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리뷰토피아

<달의 연인>의 부진, 단지 아이유 때문일까?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달의 연인>의 부진, 단지 아이유 때문일까?

 

시청률 참패, 연기력 논란, 미스 캐스팅, 사전제작의 함정. 지난 한 달간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가 거둬들인(?) 기분 나쁜 수식어들이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던 경쟁작 <구르미 그린 달빛>에게 1라운드 KO패를 당하고 만 <달의 연인>에겐 달의 몰락이란 조소까지 뒤따르고 있다.

 

100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와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은 <달의 연인>은 어째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부진의 늪에 빠지고 말았을까. 세간의 분석대로 몇몇 가수 출신 배우의 부족한 연기력이 발등을 찍은 것일까? 그 이유를 살펴보자.

 

 

 

 

아이유의 사극 연기 분명 시기상조이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배우 이지은(아이유)의 사극 연기는 아직 시기상조인 듯 보인다. 현대극에서는 이질감 없이 극에 녹아들었던 아이유가 유독 <달의 연인>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는 건, 그만큼 그녀의 사극연기가 다른 배우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의미로 해석가능하다.

 

그나마 타임슬립(시간이동)’ 설정 덕에 아이유는 현대인의 말투와 감정을 기반으로 연기를 펼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연기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기 보다는 겉도는 인상을 심어준다. 차라리 힘을 더 빼고 연기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도전하면서 연기 내공을 더 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의 부진을 아이유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그녀의 연기가 부족한 것과는 별개로 <달의 연인>은 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바로 최근 드라마의 흥행 공식과도 같은 직진 로맨스폭풍 전개를 모두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느슨했던 1·2, 불필요한 삼각로맨스, 시청자를 잃다

 

<달의 연인>은 한주 앞서 출발한 <구르미 그린 달빛>을 따라잡기 위해 지난 8291,2회를 연속 방영하는 파격적인 편성전략을 들고 나왔다. 그 결과 가시적인 성과도 거뒀다. 7.4%에 불과했던 1회 시청률이 2회에 이르러 9.3%까지 뛰어 오른 것이다.

 

문제는 1,2회를 모두 보고 난 시청자의 반응이다. 퓨전사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려 뭔가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했던 시청자는 단순한 인물 소개에 그치고 만 느슨한 전개에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3회 시청률이 7%로 곤두박질 친 이후 좀처럼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건 바로 극 초반의 지지부진한 전개 탓이다.

 

차라리 <육룡이 나르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주요 캐릭터의 에피소드를 따로 그려낸 뒤, 인물 각각의 등장을 보다 더 극적으로 표현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청자의 눈길을 잡기 위해선 보다 더 빠른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어야 했는데, 여기서 제작진은 상당한 시간을 아이유-이준기-강하늘의 삼각관계에 할애하고 말았다. 특히, 극 설정상 형부와 처제로 연을 맺은 아이유와 강하늘의 감정의 깊어지면서 근친로맨스는 논란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남녀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로맨스는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검증된 이야기지만, 최근엔 그 결이 조금 달라졌음을 제작진은 이해하지 못한 듯 보인다. 시청자는 이제 복잡한 감정 변화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만을 고집하는 직진 로맨스에 더 열광한다. <구르미 그린 달빛> 역시 삼각관계가 등장하긴 하지만 <달의 연인>처럼 복잡하게 그려내진 않는다. 오히려 박보검과 김유정의 서로를 향한 마음에 집중하면서 시청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중이다.

 

 

 

 

안타까운 건, <달의 연인>의 경우 100% 사전제작드라마라는 특성상, 극 초반 지적된 문제들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이준기를 중심으로 한 액션이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하고, 주인공들의 복잡했던 로맨스도 조금씩 정리되는 모양새지만, 이미 떠나버린 시청자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무언가 더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걷다란 뜻을 가진 한자어 보보경심’. 바로, 지금이야 말로 얼어붙은 시청자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걸어갈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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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인 아이유, 왜 고려까지 넘어간 것일까?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그래서 아이유는 왜 고려까지 타임슬립(시간이동)’한 것일까? 이준기, 아이유 강하늘 주연의 100% 사전 제작 드라마, SBS 수목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를 시청하는 동안 끝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다.

 

판타지 드라마에서 맥락을 찾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특히, 타임슬립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의 경우엔 더 그렇다. ‘만약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해 뿌리를 내린 이야기 앞에 라는 질문을 던져본들, 돌아올 대답은 너무도 뻔하다. 드라마니까.

 

따라서, <달의 연인> 속 아이유의 타임슬립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가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해버린 이유는 결국 타임슬립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거 같다.

 

 

 

 

타임슬립이란 설정 살리지 못한 <달의 연인>

 

여기서 잠깐, 3회까지 방영된 <달의 연인> 시청률 추이를 보자. 7.4%(닐슨 코리아, 전국기준)에서 시작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1,2회 연속방송이라는 파격적인 편성전략에 힘입어 29.3%까지 올랐다. 하지만 30일 방영된 3회는 7.0%로 곤두박질쳤다. 이 드라마에 별다른 재미를 못 느끼고 시청자가 이탈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이유가 동시간대 경쟁작인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선전만은 아닐 것이다. 연기력 논란에 휩싸인 몇몇 배우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도 한계가 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타임슬립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가져다 놓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야기 구성, 그리고 연출에 있다.

 

 

 

 

냉정하게 짚어보자. 과거의 인물이 현대로 넘어오거나, 반대로 현대에 살고 있는 인물이 우연찮은 계기로 과거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한국 드라마에서 더 이상 낯선 소재가 아니다. 당장 생각나는 드라마만 꼽아봐도 SBS <옥탑방 왕세자> , tvN <인현왕후의 남자> , MBC <닥터진>, SBS <신의> 등이 있다. 타임슬립 드라마의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한 tvN <나인>과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까지 더하면, 오히려 식상할 정도다.

 

그럼에도 시간이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되고 줄곧 인기를 이어온 건,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3인칭 시점으로만 배워온 역사를 주인공 시선으로 바라볼 때, 시청자에게 기록된 역사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또 주인공의 일탈 행동으로 인한 과거의 변화는 현재에 까지 영향을 미치며 시청자를 긴장감에 빠트리기도 한다.

