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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의 한수’는 왜 ‘신의 주먹’이 되어버렸나?

‘신의 한수’는 왜 ‘신의 주먹’이 되어버렸나?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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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기와 술수가 판을 치는 놀음의 세계에도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 화투가 되었든 마작이 되었든 혹은 바둑이 되었든, 일차적으로는 게임 그 자체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박의 세계에 폭력이 빠질 수야 없겠지만, 그건 가진 것을 모두 잃어 걸 수 있는 게 목숨밖에 남지 않았다거나 혹은 사기가 발각되었을 때에만 허용되어져야 한다. 게임보다 폭력이 앞서게 되면 ‘도박판’이라는 세계관 자체가 무너지게 되고, 이야기의 긴장감 또한 떨어지기 때문이다.

 

영화 <타짜>에서 아귀(김윤석 분)가 폭력을 동반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상대방이 판돈을 모두 잃었을 때, 혹은 속칭 ‘기술’을 쓰다 걸렸을 경우다. 만약,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고 해서 아귀가 다짜고짜 폭력을 동반했다면, 그는 타짜의 세계에서 결코 1인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승부에서 이긴 지든 결국 ‘주먹’으로 판가름이 나는 게임이라면 그게 무슨 도박판이란 말인가. 그저 주먹싸움이지.

 

내기 바둑의 세계를 그린 <신의 한수>의 ‘패착’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바둑의 고수들이 벌이는 불꽃 튀는 두뇌싸움이나 혹은 상대편의 훈수를 밝히기 위해 벌이는 속임수 대신, 모든 승부가 끝내는 칼과 주먹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가령, 태석(정우성 분)측의 꽁수(김인권 분)와 살수(이범수 분)측의 선수(최진혁 분)가 처음으로 맞붙는 바둑 대결만 봐도 그렇다. 두 사람은 각각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주님(안성기 분)과 왕사범(이도경 분)의 훈수를 받았다. 속칭 ‘기술’을 쓴 것이다. 둘 다 똑같이 기술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면, 결국 바둑이라는 승부에서 이기거나 혹은 상대방의 기술을 먼저 밝혀내는 자가 돈을 먹어야 한다. 그게 도박판의 세계관이다. 그런데 왕사범과 선수는 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다짜고짜 칼을 들이밀며 이 도박판의 세계관을 뒤엎는다. 그들의 목적은 애초부터 돈. 굳이 ‘바둑’이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태석과 살수의 최종대결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두 사람이 두는 바둑에서는 그 어떤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둑의 승부는 곁가지이기 때문이다. 바둑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훈수 여부와는 무관하게, 주먹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결국에는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관객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신의 한수>에 등장하는 소재가 바둑이 아니라 오목이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라는 일부의 조롱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바둑을 소재고 도박판의 이야기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은 정우성의 액션 뿐이다. 교도소에서 바둑이 아닌 싸움을 연마한 태석은 사실 바둑의 고수가 아닌 싸움의 고수였던 것이고, 승부의 향방을 가늠하는 것은 ‘신의 한수’가 아닌 ‘신의 주먹’이었던 셈이다. (물론, 상대의 수를 내다볼 줄 안다는 점에서 바둑 고수 태석이 싸움 고수로 성장해 나간다는 설정은 나름 의미가 있다.)

 

 

 

물론,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할 만큼 이 영화가 갖는 오락적인 재미는 충분하다. 속편을 염두하고 생략한 몇몇 이야기가 다소 불친철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정우성의 호쾌한 액션과 명품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 덕에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덫에 덫을 놓거나, 살을 주고 뼈를 치는 전략은 찾아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살과 살이 부딪히며 칼부림이 난자하는 액션을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단, 영화 속이든 우리의 인생이든 ‘신의 한수’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과, ‘주먹 센 놈이 이긴다’는 폭력영화의 진리는 <신의 한수>에서도 유효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메이스엔터테인먼트,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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