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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채식주의자, 사회적 금기에 ‘돌’을 던지다

책 이야기/문학,소설,수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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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채식주의자, 사회적 금기에 을 던지다

 

 

이 세상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관습에 따라, 혹은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대표적인 사회적 금기로는 여성의 노브라를 꼽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얼마 전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때문에 졸지에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낙인찍힌 설리를 떠올려보자. 브래지어를 입든 말든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영역에 놓인 문제인데, 사람들은 이를 사회적 영역으로 끌고 와서 그녀에게 돌을 던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여자가 브래지어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며, 설리는 그 당연한 것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작품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평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금기에 도전하는 영혜라는 캐릭터를 통해 사회적 억압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탐구한다.

 

 

 


영혜는 여러모로 유별난사람이다. 우선 그녀는 갑갑하다는 이유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을 당연하게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혜의 평범함이 좋아 결혼을 결심한 남편조차 영혜의 노브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호기심으로 바라보거나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거나. 사람들은 영혜가 못마땅하다.

 

게다가 그녀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남편 회사의 간부는 영혜의 채식주의를 수렵생활 때부터 내려온 인간의 본성을 거부하는 행위로 받아들인다. 그냥 고기를 안 먹는 것뿐인데, 영혜는 졸지에 본성을 거스르는 여자가 되고 만다.

 

남편과 가족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억압하며, 그녀의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오히려 타인을 타박하고 억압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야 말로 수렵생활 때부터 내려온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그들은 참으로 인간적인 셈이다.

 

결국, 영혜는 스스로를 자해하기에 이르고, 이즈음 소설은 채식주의에서 몽고반점으로 넘어간다. (참고로 <채식주의자>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3편의 독립된 소설이 이어진 연작소설이다.)



 

몽고반점은 영혜가 채식주의를 선언한 이후 가족들과 갈등을 빚은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다. 남편은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결심하며, 영혜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홀로 살아간다. 그런 영혜를 돌보는 것은 언니 인혜다.

 

몽고반점이 던지는 금기는 바로 가족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성된다. 이른바 피를 나눈 혈족과 계약에 의해 맺어진 인척이다. 처제와 형부는 혼인이라는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인척관계라 볼 수 있다.

 

가족 간의 섹스는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혈족은 물론이고, 인척간에도 금기다.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으나, 작가는 몽고반점을 통해 이 당연한 가족과 가족간의 섹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인혜의 남편은 어느 날 아내로부터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강한 성적인 요구를 느낀다. 예술가인 형부는 영혜를 설득해서 그녀의 알몸에 거대한 꽃을 그리고, 그녀와의 섹스를 위해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려 넣는다.

 

섹스를 통한 두 사람의 정서적 교감은 쉽게 공감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한다. 동생과 남편의 관계를 목격한 인혜는 두 사람을 정신병원에 신고하고, 결국 영혜는 남편으로부터도 그리고 부모로부터도 버림받는다.

 

그렇다면, 사회적 금기의 끝은 어디일까. ‘나무불꽃에 이르러 작가는 이제 삶과 죽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진리처럼 보이지만, 작가에겐 삶이라는 명제조차 뒤집어 생각해봐야 할 사회적 억압과 금기였나 보다.

 

형부와의 사건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어쩐 일인지 음식을 먹지 먹고, 통 알 수 없는 소리만 한다. 나무가 되고 싶다는 영혜는 급기야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다. 지금껏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쳐온 인혜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동생 영혜가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끝내 피를 통하는 영혜를 보면서 알 수 없는 교감을 느낀다.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비로소 삶을 이해할 수 역설이랄까?

 

때로는 폭력에 눈감고,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온 인혜에게 있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동생 영혜의 모습은 오히려 그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삶이란, ‘당연히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독자에 따라 소설은 난해할 수도 있고, 불편함만 가득 안길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평소 당연하게 생각했던 말과 행동이 어쩌면 타인을 억압하는 족쇄는 아니었는지, 또 인간의 본성이라 믿었던 것들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내재화된 폭력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 정도는 될 수 있을 거 같다.

 

끝으로,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가는 식물, 그리고 나무가 되고 싶다던 영혜의 소원이 이뤄졌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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