 

굳이 어려운 카오스이론이나 평행우주 같은 세계관으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타임슬립 드라마는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액션과 로맨스만 잘 결합시키면 안방극장의 강자가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상상력 실종된 타임슬립은 결국 낭비다

 

그런데, 웬걸. 태조 왕건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달의 연인>에선 좀처럼 타임슬립 드라마 특유의 긴장감과 재미를 찾아볼 수 없다. 이준기를 앞세운 액션도 화려하고, 강하늘-아이유-이준기로 이어지는 삼각 로맨스도 불꽃이 튀고 있는데, 그럼에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이 드라마가 타임슬립이란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회 까지 방영된 내용만 놓고 보자면, <달의연인>은 시간이동이란 개념을 단순히 여자주인공의 캐릭터 구축에만 낭비하는 느낌이다.

 

고려시대의 차분한 여인과는 달리 털털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약간의 무대포 기질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필요해 굳이 아이유가 맡은 해수라는 캐릭터를 현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간 설정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닥터진><신의>에서는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과거가 넘어가면서 그 당시엔 불가능했던 수술을 집도해 역사적 인물을 살려 낸데 반해 <달의 연인>속 아이유는 그저 현대의 경력(?)을 살려 색조 화장을 하는 정도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굳이 아이유가 고려까지 타임슬립(시간이동)’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상상력이 실종된 타임슬립은 결국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아직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궁중암투가 본격화되고, 황자들의 권력 다툼이 더 치열해진다면, 그 안에서 해수(아이유 분)의 비중 역시 높아질 것이다. 때로는 역사적 지식을 이용하여 난관을 헤쳐 나가고, ‘시간이동이란 상상력에 어울리는 긴장감 넘치는 사건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떠나버린 시청자의 마음을 뒤늦게 어떻게 돌리겠단 말인가. 극 초반 타임슬립을 활용하여 보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연출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으면 좋았으련만, <달의 연인>은 타임슬립이란 소재를 전혀 매력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타임슬립 드라마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오히려 퇴보한 느낌마저 주는 <달의 연인>. 결국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유는 왜 고려까지 타임슬립(시간이동)’을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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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뱀파이어는 왜 시청률 사냥에 실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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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뱀파이어는 왜 시청률 사냥에 실패했을까?

흡혈귀에 대한 재해석이 아쉽다

 

올해 들어서만 3편. KBS 2TV <블러드>와 <오렌지 마말레이드>에 이어 MBC <밤을 걷는 선비>까지, 상반기 안방극장은 유독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눈에 띄었다. 지난 2011년 OCN에서 방영한 <뱀파이어 검사>처럼 흡혈귀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3편의 드라마가 연달아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재미있는 건, 드라마 속에서는 괴력을 발휘하고 하늘을 나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해주는 뱀파이어가 정작 안방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종영한 <블로드>는 4~5%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하며 불명예를 떠안았고,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그보다 못한 3% 내외에서 허덕이다 종영했다. 그나마 <밤을 걷는 선비>가 7%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선전(?)하는 듯 보이지만, 원작 웹툰의 인기와 주연배우 라인업을 감안하면 이 또한 아쉽게 느껴지긴 마찬가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는 SBS <용팔이>가 20%를 넘기며 순항하는 것에 비춰보면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질만 한 성적표다.

 

 

 

 

비단 시청률만의 문제는 아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 떠들썩했던 분위기와 달리 세 드라마는 막상 방송이 시작된 이후에는 이렇다 할 화제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 마디로 기대에 못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 뱀파이어는 왜 시청률 사냥에 실패한 것일까.

 

우선은 식상한 이야기 구조와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인 ‘멜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세 드라마 모두 ‘착한 흡혈귀 vs 나쁜 흡혈귀’라는 선악 구도를 통해 갈등을 유발하는데, 이는 굳이 흡혈귀가 아니어도 가능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중세 루마니아의 뱀파이어 백작에서 출발한 흡혈귀라는 소재를 가져와 뻔하고 뻔한 선악 대결을 선보이고, 이어 ‘흡혈귀가 연애하는 스토리’로 마무리를 짓는다면, 시청자가 채널을 고정해야 할 이유는 결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역시나 ‘재해석’이다. <블러드>의 경우 피를 먹고 사는 흡혈귀의 직업이 의사라는 설정은 참신했으나,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의학 드라마라는 장르를 위해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낭비한 느낌이 강했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와 <밤을 걷는 선비> 또한 마찬가지다.  뱀파이어가 인간사회에 숨어 지내는 존재거나 혹은 그 배경을 조선시대로 택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필요한데, 두 드라마는 모두 원작인 웹툰의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 대답을 대신한다.

 

드라마는 만화와 다르게 현실에 발을 붙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세 드라마는 흡혈귀라는 소재에만 집착할 뿐, 그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시청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물론, 그저 영화를 보듯 뱀파이어의 화려한 액션을 즐기거나 CG를 감상할 수도 있겠으나, 드라마가 종영되는 두 달 가까운 시간을 그저 화려한 볼거리만 가지고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에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한다. 착한 뱀파이어가 나쁜 뱀파이어를 무찌르고, 끝내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클리셰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변주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뱀파이어라고 해서 꼭 ‘피’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피를 먹지 못하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뱀파이어, 대체 언제 적 이야기란 말인가. 발상의 전환 없이는 새로움도 없고, 재미도 기대할 수 없다.



 


 

뱀파이어는 더 이상 우리들에게 낯선 소재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계속 제작될 것이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고 해서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배경이 어디든, 직업이 무엇이든,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두고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충분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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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선비 이준기, 그는 어떻게 사극의 ‘끝판왕’이 되었나?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밤을 걷는 선비 이준기, 그의 사극은 왜 매번 새롭게 보일까?

