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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목들 종영, 해피엔딩 속 빛난 '들어주기'의 가치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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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힘없이 서로 잘 통한다’란 뜻을 가진 소통이란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신문, 방송, 그리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어떤 문제가 불거지면 그 이유를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너도 나도 소통을 부르짖고, 조직이고 개인이고 할 것 없이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소통보다는 불통에 더 가깝다. 이유는 바로 우리가 듣는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서로 잘 통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게 중요한데, 대부분의 우리는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려 한다. 서로가 서로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설 자리는 없다.

 

 

 

 

물론 소통은 어려운 일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에 등장하는 박수하(이종석 분)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낼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면 조금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의 진짜 생각을 알 수 있으니 말하기도 편할 테고,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해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하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초능력이 없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1일 방영된 <너목들> 최종회에 그 답이 있었다. 해피엔딩 속에서 막을 내린 이 드라마는 종영에 이르러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 민준국(정웅인 분)의 변론을 자처한 차변호사(윤상현 분)의 용기와 말 못하는 피고인의 변론을 위해 수화학원에 다니는 장변호사(이보영 분)의 달라진 모습을 통해 소통의 시작은 ‘말하기’가 아닌 ‘듣기’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물론 변호사에게 있어 피고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기본이다. 하지만 단순히 변론을 위해 이야기를 듣는 것과 진심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귀를 여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처음 민준국의 변호를 맡았던 차변호사가 그의 거짓말에 속았던 것과 드라마 초반 장변호사가 변론을 그저 하나의 일로만 생각했던 것은 그들의 ‘듣기’ 방법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변론을 위한 ‘듣기’로는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말의 사실여부조차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피고인의 거짓 진술에 속거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재판하는 것이 아닌 재판의 결과가 진실이 되어버리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소통을 내세우면서도 결국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만 하는 대화 속에서 ‘듣기’란 그저 ‘말하기’의 한 과정일 뿐이다. 내 입장을 내세우기 위해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척’ 할뿐,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이날 방송에서 차변호사는 연쇄살인범 민준국에게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 역시 달라졌을 거라고 믿었다. 피해자인 차변호사가 피의자인 민준국의 변론에 나선 것은 바로 아무도 민준국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끝까지 인간 대 인간으로 그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변론인조차 피고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진심이 동반되지 않는 듣기 속에서 소통이란 불가능하고, 하물며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에 불과할 뿐이다.

 

오로지 자신만 옳고, 법은 냉정해야 된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던 서도현(이다희 분) 검사는 자신 역시 틀릴 수 있음을 인정했고, 최종회에서는 살인미수로 기소될 뻔 한 수하에게 선처를 베풀기도 했다. 그녀가 “법에도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열린 귀’ 때문이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자신이 변론해야 할 피고인의 말조차 듣지 않았던 장변호사가 이제는 말 못하는 피고인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수화를 배우는 장면이었다. 어설픈 수화를 통해 “나는 당신의 입장에서 듣고 이야기 할 것”이라는 장변호사의 변화는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초능력이 없는 우리에게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소통이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여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말에 의문을 제기 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진심과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초능력이 없어도,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해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이 드라마가 굳이 초능력을 소재로 삼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제목을 사용한 이유, 결말을 통해 보니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다. 종영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너목들>이 전해준 ‘들어주기’의 가치를 다같이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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