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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규석의 도끼질, 지금은 없는 이야기

최규석의 도끼질, 지금은 없는 이야기

책 이야기/문학,소설,수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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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양장)
국내도서>만화
저자 : 최규석
출판 : 사계절 20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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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교주 노홍철에게 띄우는 편지 part2.



안녕하세요 교주님.

 

우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긍정적인 사고와 낙천적인 마음가짐으로 방송에 임하시는 교주님의 모습에 경외와 찬사를 보냅니다. 긍정교 믿음이 부족한 저는 시간이 없으면 잠을 줄이고 돈이 없으면 굶으라고 윽박지르는 세상에 쉽게 지치곤 하는데요. 그럴때는 늘 교주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은 내 책임이며, 저의 긍정에너지가 부족함을 반성합니다.

 


오늘 이렇게 두 번째 편지를 띄우는 까닭은 긍정교 교인으로서 우리 긍정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알려드릴까 해서입니다. 특히 우리 긍정교가 앞으로 더 발전하려면 교주님께서 꼭 알아야할 거 같아 무례를 무릅쓰고 펜을 들었습니다.

 


긍정교도인 사이에서 ‘불온서적’으로 널리 알려진 <긍정의 배신>에 대해서는 교주님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교주님, 놀라지 마십시오. 적은 내부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금서목록에 오를 정도의 불건전한 책이 출판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긍정교리를 부정하는 대부분의 책들은 두껍고 복잡해서 써먹어야 할 때 기억이 안나고, 결정적으로 잘 안팔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은 고통조차 웃으며 견디고, 우주의 긍정에너지가 자신에게 찾아오길 바라며 오늘도 ‘웃음’과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 덕에 행복해 합니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이야기. 불평불만 할 시간에 자기개발에 몰두하라는 이야기. 낙천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등. 우리 사회에는 긍정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스토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는 우리 긍정교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커다란 힘이 됩니다. 때문에 제 아무리 <긍정의 배신> 같은 불온서적이 인기를 끈다 해도, 막상 읽고 나면 기억에 남지 않아 우리 긍정교에는 별다른 위험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자책하면서 동기유발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대신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비함에 목소리를 높여라” 라는 식의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읽을 때 재미있고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지겠습니다. 물론 지금은 없는 이야기이니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긍정교리에 정면 도전하는 최규석의 도끼질

 


오늘 교주님께 편지를 띄운 이유는 바로 그, 단 하나 우려가 되는 ‘지금은 없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평소 긍정교리에 대해 짜증나고 분노했다는 만화가 최규석은 제가 우려했던 부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적장이지만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는 ‘이야기에는 이야기로 맞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최근 우화집 <지금은 없는 이야기(사계절)>를 세상에 내놓았는데요. 우선 작가의 말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 따위가 몇 개 되지도 않는 이야기로 수천 년 동안 유통되어 온 이야기들과 맞서려는 것이냐고 책망하지는 마시라. 나도 안된다는 것 알고 그럴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이야기들 중 몇 개만이라도 살아남아 다른 많은 우화들처럼 몇 개만이라도 살아남아 다른 많은 우화들처럼 작자 미상의 이야기로 세상에 떠돌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쓰이기를, 그리하여 오르지 못할 나무를 찍는 열 번의 도끼질 같은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 작가의 말 中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긍정교리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최규석의 도끼질을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제 편지를 읽는 교주님의 반응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저도 모르게 책 속에 완전 몰입되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제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최규석의 이야기는 흡입력이 뛰어났습니다. 특히 우화라는 형식은 매회 짧은 이야기가 남기는 여운과 결합하며 강렬한 폭발력을 빚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개와 돼지’라는 이야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신이 만든 돼지는 늘 개에게 뜯기고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개를 없애 달라는 돼지의 요청을 신은 거부하고, 이에 돼지는 개에게 당하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을 달라고 합니다. 신은 돼지에게 ‘웃음’과 ‘망각’을 선물하고, 돼지는 웃고 잊음으로써 개처럼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결말입니다. 무언가 부족한거 같다는 느낌이 들 때 돼지의 상처난 몸과 얼굴 그림이 페이지 끝을 장식합니다. 허탈함 뒤에 ‘쓴웃음’이 밀려옵니다.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뼈아픈 진실

 

교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의 긍정교는 실패와 고통 등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가혹함이 긍정 교리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단지 마음의 자세로 사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그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불행한 소년’, ‘돼지의 왕’, ‘냄비 속의 개구리’ 등의 이야기는 이런 긍정교의 불합리성에 대한 고발과도 같습니다. 지금껏 현실적 사회모순들에 대해 일어나야할 저항이나 여기에 들어가야 할 사회적 비용을, 주관적 행복이나 인내 같은 미담 윤리로 억제하고 개인에게 전가시킨 우리 사회를 동물과 식물 등을 통해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가위바위보’, ‘팔없는 원숭이’와 같은 이야기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결과를 단지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려서, 개인이 조직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편가르기와 진영논리, 성장지상주의 등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뼈아픈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더군요. 아마도 예전의 저였다면,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불편해 중간에 포기했겠지만, <긍정의 배신>을 통해 기른 내성 덕에 한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교주님,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 깊이와 강도, 표현방식의 실험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자책하면서 동기유발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대신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비함에 목소리를 높이라”는 주장만은 명확해 보입니다. 문제는 긍정교의 교리 자체를 흔드는 이 주장이 꽤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주님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해결책이 있습니다. 바로 그동안 모든 상황에 있어 마음가짐에서 시작했던 우리의 ‘출발선’을 사실로 옮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긍정이냐 비관이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외면하느냐 마주보느냐의 진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불안하시다고요? 이런,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하하~ 웃고 잊어버리는 거에요. 어차피 지금은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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