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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에는 왜 유독 ‘먹방’이 많을까?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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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에는 왜 유독 ‘먹방’이 많을까?

 

먹고 또 먹는다. 뜯고, 씹고, 마시고, 삼키기까지 한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의 향연이 이어진다. 요리 프로그램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SBS 월화드라마 <펀치> 속 풍경이다. 한 두 회로 그쳤다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15회가 방영된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19회로 예정된 이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이 ‘먹방’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펀치>는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을 통해 우리사회의 권력 구조를 밑바닥까지 파헤친바 있는 박경수 작가의 복귀 작품이다. 소재는 검찰이다. 권력의 칼과 방패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스스로 권력 자체가 되기도 하는 ‘검사’들의 이야기다. 주요 인물은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분), 윤지숙 법무부 장관(최명길 분), 그리고 대검찰청 수사지휘과장 박정환 검사(김래원 분) 등이다.

 

캐릭터만 놓고 보자면 ‘높은 분’들의 이야기인데, 드라마는 끊임없이 ‘먹방’이 등장한다. 자장면, 만두, 칡, 홍어, 파스타, 소주, 맥주, 커피, 박하차 등 그동안 드라마 속에서 선보인 ‘먹방’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이 ‘먹방’, 예사롭지가 않다. 드라마의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깨뜨리기는커녕 오히려 긴장감을 살리고, 인물들의 심리를 대변해 주기까지 한다.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박경수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의 탁월한 ‘비유’를 꼽을 수 있겠다. 가령, 피보다 더 진했던 이태준과 박정환이 아군에서 적군으로 갈라서며 선보인 ‘자장면 먹방’을 떠올려보자. 줄곧 한 테이블에서 음식을 즐겼던 두 사람이 각자의 방에서 따로 자장면을 먹는 것은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간극을 의미했다. 또, 아무 말도 없이 각자의 자장면을 비빈 뒤 한입 크게 흡입하며 카메라를 통해 서로를 응시하는 모습은 앞으로 가는 길이 다른 만큼 이제 자기 밥상은 알아서 차려 먹자는 속뜻이 녹아있고,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 간 치열한 전쟁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지난 2일 방영된 15회에서 이태준 총장과 박정환 검사의 쇠고기 먹방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검사장이 되고 나서야 쇠고기를 먹었다는 이태준 총장의 대사에서 쇠고기는 권력과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그런 이태준 총장을 향해 박정환은 검게 타버린 고기 조각을 건넨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이태준 총장을 끌어 내리겠다는 박정환의 의도가 ‘먹방’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태준 총장의 비리와 연관있는 오션캐피탈 실소유주 김상민 회장(정동환 분)의 병원에 찾아간 이태준 총장의 ‘만두 먹방’ 역시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당시 이 총장은 잠든 김상민 회장 옆에서 홀로 만두를 폭풍 흡입했는데, 이는 김상민 회장을 궁지에 몰아넣은 뒤 10조라는 돈을 혼자 ‘꿀꺽’하려던 이태준 총장의 검은 속내를 ‘먹방’으로 통해 그려낸 탁월한 비유였다.

 

 

 

 

드라마 속 ‘먹방’은 때때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치로도 활용되곤 한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는 이태준 총장과 달리 윤지숙 장관은 주로 고고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데, 이는 아들의 병역비리를 숨기고 끝까지 깨끗한 법조인의 이미지를 지키고 싶어 하는 윤 장관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자신이 불리할 때는 상대가 권하는 음식을 먹고, 또 유리한 위치에 섰을 때는 좋아하는 음식을 강요하는 장면 등도 이 드라마가 ‘먹방’을 얼마나 의미 있게 다루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가 ‘먹방’을 자주 연출하는 까닭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볼 수 있다. 또, 자연스런 결과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차는 있더라도, 우리사회에서 출세하고 싶은 욕망, 권력을 쥐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를 먹고 싶어 하는 ‘식욕’처럼 말이다.

 

권력욕을 식욕으로 등치시킴으로써 <펀치>는 자칫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권력자들의 세계를 바로 내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로 끌어 내린다. 덧붙여,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움켜쥐거나 혹은 손에 들어온 권력을 가지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그 사람이 특별하거나 애초부터 나쁜 놈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누구든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먹고 싶다고 해서 누구든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태준 총장 옆에서 자장면을 먹던 박정환 검사가 이제는 뇌종양 통증을 억누르기 위해 박하차만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욕망과 권력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끌어내렸다 싶으면 다시 부활하고, 또 끝이다 싶으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 반전에 연속을 써내려가는 <펀치> 속 등장인물의 권력다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연 이 복잡한 아귀다툼 속에서 또 어떤 ‘먹방’이 등장하게 될까. 현실정치에 대한 탁월한 비유가 돋보이는 이 드라마의 결말, 어쩌면 ‘먹방’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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