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리뷰토피아

<그 겨울...> 조인성과 송혜교를 앞세운 사랑예찬가!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자, 여기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남자와 죽는 거 따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여자가 있다. 그런데 그 둘이 변했다. 남자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고, 여자는 처음으로 살아보려 다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사랑 때문이라고.

 

심지어 앞이 보이지 않는 여자는 그 사랑이라는 감정에 힘입어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을 맞이했다. 오빠이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정리하려 했으나, 오빠는 진짜 오빠가 아니었다. 아마도 오수가 친오빠가 아니라는 사실에 오영은 배신감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노희경 작가는 둘도 없는 사랑예찬론자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그녀의 에세이 집 제목만 보더라도 그렇다. 사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거라고 말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녀가 얼마나 사랑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사랑은 때론 사람, 삶, 인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中

 

 

 

 

아마도 수가 영이를 살만큼만 사랑했다면, 그는 진소라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한국에 계속 남아있다면, 그는 무철에게 혹은 김사장에게 죽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는 영이를 죽도록 사랑했다. 그래서 목숨마저 내 놓은 채, 그렇게 영이의 곁을 지키고 있다.

 

영이 역시 마찬가지다. 영이는 미치도록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니 누구도 그녀를 미치도록 살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녀가 미치도록 살고 싶어 한다. 수가 영이를 미치도록 살리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어쩌면 이제 시작이다. 다음 주 종영을 앞둔 드라마가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이제야 수와 영은 남매라는 금기를 벗어던지고,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이를 향한 왕비서의 소유욕, 그리고 수를 향한 진소라의 집착은 분명 일그러진 사랑의 또 다른 형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살만큼만 사랑하는,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감정일 뿐이다. 왕비서와 진소라에게 영원은 없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해지는 것은 수와 영이의 사랑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게 될 것인가 이다. 영이의 시력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힘입어 돌아온다는 설정은 어쩌면 조금 유치하고, 판타지적 접근법이 아니냐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랑은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써 이 정도의 ‘시적 허용’은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 두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다면 이 드라마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늘 기적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수가 죽어도, 혹은 영이가 죽어도 두 사람은 풍경 소리가 되어 혹은 팔찌의 종소리가 되어 늘 서로 곁에 머물 것이다. 서로에게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 그것은 사랑이 끝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어떤 기적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고, 사랑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고, 또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조인성과 송혜교를 앞세운 사랑예찬가는 그렇게 올 겨울 시청자의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그 예찬가가 끝내 울음이 아닌 웃음을 동반하기 바라본다.

 

P.S: 한 가지 덧붙이자면, 노희경 작가는 사춘기 시절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노희경 작가의 과거가 오영과 오수 캐릭터에 각각 일정부분 투입됐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노 작가는 자신과 닮은꼴인 오영과 오수를 끝내 비극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노희경 작가라면 그렇다.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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