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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4회: 신데렐라 이야기의 재해석, 현실 반영일까?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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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있어서 가난하지만 착한 여주인공이 잘 생기고 능력 많은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 구조는 사실 너무도 익숙한 패턴이다. 이미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드라마에서 이런 ‘신데렐라’ 이야기를 차용했으며,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신데렐라’이야기는 그 식상함과는 별개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신데렐라가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변형된 모습으로 드라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역시나 최근 <청담동 엘리스>처럼 여주인공이 남자의 재력을 보고 접근하는 ‘능동적 신데렐라’ 유형이다. 여리고 착하기만 하던 기존 신데렐라의 이미지를 속물적인 캐릭터로 전복시킨 것이다. 현실은 동화와 달리 ‘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이런 신데렐라 유형은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시청자에게 있어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남편과 딸을 버리고 왕자를 찾아 떠나는 <야왕> 속 주다해 캐릭터는 이런 불편함을 넘어 짜증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드라마는 왜 자꾸 ‘신데렐라’이야기를 이토록 ‘차갑게’ 재해석 하는 것일까? <야왕> 속에서 그려지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용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신분상승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신데렐라

 

<청담동 엘리스>의 세경과 <야왕> 속 주다해는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능력을 키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현실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고, 결국 세경과 주다해는 모두 ‘왕자’를 이용하여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려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세경의 경우 욕망과 사랑이 공존하는 반면, 다해는 사랑보다는 욕망이 앞선다는 사실이다.

 

하류를 제외해놓고 보면 <야왕>은 ‘가난한 여주인공 주다해가 재벌2세 백도훈을 만나 신분상승을 이룬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 구조를 취한다. 동화 속 왕자가 그러했듯 백도훈은 첫 눈에 주다해에게 호감을 느끼고 청혼까지 한다. 동화와 드라마는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동화 속에는 신데렐라가 왜 왕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는지 이유가 나오지 않는 반면, <야왕>은 주다해의 욕망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백도훈이 재벌2세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욕망을 <청담동 엘리스> 세경처럼 굳이 ‘추한 사랑’이라고 포장하려 하지도 않는다. 철저히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 신분 상승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으로 그려낼 뿐이다.

 

 

 

 

 

이제 더이상 현실에는 계모로부터 온갖 차별을 당해도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는, 여리고 심성 고운 신데렐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다해가 백도훈의 누나 백도경으로부터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 깊다. 자신이 가진 능력만으로는 신분 상승을 이루기 어렵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신데델라는 욕망에 사로잡힌 ‘괴물’로 재탄생한다.

 

 

2.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재밌는 것은 현실 속 신데렐라는 동화처럼 왕자를 만나는 기회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어쩌면 왕궁 파티에 갈 수 있었던 동화 속 신데렐라는 그나마 새로운 세상으로 편입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양극화가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모든 정치인이 ‘민생’을 부르짖을 만큼, 왕자가 사는 세상과 신데렐라가 발붙이고 있는 세상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그 격차가 벌어졌다.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캐릭터가 바로 하류다. 하류의 맹목적인 희생과 헌신 덕에 다해는 왕자가 사는 세상을 잠깐이나마 구경할 수 있었고, 마침내 왕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22일 방영된 <야왕> 4회에서 다해는 그런 하류를 철저히 이용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쫓겨난 이후 백도훈을 따라 미국유학길에 올랐고, 그런 다해를 뒷바라지 해주기 위해 하류는 그만둔 호스트바를 다시 나가는가 하면, 목돈을 벌기 위해 처음으로 2차까지 나갔다. 다해는 하류가 자신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호스트에 나갔고, 최근에 그만둔 사실까지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 어둠의 세계로 내몰았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말이다.

 

 

 

 

동화 속에선 신데렐라를 가엽게 여겨 호박마차와 드레스를 선물해준 마법사가 등장하지만, 현실에는 마법사가 없다. 마치 하류처럼, 부모와 형제 혹은 남편과 아내의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이 뒤따를 뿐이다.

 

 

3. 그래서 왕자와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살았을까?

 

동화 속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를 들고 찾아온 왕자와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야왕>의 이야기는 다해와 백도훈의 결혼 이후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주다해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자신을 위해 몸 바친 하류를 배신했고, 딸마저 모른척했다. 신분 상승은 이뤘지만 정말로 그녀가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게다가 주다해의 배신으로 인한 하류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한다. 다시 한 번 신데렐라 공식이 깨지는 것이다.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던 왕자와 결혼했으면 행복하게 사는 게 바로 신데렐라의 역할인데, 드라마는 무슨 짓이든 해서 욕망을 이루는 것이 과연 행복의 지름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동화 속에는 나오지 않는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부분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야왕>은 주다해라는 캐릭터를 통해 착하지 않고 욕망에 충실한 신데렐라, 마법이 아닌 누군가의 헌신을 발판으로 왕자에게 접근하는 신데렐라, 결코 행복할 수만은 없는 신데렐라 등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가 알던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분명 다른 전개다. 그 안에서 현실을 찾아보는 재미, 사랑과 복수 그리고 배신으로 얼룩진 이 암울한 드라마를 즐기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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