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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의 서>가 던진 질문,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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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면 머리가 흰색으로 변하고 눈은 초록빛이 되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발 벗고 나설 줄 아는 반인반수. 그리고 눈·코·입은 분명 사람의 그것이 맞지만 마음속에는 탐욕이 가득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까지 죽일 수 있는 사람.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에 등장하는 최강치(이승기 분)와 조관웅(이성재 분) 중 누가 더 사람다울까? 어쩌면 이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일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최강치는 신수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고, 조관웅은 비록 악인이지만 어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반인반수의 존재 최강치는 인간이라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힘과 회복력 그리고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조관웅 역시 인간이라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광기와 탐욕을 지니고 있다. 둘 다 인간이라 하기엔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둘 중 인간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운 이를 고르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저 없이 강치를 꼽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탐욕 덩어리뿐인 몸만 가지고 있는 것 보다는 다른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자가 더 사람답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가르침…사람다움이란?

 

30일 방영된 MBC <구가의 서> 8회가 시청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다름 아닌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묵직한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반인반수라는 존재 때문에 괴로워하는 최강치의 내적 갈등은 바로 이 ‘사람다움’에 대한 시작점이었다.

 

남들과 다른 외모, 그리고 남들과 다른 능력과 수명. 최강치는 분명 사람이 아니다. 신수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반은 사람이지만 또 반은 사람이 아니다. 그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죽음까지 결심한 것도 이해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지금의 최강치는 지나치게 ‘사람다움’의 기준을 몸속에 어떤 피가 흐르는지 만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수의 피가 흐른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고, 사람의 피만 흐른다고 해서 사람이라면, 대체 조관웅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자를 과연 사람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조관웅 같은 사람을 신수도 아닌, 그냥 하찮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라고 일컫는 까닭은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겉모습 외에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사람다움’의 기준을 강치에게 가르쳐 준 인물이 바로 이순신(유동근 분)이다. 이날 조관웅의 계략에 의해 살인죄 누명을 쓰고 참형 당할 뻔한 강치는 이순신의 도움으로 풀려났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때문에 ‘자포자기’ 모드에 빠졌다. 강치에겐 아무런 희망도 없었고, 의욕도 없었다.

 

그런 강치에게 이순신은 깨우침을 주었고, 강치는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아깝다”며 우선은 박무솔(엄효섭 분)의 역모죄 누명을 벗기기로 의지를 다졌다. 이어 조관웅에게 빼앗긴 백년객관을 되찾겠다는 희망도 찾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는 신수를 인간으로 변하게 해주는 ‘구가의 서’를 찾아야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날 삶에 대한 의지는 찾았지만 여전히 ‘사람다움’의 기준을 잘못 생각하고 있던 강치에게 이순신이 건넨 말은 큰 울림을 자아냈다.

 

“나는 지금껏 사람으로 태어나 금수만도 못한 짓을 행하는 자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너 자신을 인간으로 정하는 것은 태생이 아니라 네가 간직하고 있는 그 마음에 있느니….”

 

이는 마음속에 사리사욕과 물욕 그리고 탐욕 밖에 담지 못한 사람은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며, 비록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반인반수라 할지라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채웠다면 이미 인간이라는 의미였다.

 

 

 

아직 강치는 이순신의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도 이순신 밑에서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면서 점차 ‘사람다움’에 대해 많이 배워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까지는 백년객관 안에서만 생활해서 그에게 백년객관이 곧 가족이고 세상이었지만, 보다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이 배우고 생활하다 보면 강치 자신이 지켜야 할 것도 더 많고, 또 품어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는 ‘사람은 무엇으로 살고, 사람답게 사는 건 또 무엇인지’를 반인반수의 시각으로 그려내는 데에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미처 몰랐던 ‘사람다움’이 반인반수인 최강치의 눈에는 훨씬 더 잘 보일테니, 그가 앞으로 ‘사람다움’에 대한 기준을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최강치가 진짜 인간이 되는 길은 ‘구가의 서’가 아니라, 이 사람다움에 대한 기준을 얼마나 많이 찾는냐에 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선은 하나, ‘너 자신을 인간으로 정하는 것은 태생이 아니라 마음속에 무엇을 간직하고 있느냐’이다. 잊지 마라 최강치!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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