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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vs 수영, 주인공은 ‘증명’하는 배역이다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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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vs 수영, 주인공은 ‘증명’하는 배역이다

 

아이돌이 연기를 하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또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개그맨-배우-가수라는 영역의 경계선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아이돌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또한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이돌 멤버를 극의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하는 이유가 시청률과 간접광고, 그리고 해외 판권을 염두한 ‘전략적 선택’이라면, 거기엔 분명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단순한 인기에 힘입어 배역을 꿰차거나 혹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속사의 판단에 따라 연기를 시작해서는 곤란하다. 정말로 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작은 배역부터 하나하나 배우는 자세로 도전할 때야 비로소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깨고 시청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거기에 뒤따르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부담스럽거나 불필요하게 느껴진다면, 그냥 하던 대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더 나은 판단이 될지도 모르겠다.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적 아이돌인 소녀시대와 에프엑스의 멤버가 나란히 수목드라마 여자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수영의 첫 지상파 주연작으로 화제를 모은 MBC <내 생에 봄날은>이 지난 10일 첫 방영됐고, 오는 17일에는 크리스탈을 주연으로 내세운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가 SBS를 통해 찾아온다. 수영과 크리스탈의 파트너는 각각 감우성과 정지훈(비)이다.

 

치열한 시청률 싸움과 배우들의 연기력 대결로 관심을 모으던 평일 미니시리즈 대전이 어느덧 ‘SM 집안싸움’이 돼버린 것이다. SM 입장에서야 소속 가수가 출연하는 드라마 중 하나만 성공해도 크게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이겠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연기를 지켜봐야 하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전혀 득 볼게 없는 경쟁이 되어버렸다.

 

두 사람은 주조연이나 조연도 아닌 명백한 ‘여자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왔다. 제 아무리 두 사람의 파트너인 감우성과 정지훈의 비중을 늘린다 하더라도 최소한 여자 주인공이 해줘야 할 ‘몫’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 ‘몫’은 당연히 안정된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 이 뒷받침 되어야지만 풀 수 있는 과제다.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는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 나갈 역량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 시청자의 마음 속 무게추는 ‘기대’보다는 ‘우려’쪽에 쏠리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내 생에 봄날은>에서 보여준 수영의 연기와 존재감은 감우성의 그것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란 듯 보였고, 그녀가 맡은 이봄이라는 캐릭터에선 시종일관 소녀시대 수영의 이미지가 겹쳐져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앞으로 극이 진행될수록 감우성과 수영의 멜로라인 또한 짙어질 텐데, 20살이라는 두 사람의 나이차가 시청자에게 과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속 크리스탈 역시 크게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예고편을 보면, 크리스탈이 맡은 세나라는 배역은 밝고 명랑한 캐릭터다. 기존 그녀가 드라마 속에서 보여줬던 발랄하고 톡톡 튀는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이 드라마에서 그녀는 여주인공이라는 데 있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감정의 진폭은 커질 것이며, 밝고 명랑한 이미지 외에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결국 그녀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외모가 아닌 배우 본연의 연기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의미다. 물론 그녀가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이끌어 내며 연기력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드라마 자체가 균형을 잃고 말 것이다.

 

 

 

배우들이 단역부터 시작해 조연을 거쳐 주연급으로 성장하는 이유는 연기력을 쌓는 시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하며, 또 그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역과 조연은 내가 맡은 연기, 내게 주어진 기대치만 충족시키면 그만이지만, 주조연이나 주인공급은 드라마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실수 하나 혹은 사소한 행동이 빌미가 되어 드라마가 위기에 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연기력’도 검증되지 않은 두 사람이 주인공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글쎄, 자신들에게 주어진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도 버거울 그녀들이 주인공으로서 드라마 전체를 생각할 여유가 과연 있을까 싶다.

 

아마도 SM과 두 사람은 주인공을 맡은 이번 드라마를 연기자로서의 경험을 쌓는 시간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경험을 쌓는 자리가 아니다. 경험은 단역과 조연에서 쌓고, 주연은 그것을 ‘증명’하는 배역이다. 제대로 된 ‘경험’없이 ‘증명’부터 나서는 그녀들의 주연 행보는 그래서 ‘도박’에 가깝게 느껴진다. 부디, 연기에 나서는 아이돌과 기획사는 이점을 명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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