 

배우에게 어떤 하나의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이미지의 아이콘이 된다는 것은 자신만의 확실한 경쟁력과 캐릭터를 갖추는 일이 되겠지만, 동시에 새로운 역할을 도전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줄곧 액션만 하던 배우가 멜로에 도전하면 어색하게 느껴지고, 또 악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에게는 비슷한 캐릭터만 제의가 들어오는 것이다. 물론, 그 틀을 깨고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게 되면 ‘팔색조’와 같은 새로운 ‘훈장’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준기는 참 독특한 위치에 있는 배우인거 같다.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일지매>, <아랑사또전>, <조선총잡이>에 이어 최근 방영 중인 <밤을 걷는 선비까지>, 마치 사극이라는 장르에 고정화된 배우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도 멜로면 멜로, 액션이면 액션 등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어느덧 시청자에게 ‘믿고 보는 배우’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그에게 ‘사극의 끝판왕’이란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배우 이준기식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는 발성과 호흡이라는 사극 연기의 기본기가 탄탄한 이유도 있겠지만, 과장되지 않은 몸짓과 눈빛, 그리고 사극이라는 하나의 장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의 매력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배우에게 있어 외모적인 조건은 캐릭터를 선택하거나 작품을 고르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선한 인상을 가진 배우가 아무리 악을 쓰고 욕을 한다 하더라도 악인 캐릭터에 제대로 녹아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준기 역시 곱상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얼굴 때문에 어쩌면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발성과 연기력을 통해 이를 극복해 냈고, <왕의 남자> 이후 자신에게 주어진 사극 이미지에 갇히기 보다는 이를 훨씬 더 다양한 캐릭터로 발전시켜나갔다.

 

 

 

 

이는 정통사극 보다는 주로 퓨전사극에 그가 캐스팅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가 출연했던 사극 속 캐릭터는 대부분 액션의 강도가 높은 캐릭터인데, 그는 불편한 한복을 입고도 이를 어색하지 않게 소화해낸다. 그리고 <밤을 걷는 선비까지>에서는 그의 날카로운 인상을 십분 활용하여 흡혈귀라는 다소 우리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캐릭터까지 ‘맞춤옷’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만약 그가 사극 캐릭터라는 이미지에 갇혔다면, ‘이준기표 사극’은 뻔하다는 느낌이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출연했던 사극 드라마 <일지매>, <아랑사또전>, <조선총잡이>, <밤을 걷는 선비까지>를 뜯어보면, 비슷하다는 느낌보다는 새롭다는 이미지가 먼저 다가온다. 그만큼 이준기가 보여주는 모습과 캐릭터가 매번 달라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준기의 연기 행보를 되짚어 볼 때, 앞으로도 그는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퓨전사극에 종종 모습을 비출 것이다. 그럼에도 한복을 입은 이준기의 캐릭터가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다른 작품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저주가 될 수도 있었던 사극 이미지를 오히려 축복으로 바꾸고 매번 발전시켜 나가는 그의 다름 행보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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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사또전 19회, 해피엔딩 암시한 장면과 숨겨진 반전!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아랑사또전>의 등장 인물은 너나 할거 없이 가혹한 운명을 안고 있습니다. 무연은 전생에 연인이었던 무영과 오누이로 태어나 결국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됐고, 주왈은 자신을 사랑했던 여인을 죽이고, 또 자신이 죽였던 여인을 사랑하게 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랑과 은오는 또 어떤가요. 자신을 죽인 여자의 아들을 사랑하게 된 아랑,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제손으로 어머니를 죽어여 하는 은오의 처지는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과연 아랑이 무연에게 몸을 내어줄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아랑사또전> 19회는 은오가 어머니의 심장에 비녀를 찌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는데요. 다소 빠르게 진행된 이날 이야기는 스토리 라인의 중심에 선 이들 네명이 각자 자신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에 맞서 저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선 무연은 욕망을 가질 수 없는 천상의 존재로 태어났으나 무영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결국 잘못된 방식으로 그 욕망을 해결하는데요. 그녀는 인간의 몸을 바꿔가며 이승에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결국 불사의 몸을 가진 아랑을 탐내게 된 것입니다. 무연은 이날 서씨가 은오의 비녀에 찔려 강제적으로 혼이 분리되자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아랑에게 달려 들었는데요. 스스로 정한 원칙마저 깨버리고 인간의 몸을 취하려 드는 모습은 그저 욕망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일 뿐이었습니다.

 

 

 


한편 아랑은 사랑하는 은오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연에게 몸을 내어주고 서씨를 구하는 것이라 여겼는데요. 홀로 무연을 찾아가 거래를 하고자 하였으나 주왈과 무영, 은오가 나타나 무연과 아랑의 거래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은오에게 “이러는 게 정말 날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냐”며 한 소리 듣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고 오열하는 모습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애틋함이 절절하게 그려진 것 같습니다.

 

 


