 논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작진은 철저하게 배제된 느낌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방송사고’급의 장면이나 발언이 그대로 방영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노이즈마케팅을 통해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서 혹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선, 제작진의 그녀의 발언을 가지고 노이즈 마케팅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은 이미 폐지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논란을 자초해서 굳이 화제의 중심에 설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매직아이> 제작진은 이날 곽정은의 발언을 그리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케이블 방송 등에선 이보다 심한 발언도 농담으로 주고받을 만큼 우리 방송 환경이 변했고, 또 곽정은의 경우에는 칼럼 등을 통해 이보다 더 직설적이고 수위 높은 성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곤 했다. 때문에 제작진 입장에서는 그냥 웃고 넘길만한 농담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작진의 그런 태도는 그만큼 우리사회가 성희롱에 대해 무감각해져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성희롱 피해자들이 항의를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가해자들은 늘 “장난으로 그랬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라고 핑계를 대곤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럴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다. 아무리 농담으로 건넨 말이라도, 그게 피해자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곽정은의 ‘침대 발언’이 위험했던 것은 바로 그래서다. 의도나 재미와는 무관하게 그 발언 자체가 충분히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맥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에겐 ‘편집’이라는 고유권한이 주어진다. 편집은 방송 시간 조절을 위한 기계적 행위가 아니다. 편집 능력에 따라 방송이 더 재미있어 질 수도 있고, 또 무미건조해질 수 도 있다. 또한 편집은 일종의 필터링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것은 미리 잘라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제작진에겐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곽정은의 발언을 그대로 내보낸 제작진은, 자신들의 무능함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돼버렸다. <매직아이> 제작진은 이제 폐지라는 오명을 안고 떠날 수밖에 없겠지만, 혹시라도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또 다시 시청자를 찾아오게 된다면, 그땐 보다 더 신중하고 냉정한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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