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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모두 막장드라마 작가다

우리는 모두 막장드라마 작가다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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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라고 불리는 이야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나 기억상실과 출생의 비밀이다. 실패한 찌개도 ‘라면스프’만 넣으면 입에 착착 감기는 것처럼, 이 둘은 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갈등을 고조시키는 데 있어 ‘마법의 가루’로 활용되곤 한다.

 

‘욕받이’ 캐릭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대부분의 막장드라마는 선악대결이라는 단순 구도를 취한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바보스러울 만큼 착한 주인공의 대척점에는 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음모를 꾀하는 매우 악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는 ‘막장드라마’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장보리(오연서 분)와 장비단(김지영 분)으로 이어지는 ‘출생의 비밀’ 콤보에 더해 절대악 캐릭터라 불러도 손색없는 연민정(이유리 분)을 앞세워 시청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선비판 후중독’이란 세간의 평가처럼, 이 드라마는 맹점이 많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독성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밝혀질 듯 밝혀질 듯 밝혀지지 않는 작가의 ‘밀당’ 앞에 분통을 터트려도, 결국엔 또 다음회가 궁금해 TV 앉게 되기 때문이다. 고정 <왔다! 장보리>가 고정 시청층이 탄탄한 ‘전통의 강호’ KBS 주말드라마를 넘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막장의 힘’이 8할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반응이다. 드라마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시청자는 하루 빨리 모든 사건이 해결되길 기대한다. 실타래처럼 꼬인 비밀이 조금이라도 빨리 밝혀지길 바라며, 연민정의 악행이 고스란히 드러나 그녀가 파멸을 맞이하길 원한다. 연민정의 악행이 거듭 될수록, 그녀가 파놓은 함정에 착한 주인공이 빠져들 때마다, “진실을 하루 빨리 밝히라”는 시청자의 요구는 더욱더 거세진다.

 

<왔다! 장보리>에 쏟아지는 막장 논란에 대해 김순옥 작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현실에선 더 기가 막힐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되려 선악 구분이 분명한 드라마의 권선징악 결말을 통해 시청자들은 통쾌감을 느낀다”라고. 현실이 더 막장인 상황에서 굳이 이 드라마를 향해 ‘막장’이라고 손가락질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맞는 말이다. 현실에서도 막장 보다 더한 막장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밝히기란 요원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잇따른 군부대 사건사고, 그리고 세월호 참사까지.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고,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비극은 멈출 줄 모른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진실을 밝히자’고 주장할 뿐인데, 어느새 이들은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이는 진실을 밝힐 의지가 없는 일부 정치권과 세월호 정국의 책임을 어떻게든 유가족에게 덮어씌우려는 보수언론의 합작품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침묵으로 방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진실은 하루라도 빨리 밝혀지기를 주장하면서,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현실 속 진실은 마주하기 겁내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막장계의 대모로 통하는 임성한 작가는 <오로라 공주>에서 극중 배역을 수시로 죽여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그녀의 대본은 ‘데스노트’로 불렸다. 대중은 그녀를 향해 “그만 좀 죽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 땅에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들이 경쟁의 끝에 내몰려 스스로 지금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서, “그만 좀 죽이라”는 우리들의 외침은 어디로 향해야 했을까.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이 점점 드라마틱해지는 것인지, 이제는 그것을 구분하는 것조차 모호해지고 있다. 우연의 남발은 물론이고, 개연성 없는 수사와 판결 그리고 기억상실과 출생의 비밀까지, 막장드라마를 구성하는 요소가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누가 책임을 진들, 거기서 온전히 자유로울 사람이 있을까. 그러므로, 2014년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막장 드라마 작가와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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