뒤 늦게 아랑이 이서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서림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죽었다는 것을 떠올린 주왈은 지난 삶에 대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는데요. 이날 주왈은 아랑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랑에게 무릎까지 굻고 “날 용서하지 말라고”고 흐느끼는 주왈의 모습에서는 비록 그가 홍련을 위해 혼사냥을 한 악인이지만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 같아 용서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저마다 가혹한 운명에 맞서 최선의 선택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은 바로 은오인데요. 은오는 아랑을 희생시키지 않고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길이 대체 무엇인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은오에게 주왈은 서씨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주는데요. 아랑과의 거래가 실패로 돌아가자 무연의 혼이 약해져 일시적으로 서씨가 돌아온 것입니다. 서씨는 그동안 복수심에 눈이멀어 아들을 잘 챙겨주지 못한 것을 반성했는데요. 서씨는 산 목숨도 죽은 몸숨도 아닌 자신을 구해 달라며, 기회가 오면 꼭 무연을 단번에 죽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아무리 무연이 지배하는 몸이라고는 하나 은오 입장에서는 어머니 몸을 찔러야 하는 것인데,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정말 은오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아랑사또전>은 ‘과연 아랑이 무연에게 몸을 내어줄 것인가?’에서 ‘과연 은오가 어머니의 몸을 찌를 것인가?’로 그 물음이 바뀌게 됩니다번민하는 은오는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에서 옥황상제를 만나 답을 구하게 됩니다. 바로 어머니를 살릴 길은 없고, 오직 구할 길만 있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바로 옥황상제의 비녀로 어머니를 찔러 무연의 혼을 떼어 놓고, 어머니의 혼을 고통해서 구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결국 은오는 옥황상제의 가르침을 따라서 결심을 하는데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에 놓여있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운명을 받아 들입니다. 바로 어머니의 모습을 한 무연을 비녀로 찌른 것이지요.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니의 가슴에 비녀를 꽂는 은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은오의 꿈 속에 아주 주목할 만한 상황이 펼쳐졌는데요. 바로 저승으로 가야 할 아랑이 은오와 살림을 차리고, 심지어 아들과 딸을 낳고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비록 은오의 꿈 속장면이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저는 이 장면이 얼마 후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수백년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무연을 잡는데 있어 아랑과 은오가 결정적 역할을 한 만큼 거기에 따른 옥황상제의 보상이 있지 않겠냐는 것인데요. 그 대가로 아랑이 이승에서 은오와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봤습니다. 결국 은오의 꿈 속 장면에서 두 사람이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은 바로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런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이서림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그것인데요. 옥황상제가 아랑에게 보름달 세개 만큼의 목숨을 주며 다시 인간으로 만들어줬을 당시 약속했던 ‘진실의 종’이 아직 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옥황상제는 이서림을 죽인 사람의 죽음만이 진실의 종을 울리게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날 방송 말미에 방영된 예고편을 보니, 서씨가 비녀에 찔려 죽음을 맞이해도 종은 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서림을 죽인 것은 서씨가 아닌 제3의 인물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서씨의 칼에 맞고 쓰러진 이서림은 당시 아직 숨이 붙어 있었고, 무연의 명에 따라 이서림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절벽에서 떨어뜨린 주왈이 결국은 이서림을 죽인 진범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랑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천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주왈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이게 바로 오늘 방영될 마지막회에 숨겨진 반전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아랑이 다시 살아 돌아온 이유를 알게 된다면 주왈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가혹한 운명에 맞서 싸워온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요? 남은 것은 옥황상제의 ‘최선의 선택’ 뿐이겠죠? 은오가 꾸었던 꿈이 현실이 되길 바라면서, 오늘 마지막회를 기다리겠습니다.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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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사또전 17회 : 아랑이 몸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이유!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종영까지 3회만을 앞둔 <아랑사또전>의 최대 관심사는 이제 ‘과연 아랑이 홍련(무연)에게 몸을 내어줄 것인가’입니다. 이서림이었을 당시 기억이 모두 돌아온 아랑은 10일 방영된 17회분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는데요. 바로 은오 어머니인 서씨 부인을 위해 홍련(무연)이 원하는 자신의 몸을 내어줄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은오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홍련으로부터 어머니를 구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지만, 그렇다고 아랑의 몸을 요물에게 내어줄 수는 없습니다. 이서림을 죽인 것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오열하는 은오의 모습에서 참 얄궂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왜냐하면 아랑이 천상에서 살 수 있으려면 아랑을 죽인 존재의 죽음이 필요한데, 그 존재가 바로 서씨이니 은오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행히 방법이 하나 생겼습니다. 방울이의 조상님께서 탁월한 신기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답을 알려준 것인데요. 구속당한 영혼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몸에 집어 넣으면 점령한 영혼이 빠져 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때 빠져나간 영혼을 처치하면 되는것이죠. 결국 서씨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찾아서 홍련의 몸에 집어 넣으면 무연의 혼이 빠져 나가게 될 것이란 이야기인데, 아랑과 은오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바로 왜 이서림이 죽던 날밤 서씨 부인은 자발적으로 홍련에게 몸을 내어주었느냐는 것인데요. 이를 알아야 은오 어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아랑과 은오는 각각 주왈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선 은오는 주왈을 만나기 위해 최대감 집으로 향하지만, 최대감 사병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다행스러웠던 것은 은오의 이 부상으로 인해 아랑과 은오의 달달한 키스신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인데, 두 사람의 애절한 감정선이 잘 살아나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키스신은 크게 뇌리에 남지 않더군요.

 

 

 

은오가 주왈을 만나는 것에 실패한 것과 달리, 아랑은 최대감집 앞에서 주왈과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아랑은 주왈로부터 홍련의 정체에 대해 듣게 됩니다. 홍련이 원래는 천상의 선녀이며, 이승에서 사람의 몸을 바꿔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하지만 주왈 역시 서씨가 왜 홍련에게 몸을 내어주었는지 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랑은 직접 홍련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로 합니다. 주왈에게 홍련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죠.

 

 

 

예고편을 보면, 홍련은 아랑에게 가장 원하는 것을 물으며 몸을 탐하는 모습을 보였고, 아랑은 서씨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알고자 홍련과 신경전을 벌였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최대감의 계략에 빠져 사또 은오가 상급 관찰사로에게 잡혀 옥에 갇히게 된 것이죠. 종영을 코 앞에 두고 남자 주인공을 옥에 가두는 제잔진이 정말 생각이 있는 건지..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이는 결국 아랑이 홍련에게 몸을 내어주도록 만들기 위한 설정으로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날 아랑은 은오에게 “사랑했소”라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였는데요. 시한부 인생이니 만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려 했지만, 때로는 기억과 추억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방울이의 말에 따라 은오에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전한 것입니다.

 

결국 아랑은 옥에 갇힌 은오를 보고 결심을 굳힐 것으로 보이는데요. 제 생각으로는 은오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홍련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앞서 방울이 조상님께서 언급했던 말을 떠올리면 은오와 아랑에게 있어 어쩌면 이 방법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홍련이 아랑의 몸 속에 들어가게 되면, 서씨 부인은 원래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은오 입장에서는 어머니를 구하게 되는 것이죠. 그 뒤 아랑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바로 은오를 아랑의 몸에 집어 넣으면(키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무연의 혼은 아랑의 몸에서 나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때 무영이 무연의 혼을 처리한다면, 옥황상제의 계획은 성공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어차피 옥황상제에게 있어 아랑은 미끼였으니까요.

 

물론 아랑을 죽음으로 이끈 존재, 즉 서씨 부인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랑이 천상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연을 잡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으니 아랑의 또 다른 소원을 옥황상제가 들어주지 않을까요? 가령, 아랑 설화에 나오는 대로 아랑이 나비로 환생한다던지...

 

이렇게 아랑이 홍련에게 몸을 내어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제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따로 있는데요. 바로 홍련을 받아들이고 선보이게 될 신민아의 악역 연기입니다.

 

 

 

그동안 신민아는 예쁜 비주얼을 바탕으로 밝고 긍정적이며 사랑스러운 연기를 주로 해왔는데요. 아랑이라는 캐릭터 역시 착하고 순하다는 측면에서 ‘연기변신’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신민아의 전작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캐릭터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지금 홍련을 연기하는 강문영이 캐릭터의 특성상 독한 표정과 말투를 내뿜는 것처럼, 신민아 역시 무연에게 몸을 내어주면 그렇게 연기를 해야 합니다. 상상만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지만, 신민아가 연기하는 홍련은 분명 색다른 느낌을 줄 것입니다. 어쩌면 제작진이 드라마 종영 전 준비하고 있는 마지막 반전이 바로 신민아의 홍련 연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신민아가 연기하는 홍련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랑의 선택이 기대되는 이유죠.)

