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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규현의 성대모사가 불편했던 이유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힙합용어에서 출발한 '디스(disrespect의 줄임말)'는 최근 들어 그 쓰임새와 의미가 무척이나 다양해졌다. 특히 독한 방송을 표방하는 일부 예능프로그램서 디스는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지거나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화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이하 라스)>의 경우에는 이른바 ‘디스 정신’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 설명되어지기까지 한다. ‘디스’없는 ‘라스’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 프로그램의 재미와 웃음의 8할은 ‘디스’가 담당할 정도다.

 

하지만, ‘디스’의 목적이 제 아무리 웃음 유발에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모양새를 띠는 만큼, ‘디스’는 양날의 검일 수밖에 없다. 적절한 수위를 지키면 효과적인 웃음 장치가 되지만, 자칫하면 그저 남을 비웃고 놀리는 것에 그치는 ‘조롱’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방영된 <라스>에서 규현이 보여준 권상우 성대모사가 대표적인 예라 할만하다. ‘곱게 늙은 언니들’ 특집으로 마련된 이날 방송에서 MC들은 게스트로 초대된 김성령과의 대화 도중 느닷없이 권상우를 이야기 소재로 끌어들였다. 과거 김성령과 권상우가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춘바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규현은 권상우 특유의 발음을 흉내 내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명한 대사인 “옥상으로 따라와”라는 말을 과장되게 표현했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 대사 중 하나인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까지 가져다 붙였다. 권상우의 발음을 ‘디스’하여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규현의 과장된 몸짓과 표현은 오히려 게스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백지영이 그런 규현을 보며 “너 욕먹겠다”고 지적했을까.

 

 

 

 

하지만 규현은 2년 넘게 해온 성대모사라며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취했고, MC 김구라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김성령에게 “권상우의 혀가 짧은 것을 느낀 적 있냐”며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혀가 짧은 것은 느낀 적 없고, 발음이 자주 꼬여 NG는 자주 내는 편”이었다는 김성령의 현명한 대답 덕분에 웃고 넘길 수 있었지만, 이날 <라스> MC들이 보인 태도는 분명 개그나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엔 그 도를 넘어선 측면이 컸다.

 

 

 

 

방송에 출연하지도 않은 사람의 약점을 들추고, 그 사람을 공개적인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디스’ 라기 보다 ‘조롱’에 가깝다. 시청자가 <라스>를 좋아하는 까닭은 스타의 입장보다는 시청자의 시각에서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민감한 사안도 애써 감추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디스’는 외피를 둘러써도 그 안에는 게스트를 띄워주거나 웃음을 만들어 내기 위한 <라스>만의 따뜻한 감성이 녹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권상우를 향한 <라스>의 조롱은 이미 수많은 대중이 패러디 물로 제작한 바 있는 그의 발음 문제를 되짚은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라스>만의 날카로움이나 특유의 마이너 감성은 찾아볼 수 없는, 단지 즉흥적인 웃음을 위해 끌어다 쓰는 놀림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선 자신들이 놀린 권상우를 향해 ‘만약 억울하다면 <라스>에 나오라’며, 출연 제의를 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성의 없고 무책임한 모습이란 말인가. 이는 방송에 나와 충분히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출연하지 않은 권상우의 잘못인지, 그를 놀린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자기 면죄부’에 다름 아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디스’의 묘미는 아슬아슬함에 있다. 마치 떨어질 듯 떨어질 듯 긴장감을 안겨주는 줄타기와 비슷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야 하며, 무엇보다 균형감감이 중요하다. <라스> 또한 다르지 않다. ‘디스’가 이 프로그램을 지탱하는 정체성이자 웃음 유발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면, 이제부터는 ‘디스’가 단순한 ‘조롱’에 그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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