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리뷰, 악이란 무엇인가?

 

젠가(Jenga)라는 게임이 있다. 규칙은 간단하다. 같은 사이즈인 직육면체의 블록을 쌓아 만든 탑에서 한 조각을 빼 맨 위에 원하는 모양으로 올리면 된다. 한 손만 사용해야 하고, 자신의 순서에서 탑이 무너지면 패하게 된다. 어디서 블록을 빼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올리느냐에 따라 탑의 모양은 시시각각 변한다.

 

최근 화제작(혹은 문제작)으로 떠오른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흡사 젠가 게임을 보는 듯하다. 젠가에서 54개의 블록이 하나의 탑을 이루듯, 곡성 역시 수많은 소재와 장르, 그리고 상징과 은유가 얽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록을 쌓아갈수록 탑의 모양이 변하는 것처럼, <곡성> 역시 관객의 해석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그 함의가 더욱 다양해진다.

 

 

 

 

믿음과 배신, 엑소시즘과 샤머니즘, 기독교와 무속신앙, 선과 악 등 <곡성>에서 관객이 빼낼 수 있는 블록은 무척 다양하다.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배경지식에 따라 <곡성>은 완결성을 갖춘 영화가 될 수도 있고, 불친절한 영화가 될 수 도 있다. 영화는 나홍진 감독이 만들었으나, 그걸 완성시키는 건 결국 관객의 몫인 셈이다.

 

 

초월적 존재로 돌아온 나홍진 감독, 그의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추격자><황해>를 통해 인간의 폭력성과 악마성을 탐구해 온 나홍진 감독은 <곡성>에 이르러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너무 거창한 것 아니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악마와 신이 등장하는 건 나홍진 감독이 도달한 나름의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묻지마 살인과 같은 잔혹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 그들은 피해자가 되어야 했을까?

가해자가 <추격자> 속 지영민(하정우 분)처럼 사이코패스라서? 아니면, <황해> 속 면가(김윤식 분)처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니까? 누구도 이에 대해 명확히 답을 내릴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이걸 두고 신의 농간혹은 악마의 장난이라 표현한다고 한들, 앞선 고민이 씻은 듯 개운해질리 만무하다. 오히려, 이런 접근법은 허탈함과 무력감을 양산해낼 뿐이다.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초월적 존재가 인간 세상에 개입하는 경우, 우리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신과 악마에 비해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대체 무엇이고, 그들의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곡성>은 평범한 경찰인 종구(곽도원 분)의 시선으로 그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마을에서는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확실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경찰 측에서는 야생 버섯 중독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밝혀내지만, 그게 전부라고 믿는 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산 중턱에 사는 외지인(쿠니무라 준)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가고, 심지어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기에 이른다. 물론, 경찰인 종구는 그런 소문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종구의 딸에게서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 순간, 종구의 입장은 180도 변한다. 종구는 딸이 아픈 게 모두 외지인 때문이라고 믿고, 그를 찾아가 행패를 부린다. 그럼에도 차도가 없자 급기야 유명한 무당인 월광(황정민 분)을 불러들여 굿판을 벌인다.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종구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중후반에 이르러 영화는 무너지기 직전의 젠카 탑처럼 기괴한 형태를 띤다. 장르는 고사하고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뚜렷하지 않다. 마치 산 중턱에서 안개가 잔뜩 낀 마을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심지어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 무엇이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언가 매듭지어져야 할 종반 역시 영화는 그 특유의 불친절함(?)을 유지한다. 아니 오히려 위태로운 느낌이 더 강하다. 밑바닥은 구멍이 송송 뚫리고, 윗부분은 불규칙한 블록이 제멋대로 위치해 무게중심을 흩트린다. 지금껏 감독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따라온 관객들은 이제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어떤 블록을 빼고 어디에 올릴 것인가. 해석의 여지는 점점 더 넓어지고, 지금껏 자신이 보아온 장면들을 의심한 게 된다. 혹시 놓친 건 없는지, 아니면 미끼를 물은 것인지, 고민하는 순간, 영화는 또 한 번 충격적인 반전을 선보인다.

 

그리고 묻는다. 악이란 무엇인가?

 

 

 

 

폭력을 행사하고 사람을 죽이면 그건 악인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영화 속에서 무명(천우희 분)과 외지인(쿠니무라 준)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를 때리고 물리적인 폭력을 동원하며, 칼부림을 일으키는 건 죄다 사람의 짓이다.

 

선량한 마을주민으로 대표되는 종구조차 미치고 날뛰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단지, 딸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행동이 전부 이해될 수 있을까? 신과 악마라는 초월적 존재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나홍진 감독의 문제의식은 여전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을지 몰라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건 사람이다.

 

악은 내안에 있다.

이게 바로 <곡성>이라는 게임에서 필자가 쌓아 올린 마지막 블록이다.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제작사 및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등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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