 

과연 신민아의 표독스러운 연기를 볼 수 있을까요? 드라마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이 쏠리네요. 그런 의미에서, 아랑아! 은오가 분명 널 구해줄터이니, 잠깐만 홍련에게 몸을 내어주면 안되겠니?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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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사또전 16회 : 드디어 밝혀진 아랑의 죽음, 시청자 뒤통수 친 대박 반전!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그야말로 ‘대박 반전’ 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서림을 죽인 것은 무연에게 처녀혼을 갖다 바치기 위한 주왈이라는 것이 대다수 시청자의 예상이었는데요. <아랑사또전> 작가는 이런 시청자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야말로 ‘멘붕’급 반전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서림을 죽인 것은 다름아닌 은오의 어머니 서씨였던 것입니다.


4일 방영된 <아랑사또전> 16회는 ‘LTE’급 전개를 선보이며 많은 비밀을 풀어 헤쳤는데요.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모두가 궁금했던 이서림이 죽던 날 밤 생긴 일이었습니다. 지난 방송에서 은오의 어머니 서씨가 왜 최대감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가 밝혀졌는데요. 이날 은오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최대감과 어머니 사이에 얽힌 원한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어 최대감집에서 살았던 하인으로부터 서씨가 최대감 국에 독을 타다가 발각되어 죽을 고비를 맞이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죠.


은오의 의문은 죽다 살아난 어머니가 왜 홍련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였는데요. 이는 은오와 함께 홍련을 찾아간 아랑의 기억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은오는 잡귀들을 동원하여 홍련이 머물고 있는 폐가의 위치를 찾아낸 뒤, 아랑과 함께 홍련을 만나러 갔는데요. 아랑과 은오를 맞이한 홍련은 아랑을 향해 “맵씨 좋은 아가씨가 여기까지 왔다”고 반겼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랑은 비로소 자신이 이서림이었을 당시의 기억을 모두 찾았는데요. 알고보니 이서림은 주왈과 서씨가 홍련을 찾아 폐가에 오던 날 밤 이들의 뒤를 밟아 폐가까지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씨의 머리에 있는 비녀를 뽑아 들며 가지 말라고 말렸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만약 아랑이 비녀만 뽑아 들지 않았어도 무연이 서씨의 몸에 들어갈 수는 없었을 텐데..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어쨌든 그날밤 무연은 최대감으로부터 서씨를 살려준 조건으로 서씨의 몸을 취하려 들었는데요. 아랑은 폐가에 숨어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홍련 몸에서 무연의 혼이 나와 서씨의 몸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 보다 서씨의 혼이 강력했고, 무연은 쉽사리 서씨 몸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무연 혼이 서씨 혼에 제압당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그도 그럴것이 최대감에 대한 원한이 뼈속까지 박혀있는 서씨가 그리 쉽게 혼을 내어줄 리 없었다는 사실을 무연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서씨의 혼에게 제압당한 무연은 “이게 아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며 스스로를 찔러 죽이려 했고, 이를 지켜보던 주왈은 서씨를 말렸습니다. 그러자 서씨는 “가까이 오지 말라”며 오히려 칼 끝을 주왈에게 겨눴는데요. 서씨가 칼로 주왈을 찌르려던 찰나 아랑이 몸을 날려 주왈 대신 칼에 찔리게 된 것입니다. 당시 이서림이었던 아랑은 자신이 연모하는 주왈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자신의 몸을 던졌고, 결국 주왈은 눈앞에서 정혼자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후 서씨는 자신이 사람을 찔렀다는 사실에 동요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마음이 약해져 서씨의 몸은 무연에게 점령당하게 되었습니다.

 

주왈은 이서림이 자신이 정혼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낯선 여인이 자신을 대신해 칼에 뛰어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데요. 그럼에도 이서림은 쓰러져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애절한 눈빛으로 주왈을 바라보며 "도령....."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정혼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서림, 그리고 그런 이서림을 내려다보는 주왈이야말로 <아랑사또전>이 만들어낸 최고의 로맨스가 아닐까 싶은데요. 아직 은오와 아랑의 로맨스가 남아 있지만 이만큼의 감정선을 그려낼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날 방송 초반, 주왈은 홍련을 찾아와 자신이 이서림을 죽인 것이냐고 물었고, 홍련은 그렇다고 대답해줬는데요. 사람을 죽인 것에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주왈은 혼사냥을 끝마칠 때마다 홍련의 도움으로 살인의 기억을 지워왔다고 합니다.


주왈은 이서림 역시 홍련에게 바치기 위해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이는 홍련의 거짓말이었던 셈입니다. 아마도 아랑의 몸을 취하기 위해 주왈을 이용하거나, 아직은 아랑과 이서림이 동일 인물임을 밝히고 싶지 않아 주왈을 속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자신의 정혼자를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릴 주왈을 생각하니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더군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왈이 이서림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며, 아랑의 말대로 주왈 도령은 “좋은 사람” 같아 보여 조금이나마 주왈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아랑이 죽게 된 이유가 밝혀짐과 동시에 이날 방송에서는 아랑이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비밀도 풀렸는데요. 그것은 바로 서씨의 몸을 취한 무연, 그러니까 홍련이 지운 것이었습니다. 홍련은 주왈을 다그치며 이서림이 왜 폐가에 왔고,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으나 주왈은 어찌된 영문인지 전혀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홍련은 “이 신성하고 좋은 날 부정타게 이게 무슨 날이냐. 다 보았을테니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지워야겠다”며 아랑의 기억을 모두 지워낸 것입니다.


