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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5회: 수애 배신, 가난은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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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배신은 무서웠다. 성공을 위해 남편을 버렸고, 돈을 위해 딸을 모른 척 했다. 사랑 앞에 비정했고, 모성 앞에 냉정했다. 그녀는 오로지 욕망 앞에서만 충실했다. 마치 괴물의 탄생을 보는 듯 했다.

 

도훈(정윤호)과 함께 미국에서 돌아온 주다해(수애)는 가족 대신 백합그룹을 선택했다. 그녀는 ‘돌아와 달라’는 하류 앞에서 “한 번도 행복해 본 적 없다”며 “그만 놔 달라”고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편과 딸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일뿐이었다.

 

물론 그녀에게도 이유는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가난을 이기지 못한 부모가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하는 것을 목격했다. 가난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고, 가난 때문에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가난은 어머니마저 앗아갔다.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그녀의 삶은 늘 제자리였고, 그녀의 몸부림은 늘 절망 앞에 무릎 꿇었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딸은 가난을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독백은 일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 말로 ‘돈’이 제일시 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40%가 정직보다 돈을 추구하는 사회…다해를 욕할 수 있을까?

 

지난 23일 한국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청렴성 조사'에 따르면 '부자가 되는 것과 정직하게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15∼30세의 40.1%가 부자를 택했다. 정직한 삶보다 돈을 택한 것이다. 또한 '거짓말을 하거나 부패를 저지르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중 인생에서 누가 더 성공할 것 같은가 라는 질문에는 15∼30세의 51.9%, 31세 이상의 40.7%가 거짓말하거나 부패한 사람을 꼽았다. '삼촌의 친구를 통해 좋은 회사(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도 15∼30세의 절반이 넘는 54.0%가 '응하겠다'라고 답했다. 31세 이상은 48.9%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또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생 10명 중 4명 이상(44%)이 '10억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학생은 28%, 초등학생도 12%나 양심 보다는 돈을 택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우리 가운데 10명 중 4명은 <야왕>속 주다해와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는 돈을 택하고, 10억을 벌 수 있다면 잘못을 저지르고 감옥에서 1년 정도 들어가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주다해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을까? 너무도 욕망에 충실한 주다해는 어떤 의미로 순수하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그녀는 “가난이 싫어서”라고 자신이 하류를 버린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으니 말이다.

 

 

 

 

가난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주다해의 선택이 틀린 이유

 

하지만 아무리 그녀의 선택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주다해의 선택은 틀렸다. 정직과 양심보다는 ‘돈’을 선택하는 사람이 40%를 넘어 90%가 되어도 그녀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선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하류의 도움없이 스스로 이 자리까지 왔고, 지독한 가난으로 입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욕망에 충실했다면 적어도 그녀에게 ‘악녀’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당한 방법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을 딛고 성공에 다가서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카타르시스마저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의 배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 그녀를 위해 인생을 송두리째 헌신한 남편 하류와 엄마가 자신을 버린 지도 모른 채 추위에 떨며 엄마를 기다린 딸 은별에게 그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것이다. 때에 따라 ‘정직보다는 돈’, ‘양심보다는 돈’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실, 가난은 누구나 겪는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가난을 겪는 사람은 늘어난다. 절대적 빈곤은 줄어들었을지언정, 상대적 빈곤은 더 증가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주다해와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성공을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안기고, 정당한 방법보다는 편법을 동원하는 것은 그저 보다 빠른 길을 선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자기편하자고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내 딸은 가난을 모르게 하고 싶다”고. 전형적인 자기 합리화의 오류다.

 

다해 못지않게 하류도 가난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을 했고, 덕분에 조금이나마 다해를 도울 수 있었다. 돈이 더 필요해지자 호스트바에 나갔지만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닌 다해를 위해서였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닌 도움을 주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류가 존재하는 한 다해의 선택은 틀릴 수밖에 없다. 다해가 하류를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류가 없어져야만 그녀의 선택이 정당성을 갖는다. 1회에 나온 하류의 대사처럼 다해는 하류를 죽일 것이다. 물론 하류를 대신해 죽는 것은 이날 등장한 하류의 쌍둥이 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하류는 산다. 하류가 살았으므로 그녀의 선택은 틀렸다. 가난이 결코 그녀에게 있어 악행의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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