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리뷰토피아

‘회사 놀이’를 통해 본 ‘암묵지’의 가치 <극락 컴퍼니>

책 이야기/문학,소설,수필,시
극락 컴퍼니
국내도서>소설
저자 : 하라 고이치(原 宏一) / 윤성원역
출판 : 북로드 2011.05.02
상세보기



지식은 ‘말이나 글로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는가’에 따라 ‘명시지’와 ‘암묵지’로 나뉩니다. 명시지란 우리가 ‘정보’라는 형태로 흔히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인데요. 학교나 책, 인쇄매체 등을 통해 얻는 지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반면, ‘암묵지’는 그 형태가 불분명하며, 이른바 어머니의 '손맛'처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가 지식강국, 지식기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암묵지 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는데요. ‘암묵지’를 비밀로 여겨 자기 혼자 소중히 간직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른바 ‘노하우’로 일컬어지는 개인의 시행착오와 깨달음 등을 후세에 전달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그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사회 ‘암묵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대표적인 예를 꼽자면, 바로 정년퇴임을 하는 은퇴 고령자들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최근 고위공무원의 전관예우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었는데요. ‘전관예우’에 따른 비상식적, 비도덕적 특혜는 없어야 마땅하겠지만, 분명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다른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우리사회 ‘암묵지’ 활용 차원이라는 시각으로 봤을 때, 썩 좋은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죠.

 



하라 고이치 작가의 최근작, <극락 컴퍼니>는 바로 정년 은퇴자들의 암묵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게 노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일과 인생, 그리고 노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 정도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문제가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주제만은 아니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가벼운 터치와 유머는 부담없이 다음 장을 넘기도록 만들어주는데요. 그렇다면 본격적인 책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

.

.



주인공 스고우치는 정년 퇴임 후 시립도서관에 가서 잡지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데요. 이 마저 지겨워질 시점에 자신과 같은 처지인 기리미네를 만나게 됩니다. 둘은 아침에 출근하고, 상사로부터 혼나고, 점심을 먹고, 거래처 사람을 만나고, 회의를 하고, 또 퇴근 후 술 한 잔 하는, 이른바 ‘회사 생활양식’을 서로 그리워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데요.

 



둘은 가상으로 회사를 만들고, 이른바 ‘회사 놀이’를 통해 다시금 직장생활의 활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회사놀이’는 다른 정년퇴직자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되고, 지사가 생기는 등 다른 도시로 들불처럼 번져나갑니다.

 



비록, 돈은 오가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움직이지만 실제 회사생활처럼 재무제표를 만들고 매출 계획을 짜고, 거래처를 만드는 등 이들은 ‘회사 놀이’를 ‘진짜 회사’처럼 진지하게 임합니다. 아마도, 정년이라는 허탈감에서 벗어나 활기차게 직장생활을 했던 자신들의 황금기를 그리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케팅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심리치료 효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언제나 돈이 꼬이고, 돈이 얽히게 되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기 마련이죠. 처음 순수한 의미로 시작했던 ‘회사 놀이’는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읽어보세요..)

 



작가는 이 ‘회사 놀이’를 통해 은퇴자들의 정년 후라는, ‘인생 2막’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는데요.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하게, ‘실버산업’이라고 해서 은퇴자들의 소비를 강요하거나, 그들의 지갑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고령자가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암묵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회사 놀이’는 수십년간 현장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은퇴자들이 모여 회사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그 어떤 회사보다 안정적이고 탄탄하게 운영됩니다. 비록, 어디까지나 가상이라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실물경제에 도입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겠으나, 시뮬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와 비슷한 직종에 근무했던 은퇴자들이 가상으로 모여 '회사놀이'를 하고, 그 회사 놀이에서 나온 결과물을 토대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새로운 사업에 따르는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은퇴자들의 경우 젊은 세대처럼 큰 돈이나 욕심을 위해 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 일이란 ‘자기만족’이라는 가치가 제일 우선인 셈입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처럼 비정상적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비록 적은 돈이지만 가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생업 현장에 나서는 고령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책의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부분인 만큼 논외로 하겠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 일하는 은퇴자들의 경험과 노하우, 즉 그들의 ‘암묵지’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이는 앞으로 다가올 초고령화 사회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안내잡이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암묵지’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회일수록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식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 그리고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은퇴자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품 속 주인공 스고우치와 그의 아들이 겪는 갈등과 화해 과정은 ‘세대갈등’으로 표현되는 우리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입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주제와는 상관없이 작품 말미에 미디어(언론)에 대한 작가의 의식이 녹아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디어는 늘 그렇듯 부정적으로 묘사되네요.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했던가요?



 

구독과 추천을 눌러주시면 글쓴이에게 커다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