천상의 눈을 피해 살고 있는 무연이니 만큼, 만약 아랑이 죽어서 그대로 자신이 본 것을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에게 이야기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아랑의 죽음과 기억 상실은 모두 그날 무연이 서씨의 몸을 취하는 것을 목격했기에 발생한 참극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아랑이 기억해 낸 사실로 아직까지 은오는 그 내막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과연 아랑은 자신이 기억해낸 사실을 모두 은오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죽인 것이 은오의 어머니 서씨라고 이야기한다면, 그야말로 은오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고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아랑을 천상에 보내주기 위해서는 아랑을 죽인 존재인 서씨를 죽여야 하는데, 아들인 은오가 그러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아랑 스스로 서씨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그나마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는 아랑이 무연에게 몸을 내어주고 서씨를 구하는 정도인데, 이날 방송을 보고나니 섣부른 예측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서림을 죽인 것은 주왈일 것이라고 100% 생각했는데, 그 예상이 보기 좋게 제대로 빗나갔으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시청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대박 반전. 아마도 남은 4회 동안 이런 반전이 적어도 두세번은 또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빠른 스토리 전개도 마음에 들고, 생각지 못했던 반전도 흡족했던 한회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왜 진작 이렇게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때 늦은 아쉬움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앞으로 종영까지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면, 한국형 판타지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로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 <아랑사또전>이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랍니다.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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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사또전 15회 : 아랑-은오, 옥황상제가 준비한 마지막 한수인 이유!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모든 것은 옥황상제의 노림수대로 ‘척척’ 진행되는 듯 보입니다. 은오는 드디어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홍련을 만났고, 아랑은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왈은 홍련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고요.

 

3일 방영된 <아랑사또전> 15회는 그야말로 폭풍전개를 선보이며 그동안 궁금증으로 남았던 여러 가지 사건과 비밀을 풀어헤쳤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은오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홍련, 정확하게 말하면 무연과 은오가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은오는 방울이의 도움을 통해 무연의 존재에 대해 조금씩 눈치를 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은오는 “결계를 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자라면 다른 사람 몸에도 들어갈 수 있냐. 그럼 원래 몸 주인의 영은 어떻게 되냐. 죽은 거냐"고 물었고 방울이는 "죽진 않는다. 원래 몸 주인 영이 있어야만 그 몸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은 거나 진배없단다"고 답했습니다.

 

 

 

방울이는 몸과 영을 되찾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지만, 은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어머니의 모습을 한 홍련이 최대감 집에서 살고 있는지 그 의문부터 밝히기로 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시청자가 몹시 궁금해왔던 부분이기도 한 대요. 알고보니, 서씨는 최대감에게 복수하고자 최대감집 하녀로 들어와 음식에 독을 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발각되어 죽을 위기에 놓였는데, 이를 홍련이 구해주고 그 대가로 서씨의 몸을 취하게 된 것이죠.

 

물론 이 같은 사실을 알리 없는 은오는 단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최대감과 홍련에게 맞설 것으로 보이는데요. 무연의 혼을 어머니의 몸에서 빼내기 위해서는 어머니 모습을 한 홍련의 심장에 비녀를 찔러야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애틋한 은오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한편, 이날 아랑은 은오가 가지고 있는 부채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찰나 부채에 새겨진 문양이 바로 옥황상제의 문양임을 알게 되었는데요. 부채를 찾고자 은오의 방을 살펴보던 아랑은 그곳에서 비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비녀가 인연이 되어 은오의 도움을 받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 아랑은 한 가지 확신을 하게 되는데요. 바로 은오의 사부가 옥황상제이며,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일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직감한 것입니다. 실제로 은오와 아랑은 그믐달을 보며 “달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옥황상제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자신들의 운명을 조금이나마 느꼈던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비녀 덕분이었을까요? 아랑은 갑자기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서림이었을 당시 주왈과 만났던 장소를 가보니 은오 어머니로 추정되는 아주머니가 주왈을 따라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이 떠오른 것이죠. 그 아주머니가 은오 어머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비녀를 꽂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아랑은 은오 어머니 머리에 꽂힌 비녀를 빼며 “가지말라”고 소리칩니다. 결국 아랑이 그 비녀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홍련을 만나러 가는 서씨를 구하고자 머리에서 빼 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지만, 결국 무영은 홍련을 찌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연에 대한 감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천상의 존재인 저승사자는 살아있는 인간의 몸을 찌를 수 없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애초에 옥황상제가 무영에게 칼을 쥐어 준 것은 일종의 시험이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옥황상제가 수년 전부터 준비했던 비밀병기 은오만이 현재로서는 홍련을 죽이고 무연의 혼을 서씨의 몸에서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인데요. 어머니의 심장을 찔어야 하는 은오의 운명이 너무 기구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골묘를 발견하고 결계를 파괴하는 등 은오는 많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천상의 존재가 관여할 수 없는 문제에 있어 은오가 대리인으로 해결한 셈이죠. 그것만으로도 옥황상제가 살려준 것에 대한 빚은 다 갚은 듯 보이는데, 대체 옥황상제는 어디까지 은오를 이용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염라대왕도 필자와 같은 생각으로 보였습니다. 이날 염라대왕은 옥황상제에게 “김은오를 너무 이용해 먹는 것 아니냐?”고 말했는데요. 이에 옥황상제는 “그래서 또 다른 한수를 준비했다”고 답했습니다. 그 한수가 악수가 될지 신의 한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은오의 기구한 운명을 구해줄 한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바로 아랑의 존재가 그것입니다.

 

그동안 아랑은 최종병기 은오가 홍련을 무찌르기 위한 하나의 미끼로만 그려졌는데요. 옥황상제가 아랑에게 불사의 몸을 준 것도 무연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되어져왔습니다. 하지만 이날 주왈이 아랑에게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지키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저는 결국 아랑이 무연에게 몸을 내어주게 될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알다시피 현재 아랑은 시한부 인생입니다. 옥황상제가 준 시간동안 죽음의 비밀을 밝히든, 혹은 밝히지 못하든 이승에 머무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자신의 몸을 무연은 탐내고 있습니다. 만약 아랑이 은오가 어머니의 몸을 찌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저는 은오를 위해서 아랑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무연에게 내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오직 은오에 대한 마음 때문이겠죠. 사랑하는 사람이 어머니를 찌르게 놔둘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은오는 무연을 처치하기 위해 아랑을 찌를 수 있을까요? 아랑은 어차피 불사의 몸이고, 한번 죽었던 존재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몸이지만 아랑은 죽는 그 순간의 고통이 너무도 끔찍하다고 은오에게 말한 적 있습니다. 이를 은오도 잘 알고 있기에 지난번 최대감이 지시한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에도 아랑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한 것이죠.

