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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버지>, '돌직구'처럼 무거운 우리시대 자화상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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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정면승부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에 묵직한 ‘돌직구’를 꽂아 넣은 셈이다. 그것도 최고 구속으로. 마운드에 선 에이스는 이게 자신의 ‘승부구’라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어서 빨리 타석에 들어서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연극 <아버지>의 제목 세 글자를 보고 느낀 첫 번째 감정이었다.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희생. 그리고 감동, 눈물 등…. <아버지>의 주제를 예상하는 것은 투아웃 풀카운트에서 1루 주자가 무조건 뛰고 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으며, 그래서 별다른 기대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 역에 배우 이순재 선생님이 나설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번쯤 그 ‘돌직구’를 타석에서 맛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필이면 또 연극을 보기로 한 4월 21일은 비가 내렸다. 동숭아트센터 동숭홀로 향하며 ‘아버지’와 참 잘 어울리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공연 팜플렛을 보니, <아버지>는 1940년대 미국 대공황기 상황을 그려낸 아서 밀러의 작품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을 원작으로 하며, 연출가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의 손을 거쳐 한국적 사회상을 담은 작품으로 재해석되었다고 한다.

 

 

문득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아버지>라는 강속구의 구질과 정체도 모른 채 삼진을 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불 꺼진 무대 위로 냉장고와 싱크대 등 주방의 모습이 보였고, 그 옆으로 침대, 그 위로 이층 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집’…. 이라고 느낀 순간 무대에 불이 켜졌고, <아버지>라는 ‘돌직구’가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던진 직구, ‘계약직’과 ‘정리해고’

 

 

평생을 외판원(방문판매원)으로 근무해온 장재민(이순재 분)은 오늘도 수백km를 달려 출장을 다녀오고, 직장인 대부분의 하루가 그러하듯, 한 잔 술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평범한 가정집 치고는 가족 분위기가 그다지 화목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갈등의 요소가 딸이 아닌 아들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실망하려는 찰나, 첫 번째 직구가 날아 들어왔다.

 

 

“기껏해야 난 계약직인데 뭘…. 두고봐, 꼭 정규직 될거니까!”

 

 

백화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딸의 대사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직업을 설정하는데 있어서도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계약직. 세 글자로 충분했다. 정규직을 꿈꾸는 모습도 영락없는 ‘88만원 세대’,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미취업자의 소원이 “올해는 꼭 취업했으면….” 이라면, 취업자의 소원은 “올해는 꼭 정규직이 되었으면….”이라는 2012년 대한민국 현실이 <아버지> 속에서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두 번째 직구는 외판원 장재민의 정리해고다. 30년을 꼬박 전국으로 돌며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했건만, 회사는 그에게 책상하나 내어주지 않는다. 여전히 아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딸은 계약직 근로자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는 상황. 돌아가는 시계 바늘을 거꾸로 부여잡는 ‘슈퍼맨’이 되어도 모자를 판에 해고라니. 비극을 향한 전주곡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멸치처럼 국물만 내고 사라진 <아버지>, 고독한 에이스의 뒷모습 

 

 

자식, 특히 아들이 잘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된 정서다. 하지만 거기에는 과잉기대가 섞이기 마련이고, 심지어 균형감각마저 잃게 만든다. 장재민은 자신의 형이 말레이시아에서 진주조개 체취로 성공한 것처럼, 아들 또한 머지않아 성공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푸른 바다”로 과감히 뛰어들어야 하는데, ‘돈’이라는 벽 앞에 부딪히고 만다.

 

 

보험금을 가족에게 남기고 자살한 가장의 이야기. 이제는 신문 사회면과 인터넷 뉴스 한 귀퉁이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사례가 되어버렸지만, 그 서사 구조를 뜯어보면 정말 슬프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세 번째 직구는 그렇게 날아들었다. 새 출발을 다짐하는 아들의 사업자금을 위해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새벽이슬처럼 사라졌다.

 

 

“끼이익~~~~~~~~~~ 쿵, 쾅쾅쾅~”

 

 

교통사고의 굉음만이 무대 밖으로 퍼져 나갔다. 유서대신 시 한편만이 ‘아버지’의 옷 속에서 나왔다. 마종기 시인의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라는 시다. 아버지의 존재를 국물만 내고 버려지는 멸치에 빗댔다. 탁월한 비유다.

 

 

삼구삼진. 주변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형용사도 부사도 동사도 필요 없었다. 오늘도 가족을 위해 세상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마운드를 지키는 에이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숭고했다. 이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아버지’, 명사 하나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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