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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현 사과를 통해본 아이돌 산업의 기형성

백현 사과를 통해본 아이돌 산업의 기형성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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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 백현이 소녀시대 태연과의 열애설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백현은 17일 오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팬 여러분께 많이 늦었지만 실망과 상처를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 이곳에 글을 남깁니다”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백현이 남긴 글의 요지는 한마디로 사과에 가깝다. ‘죄송하다’는 말이 수차례 반복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백현은 정말로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글만 놓고 보면 마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반성문 같은 느낌마저 든다.

 

 

 


대체 왜 연애를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되고, 사과를 할 만큼 논란이 되는 것일까. 바람을 피거나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연애를 하는 것이 사과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면, 그런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바로 팬들의 연애감정과 판타지를 자극하여 생명력을 키워하는 우리 아이돌 산업의 기형적인 구조 말이다.

 

열애설을 시인하는 동시에 팬들에게 사과를 건넨 것이 비단 백현 만은 아니지만, 소녀시대와 엑소라는 그룹의 상징성을 놓고 봤을 때, 이번 백현의 사과는 한번 곱씹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의 사과가 우리 아이돌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수많은 아이돌 가운데에서도 혼성 그룹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간혹 야심차게 데뷔를 하더라도 곧 활동을 접고, 남성 멤버와 여성 멤버로 나뉘어 따로 활동하게 된다. 이유가 뭘까. 바로 혼성 그룹의 경우는 아이돌을 지탱하는 ‘팬덤’을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팬덤(fandom)이란, 열광자라는 뜻을 가진 '퍼내틱(fanatic)'과 나라의 의미를 가지는 ‘덤(-dom)’의 합성어다. 결국 팬덤은 아이돌과 그 팬이 함께 공유하는 세계, 혹은 특정 아이돌 그룹을 지지하는 팬들의 집합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팬덤의 규모에 따라 아이돌과 기획사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아이돌 산업에 있어 팬덤은 가장 절대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팬덤을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아이돌과 기획사의 전략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남성성과 여성성을 무기로 10대 청소년들의 연애감정과 성적판타지를 끊임없이 건드린다. 그들이 부르는 노랫말에는 ‘아기’, ‘오빠’와 같은 단어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무대에서는 빠지지 않고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저희 애인은 팬들이에요”와 같은 립서비스를 선물한다. 남녀 아이돌 할 것 없이 그들은 팬을 마치 이성 친구 대하듯 표현하고, 정서적 동질감을 추구한다. 감수성에 민감하고, 동경의 대상을 찾는 10대 청소년이 아이들 문화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인기 아이돌 멤버의 열애설이 터질 경우 팬들이 실망감을 표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나의 그녀’, ‘나의 오빠’, 혹은 ‘우리의 그녀’, ‘우리의 오빠’라고 생각했던 멤버가 사실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쿨하게 반응할 팬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몇몇 아이돌 계약서에는 실제로 ‘데뷔 후 몇 년 동안에는 연애를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돌도 사람인데 연애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맞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연애 한다고 마음이 바뀌면 그건 진정한 팬이 아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팬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의 아이돌 팬덤은 1990년대의 ‘팬클럽’ 혹은 2000년대 초반의 ‘빠심’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한정된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아이돌시장에서 팬덤이 무너지면, 그 그룹의 미래는 장담할 수가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태연과 그렇고 백현도 그렇고 자신들의 열애설 이후 끊임없이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고개 숙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연애를 하는 것 자체가 죄송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연애가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기획사 입장에서도 그리고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당사자에게도 곤란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팬들을 위로한다.

 

우리 아이돌 산업은 어느새 한류의 중심이 될 만큼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동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이제 겨우 10대인 청소년들의 성적판타지와 연애감정에 기대는 게 전부다. 해외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도 결국은 그 대상을 해외 청소년들로 넓혔을 뿐이다. 열애설이 터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팬들의 남자친구, 여자 친구로만 남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돌은 본래 ‘우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우상에 나이와 성별은 중요치 않다. 우리 아이돌 산업이 보다 견고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연애감정이나 성적판타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세대에게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성별 구분 없이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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