 

 

 

여기서 결말을 예측해 보면, 무연은 아랑의 몸을 취하고 서씨는 살아나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보름달 3개가 다 차면 이제 아랑의 몸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몸이 되기 때문에 무영이 아랑의 몸을 찌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전제 조건은 두 가지. 아랑이 몸을 무연에게 내어줘야 한다는 것과 은오가 아랑을 찌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 바로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무연과 달리 옥황상제는 인간의 마음과 사랑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은오와 아랑을 만나게 해 준 것은 옥황상제지만 제아무리 위대한 신이라도 인간의 사랑까지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믿을 것은 사랑의 힘이지만, 결국 그 사랑을 이룬 것은 은오와 아랑인 것이죠.

 

그러므로 옥황상제가 준비한 마지막 한수는 바로 은오와 아랑이 아닐까요? 은오와 아랑의 사랑이야 말로 결말을 예고한 마지막 한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은 5회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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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사또전 14회 : 은오의 자살 암시한 결정적 단서!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흔히 신혼부부나 고부갈등을 겪는 아내가 남편에게 묻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어머니와 자신이 물에 빠져 한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굴 구할거냐고 대답하라는 것이죠. 남편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바로 “어머니를 구하고, 난 당신과 함께 죽을 거야”라는군요. “당신없으면 난 못사니까“ 이 말을 끝에 붙여 주면 더 좋구요.

 

27일 방영된 <아랑사또전> 14회를 보고나니, 앞으로 은오의 운명 역시 이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방영분에서 드러난 몇 가지 사실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은오 어머니인 서씨의 혼이 무연에게 억눌러져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무연의 혼만 서씨의 몸에서 나간다면 어쩌면 서씨는 온전히 살아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이는 무연이 순순히 물러날 줄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럴리는 없을 것 같고요. 이날 방송 마지막에 홍련과 은오가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 앞으로 은오의 운명을 예측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홍련은 은오가 서씨의 아들임을 확인하고, 은오에게 협박에 가까운 거래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바로 서씨의 몸과 혼을 돌려주는 대가로 아랑을 자신이 취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은오는 물에 빠진 아내와 어머니 중 한명만 살려야 하는 남편의 입장처럼 아랑과 어머니 중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게 뻔합니다. 정말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는데요. 결국 은오 어머니의 비녀, 그러니까 옥황상제가 은오에게 건네준 모심잠(慕心簪) 이라고 적혀 있는 나무 비녀가 앞으로 이야기 전개에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비녀의 흐름을 추적해 보면, 한 가지 의아함이 생깁니다. 바로 3년전 이서림이 죽었을 당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그것인데요. 우선 비녀의 흐름부터 따져보겠습니다.

 

비녀의 흐름 : 옥황상제 → 은오 → 서씨→ (?) → 아랑 → 은오

 

상제의 물건인 비녀는 옥황상제가 은오의 스승일 당시 은오에게 주었고, 은오는 그 비녀를 다시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슨일인지 은오 어머니는 밀양으로 떠난 뒤, 소식이 끊겼고, 귀신이던 아랑이 그 비녀를 가지고 은오 앞에 나타난 것이지요. 그리고 아랑이 잃어버린 그 비녀를 은오가 무연의 사당에서 발견하게 된 것인데요. 대체 3년 전 이서림이 죽었을 당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서씨의 비녀를 귀신인 아랑이 가지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단서라고는 이날 방영된 내용 중 최대감의 대화밖에 없는데요. 최대감은 홍련에게 아랑의 정체를 알려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최대감은 “예전에 주왈이가 한번 정혼한 적 있지 않냐. 전 부사가 하도 깐깐하게 굴어 사돈이라도 맺을까 했더니 부인이 펄펄 뛰어 파혼시키려 했던. 그런데 마침 그 계집이 실종됐고 내 잘됐다 싶어 통인과 야반도주 소문을 내 덮었다"고 옛일을 꺼냈는데요.

 

최대감은 이어 “3년 전 윤달 보름, 어둠이 만월을 삼킨 날이라 하셨지. 그 산 폐가에서 잘못된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주왈이 정혼자이자 아랑이란 계집이다. 이름이 이서림이라 했나. 얼마 전에 시신도 발견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저는 여기서 최대감이 표현한 “그 산 폐가에서 잘못된 아이”라는 점에 주목했는데요. 그러니까 홍련은 윤달 보름에 이서림을 죽이고 그 혼을 먹어야 하는데 일이 잘못돼 혼을 취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혼을 취하지 못한 이유는 역시 아랑이 상제의 물건의 비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구요.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왜 죽은 아랑이 서씨의 비녀를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아무래도 이 부분은 드라마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서씨의 비녀 덕분에 아랑은 혼이 무사할 수 있었고, 비록 기억을 잃긴 했지만 은오를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사람으로 살아 돌아오고, 잃어버린 비녀는 은오가 무연의 사당에서 발견 한 것이지요.

 

 

 

 

이로써 드라마의 키는 은오와 비녀로 집중됩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은오는 아랑과 어머니 중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나무비녀로 홍련을 찌르면 서씨를 구하고 무연을 처치할 수 있다는 해석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무연을 없애기 위해서는 서씨의 심장에 비녀를 꽂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 무연과 서씨 모두 죽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서씨를 구하고 무연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무연 스스로 서씨의 몸에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랑의 몸을 내줘야 하지만, 아랑의 몸을 내주지 않고도 무연을 서씨 몸에서 꺼낼 수 있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서씨의 혼이 무연을 이기면 되는 것입니다. 이날 홍련의 몸에서 서씨의 혼이 무연을 밀어내는 장면이 잠깐 나왔는데요. 만약 서씨의 혼을 깨울만한 강력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서씨는 무연을 밀어내고 다시 자기의 몸을 찾을 것으로 보이고, 지난 윤달에 혼을 취하지 못해 약해진 무연의 혼은 서씨의 몸을 버리고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 서씨의 혼을 깨울만한 충격은 어떤게 있을까요? 바로 은오의 죽음입니다.

