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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억수르’, 시청자가 공감하는 이유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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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먹지 않지만 바다 고기는 좋아해요.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죠. 우유는 마시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은 좋아해요. 반딧불이는 아름답지만 모기는 잡아 죽여요. 숲을 사랑하지만 집을 지어요. 돼지고기는 먹지 않지만 고사 때 돼지머리 앞에서는 절을 하죠.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긴 싫죠. 소박하지만 부유하고 부유하지만 다를 것도 없네요. 모순덩어리 제 삶을 고백합니다”

 

지난달 이효리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이 글의 제목은 ‘모순’이다. 어디 이효리 뿐이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모순적인 삶을 살아간다. 아니, 인간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평화를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키고, 환경을 보호하자면서 자연을 파괴한다.

 

우리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비판하면서도 내 자식만큼은 일류기업에 입사하기를 희망한다. 부자를 욕하면서도 부자를 욕망하고, 정치가 바뀌길 희망하면서도 늘 똑같은 정치인에게 표를 던진다. 인간의 내면엔 동전의 양면이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모순 덩어리다.

 

 

 

 

얼마 전부터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억수르’라는 코너는 바로 이런 인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그려냄으로써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없지만 있는 척 하는 현실 속 우리들의 허세와 상류층을 욕하면서도 언제든지 기회만 된다면 그 세계로 편입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욕망을 아주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불과 3주 만에 코너별 시청률 1,2위를 다투며 시청자의 절대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코너의 주인공인 ‘만수르(송중근 분)’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절대적 부의 소유자다. 그는 부자마블 게임을 하며 뉴욕이 걸리자 곧바로 뉴욕시장에 전화를 걸어 “호텔 3개, 빌딩 1개, 별장 1개를 짓겠다”고 통보한다. 그리고 나선 “뉴욕이 생각보다 싸다”라고 웃음을 짓는다.

 

퀵 값 10만원을 ‘잔돈’에 비유하고, 모나리자를 구입한 후 “중고라 싸게 샀다”라며 여유를 부릴 줄 아는 남자. 바로, 세계적 부호인 ‘만수르’에게서 빌려온 캐릭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봉 8천만 원을 받는다는 과외선생님에게 “재능기부하러 왔냐”고 묻는 ‘만수르’는 때론 현실 감각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돈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과 행동들이다.

 

 

 

 

‘억수르’를 보고 있으면, 우리들 세계에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설정에 빠져드는 것은 바로 ‘억수르’가 누구나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꿈’같은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달 생활비 몇 십 만원을 아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우리들과 아들에게 벌을 준다며 "“아빠 돈 다 세”를 외치는 ‘만수르’. 그 간극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웃음의 강도는 높아지는 식이다.

 

때문에 ‘억수르’가 대중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대중들의 삶이 그다지 녹록치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개그로나마 허세를 즐기고, 코미디로나마 상류층의 세계를 엿보며 ‘억수르’와는 동떨어진 현실을 달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필연적으로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모순을 인정하고 살아가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다. 내가 편하면 누군가는 불편할 수밖에 없고, 내가 먹는 달콤한 과일은 누군가가 흘린 땀방울 덕일 가능성이 높다. ‘억수르’ 속 주인공처럼 부를 축적하기 위해선 분명 누군가의 노동력을 착취해야 가능한 일일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억수르’처럼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기를 욕망한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돈이 많아야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이 모순 가득한 세상. ‘억수르’가 전하는 웃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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