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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리뷰 - 혜선은 왜 민폐캐릭터가 되어버렸나?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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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리뷰 - 혜선은 왜 민폐캐릭터가 되어버렸나?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중 <서울역>만큼 기대를 모았던 작품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서울역> 이전의 작품들은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막을 올렸다가 언제 내렸는지도 모르게 상영을 접곤 했다. 상영관을 확보하는 거 자체가 가장 어려운 숙제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할까.

 

따라서, <서울역>14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이유는 순전히 영화 <부산행>의 흥행 덕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울역>에는 <사이비>, <돼지의 왕>, <사랑은 단백질> 등 그간의 작품들은 얻지 못했던 천만 감독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이란 수식어가 더해졌으며, <부산행>의 프리퀄이란 홍보문구를 통해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마치 <부산행> 속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이유를 <서울역>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여성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 연상호식 냉소가 답하다

 

하지만, <서울역><부산행>은 엄연히 다른 영화다. 좀비라는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만 비슷할 뿐, 두 영화의 분위기와 메시지는 과연 같은 감독의 작품인지가 맞나 싶을 만큼 동떨어져 있다. 이는 <서울역><부산행>의 프리퀄이라고 생각하며 극장에 들어섰을 관객들의 실망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지점이다.

 

물론 <부산행>과의 연관성은 상관없이, <서울역> 자체가 재미있었다면 평가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울역>1시간 30분 동안 관객들에게 군고구마한 박스를 선물하고 만다. 영화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혜선이란 캐릭터가 시종일관 답답한 모습을 보이며 민폐캐릭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한 노숙자의 피습으로부터 시작된 좀비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서울역 인근의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혜선을 비롯한 시민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게 된다. 그들 중에는 <부산행> 속 마동석처럼 힘으로 좀비를 제압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별다른 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좀비 바이러스의 제물이 되고 만다.

 

혜선도 예외는 아니다. 좀비 바이러스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 힘없는 젊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은 게 사실. 영화 속에서도 혜선은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맞이한다. 다행스럽게도 좀비에 물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녀는 남성 캐릭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서울역>에 대한 비판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주인공 혜선에 대한 지적이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남들에게 폐만 끼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하다는 것이다. 왜 여성 캐릭터를 이렇게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그렸는지 모르겠다는 비판 역시 같은 맥락이다.

 

도망 다니다 지쳐 우는 혜선을 보면 이런 지적에 백번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현실이 아닐까. 법과 질서가 무너진 사회에서 폭력은 정당화되고, 물리적으로 약자인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리아 난민사태에서 보듯, 여성은 성폭력이란 2차 피해의 위험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영화 말미 혜선이 강간의 위기에 놓이게 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알고 보니 혜선이 무술유단자라서 화려한 액션으로 좀비들을 제압하거나, 혹은 천재적인 두뇌를 바탕으로 재난사태의 원인을 밝혀내면 좋겠지만, 이런 식의 판타지는 결국 허망함만 불러올 뿐이다. 특별한 능력을 부여한다고 해서 여성 캐릭터가 주체성을 가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서울역>은 연상호 감독 특유의 화법이 잘 묻어난 작품이다. 지나칠 만큼 냉소적이며, 인간의 본성을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집요함까지. 게다가 주거 공간의 형태를 기준으로 시민들의 계층을 나누고, 현대인의 욕망이 집약된 아파트를 결말의 장소로 차용한 방식 등에서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읽어내는 거 또한 어렵지 않다.



 

따라서 <서울역>은 늘 우리안의 이야기에 집중해 온 연상호 식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민폐캐릭터로 전락했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혜선이 왜 민폐캐릭터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보자. 그럼, <서울역>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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