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리뷰토피아

[좌충우돌 상경기] 2. 친구로부터 ‘지하철 호박남’ 소리 들은 이유

살아가는 이야기/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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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지금까지, 29년이라는 삶을 살아오며 한 번도 전라도를 벗어나 본적 없는 ‘촌놈’이 2011년 3월, 큰마음 먹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지역 출신들이 그러하듯, 직장생활을 이유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지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곳 서울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이야기를 <좌충우돌 상경기>에 풀어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좌충우돌 상경기] 지난 글 보기

 

1. 택시비 2만원에 가슴 철렁한 사연


 


서울에 올라오고 난 뒤, 지역에 있을 때 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는 뉴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들입니다. 최근 ‘지하철 막말남’을 비롯하여 지하철에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터지면, 인터넷과 언론에서는 ‘지하철 00남’, ‘지하철 00녀’등이 도배를 이루곤 하는데요.

 



천태만상 온갖 일들이 다 벌어지는 지하철 안인 까닭에, 제가 타고 있는 지하철에서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난 어떻게 하지’ 하고 상상을 해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방관자의 자세를 취할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할 것인지, 쉽지 만은 않은 문제 같습니다. (막상 닥쳐봐야 알겠죠..^^;)

 



하루에 두 번, 출퇴근 각각 20분 가량 지하철을 이용하는 저에게는 아직까지 00남, 00녀라고 이름붙일 정도의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출퇴근 시간 만원지하철에서 많은 사람들과 얽히고 부대끼는 일상은 항상 저에게 ‘이런게 바쁜 도시민의 삶이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해주곤 합니다.

 



어제 저녁이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잠깐 볼일이 있어 오랜만에 집을 나섰습니다. 출퇴근할 때에는 지하철을 갈아타는 일이 없어서 요즘도 지하철을 갈아탈 일이 생기면 노선도를 보면서 갈아타곤 하는데요. 어제도 휴대폰에 지하철 노선도를 띄어놓고 천천히 걸어가며 확인하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파랑색 손수레를 끌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가고 계셨습니다.

 



파랑색 손수레에는 큰 글씨로 ‘울릉도 호박엿’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으며, 수레 안에는 하얀 봉지로 포장된 노랑 호박엿이 한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늦게까지 장사를 하시고 들어가시나 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엿을 좋아하지도 않는 터이고, 저녁을 먹은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엿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죠.

 



할아버지는 노약좌석에 앉아 계셨고, 저는 두 정거장 간 후에 내려야 되어서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도중에 누가 할아버지 앞으로 가서 호박엿을 하나 사는 거였습니다. ‘호박엿을 먹는 사람도 있네?’ 하는 생각으로 호박엿을 사간 사람을 보는 순간, 저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호박엿을 산 주인공은 바로 맞은편 노약좌석에 앉아 계시던 백발 가득한 할머니였습니다. 수레를 끌고 전철에 오른 할아버지 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할머니였던 것이죠. 물론, 그 할머니께서 엿을 정말 좋아하셔서 사셨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희한하게도 임재범의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날 위로해주지….”

 




흐느끼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임재범이 떠오름과 동시에, 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았던 것은 아닐까? 하루 종일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역에서 엿을 팔고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잘아서, 할아버지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한봉지의 호박엿을 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불현 듯 대학교시절의 추억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바로 캠퍼스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던 ‘떡 할머니’에 관한 추억이었습니다.

 



낮에는 학교 앞 지하보도에서 웅크리고 앉아 떡을 팔던 할머니는 저녁시간이면 이곳저곳 학교 앞 술집을 드나들며 학생들에게 ‘떡 하나만 사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에 못이긴 몇몇학생들이 떡을 사곤 했지만 대부분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지난 번에 샀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거부하곤 했었죠.

 



그런데 유난히도 ‘떡 할머니’만 보면 빠짐없이 떡을 사던 선배 하나가 있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벌써 떡할머니가 학교 앞에서 떡을 팔기 시작한 것이 십년이 넘었다”며, “사실은 떡할머니가 부자다”라는 루머가 퍼지는 가운데서도 그 선배는 1차, 2차, 3차를 넘기는 술자리에서도 할머니가 나타나면 꼭 떡을 사곤 했습니다.

 



언젠가 그 이유를 물었죠. 그러자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그 할머니가 부자일 수 있어. 그건 나도 모르고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 다만, 지금 당장 내 호주머니에서 2천원이 나간다고 해서, 나에게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내 눈앞에서 불편한 모습으로 떡을 지고 다니며 손자뻘 학생들에게 하나 사달라고 애원하는 할머니를 외면하고 싶지 않아. 그뿐이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떡 할머니’는 정말인지 너무도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불현 듯, 그때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저는 할아버니께 엿의 가격을 여쭈어보았습니다.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에 망설일 여유도 없었죠.

 




“할아버지, 이거 엿 하나에 얼마에요?”

“어. 2천원~”





저는 그 순간 제 호주머니에서 2천원이 빠져나갔을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2천원을 쓴다고 해서 지구가 멸망할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갑자기 지하철이 멈출거 같지도 않았습니다. 혹시나 폭우가 내릴 수는 있겠으나, 우산을 챙겨왔기 때문에 그 또한 문제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나빠서인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2천원을 쓴다고 해서 어떤 큰일이 벌어질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


.


“한 봉지 주세요~”

 


괜찮다는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하연봉지에 포장돼 있는 호박엿을 다시금 검은 봉지에 넣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 호박엿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내린 그 정거장에서 내리셨는데요. 알고 보니, 사람이 많이 붐비는 환승역을 찾아 다니시며 장사를 하시는거 같았습니다. (제가 지하철을 탄 곳도 환승역이었고, 내린 곳도 환승역이었거든요.)

 



가방 속에 고이 엿을 넣어두고, 약속장소로 발길을 옮기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 지하철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저보고 ‘훈훈하다’며, 혹시 누군가 제가 엿 사는 모습을 촬영하여 ‘지하철 호박남’이라고 올리는거 아니냐는 농담을 건넨 것이죠.

 



하지만, ‘호박남’이면 어떻습니까. 듣기에도 거북한 ‘막말남’, ‘폭행녀’이런 것보다는 훨씬 좋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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