 

잘 알다시피 은오는 어렸을 적 한번 죽었습니다. 옥황상제에 의해 되살아나긴 했지만, 그것이 완전한 부활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옥황상제가 스승이었을 당시 상제는 은오에게 “가장 절박할 때, 모든 질문의 시작은 너로부터 온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은오는 그 비녀를 자신의 심장에 꽂음으로서 서씨의 혼을 깨우고, 결국 무연은 서씨의 몸을 버리고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무연의 혼은 무영에게 처리당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앞서, 물에 빠진 아내과 어머니 중 한명만 살릴 수 있다면, 어머니를 구하고 남편은 아내와 같이 죽는게 모범답안이라고 했습니다. 은오는 자신이 한번 죽었던 존재라는 점을 깨닫고는, 아랑과 함께 죽을 결심을 하게 될 것이란 게 제 추측입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자살을 택하고, 대신 옥황상제에게는 아랑과 자신을 천상에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까 싶네요. 상제 입장에서도 아랑과 은오의 도움으로 무연을 처치할 수 있었던 만큼 은오와 아랑을 함께 천상에 머무르도록 허락할 거 같네요. (아랑이 천상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는 만큼 진정한 해피엔딩은 바로 이런 결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풀리지 않은 의문은 대체 3년 전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인데, 이 부분만 명쾌하게 풀린다면 남은 6회 동안 더욱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중반을 넘어서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아랑사또전>이 유종의 미를 거둬, 국내 드라마 중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의미있는 드라마로 기억되길 바라겠습니다. 다음주가 몹시도 궁금해지는군요.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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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사또전 13회 : 은오와 주왈의 대사에 담긴 정치적 의미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드디어 수많은 비밀이 풀렸습니다. 26일 방영된 <아랑사또전> 13회에서는 그동안 제작진이 뿌려둔 여러가지 단서와 복선에 대한 실마리가 드러났는데요. 무영의 동생 무연은 천상의 존재로 인간의 몸을 탐내 결국 쫓겨났으며, 지금껏 인간의 몸에 기생하며 영생의 삶을 추구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무영과 무연의 첫 만남이 그려졌는데요.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무연을 처치하러 온 무영은 끝내 동생의 심장에 칼을 꽃지 못했습니다. 무연을 없앨 수 있는 조건은 혈육의 연도 끊을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의지인데, 결국 무연을 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무연이 취하고 있는 서씨의 아들 은오만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전에 옥황상제가 언급한 최종 비밀병기는 역시나 은오였던 것이지요.

 

 

 


또한 이날 방송에서는 골묘와 최대감 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부적의 정체도 밝혀졌는데요. 역시나 무연이 자신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마련해둔 결계였습니다. 무당인 방울이에 따르면, 이 부적은 하늘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천상에서 쫓겨난 무연이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이 부적을 사용한 것이지요.

 

 

 

 

이밖에도 아랑의 몸을 노리고 있는 무연이 처음으로 아랑과 조우했으며, 최대감은 홍련(무연)이 노리는 것이 아랑(불사의 몸)임을 깨닫고는 또 다른 계략을 준비했는데요. 과거 바로 이서림의 침모였던 여인을 찾아으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과연 침모를 통해 드러날 새로운 사실이 있을까요? 최대감이 침모를 활용하여 어떻게 아랑과 은오를 압박할지 기대되더군요. 드라마는 이제 중반을 넘어서면서 스토리 전개가 한층 탄력을 받고, 빨라지는 느낌이었는데요. 아랑을 향한 은오의 마음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 안타깝기는 하지만, 점점 더 흥미로워 지는 것 만큼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날 제가 <아랑사또전>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드라마 속 대화에 숨겨진 진짜 의미 때문이었는데요. 잘 생각해보니 상당히 정치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상황과 대사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크게 두가지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번째는 홍련과 주왈이 나눈 대화에서 나타났는데요. 이날 홍련은 은오와 함께 최대감 집을 조사하러 온 아랑을 만나기 위해 집앞으로 직접 걸어나왔습니다. 은오가 집 안으로 들어간 사이 홍련은 주왈과 함께 있는 아랑을 만났는데요. 주왈은 홍련이 아랑을 어떻게 할까봐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뒤, 홍련은 아랑에게 다시 한번 집에 놀러오라고 한뒤 들어갔고, 주왈 역시 홍련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난주 방송에서 주왈은 아랑을 죽이라는 홍련의 명을 거역한 바 있는데요. 주왈이 아랑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홍련은 크게 화를 냈습니다. 홍련은 자신이 주왈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최대감이나 다른 혼사냥꾼에 비해 주왈이 홍련에게 부탁한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요. 주왈은 처녀의 혼을 홍련에게 갖다 바치는 대신 그저 사람답게 살게 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동안 주왈이 생각했던 사람답게 사는 것은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바로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남들이 죽든 말든 자신은 상관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 때문에 윤달 보름이면 홍련에게 처녀를 죽이고 그 혼을 봉해 갖다 바쳤던 것이고요.

 

 

 


그런데 주왈은 아랑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그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됩니다. 나만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다고 해서 그게 ‘사람답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주왈의 모습에서 저는 ‘경제발전만 해결되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아마도 주왈은 아랑을 통해 따뜻한 집과 밥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 가치는 결국 ‘함께 사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정도면 상당히 정치적이라고 봐야 겠지요?^^;)

 

 

 


 

제가 <아랑사또전>을 통해 느낀 두번째 정치적 의미는 은오와 돌쇠와의 대화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은오가 귀신에게 씌였다며 아랑을 미워하는 돌쇠는 이날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랑을 통해 약간의 감정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자신밖에 모르던 은오가 아랑때문에 변하기 시작한 사실을 알고 난 돌쇠는 자신이 따르던 도련님의 첫번째 연정이 귀신이라는 것이 도무지 마땅치 않습니다.


이날 은오는 돌쇠에게 자신이 왜 아랑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는데요. 그것은 바로 귀신에서 사람으로 살아 돌아온 아랑이 꼭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은 아랑이 예전에 돌쇠가 목숨을 걸고 지켜려 했던 시신, 바로 이부사의 딸 이서림이라는 것을 돌쇠에게 알려준 은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돌쇠야, 너도 알지? 난 나밖에 모르던 놈이라던거. 근데 그런 내가 네 말처럼 변했어. 귀신처럼 홀린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야. 난 처음으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걱정이 되더라. 내가 요즘 느낀게 있어. 돌쇠 네가 나보단 100배 낫다는거. 니 말대로 낯한번 본적 없는 이부사 딸을 목숨걸고 지켜낸 너하고 난 출발이 달라.”


무슨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돌쇠에게 은오는 마저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요. 그 대사가 너무도 기막힙니다. 바로 우리사회에 필요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일컫는 것만 같았습니다.


실은 사또는 너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누구를 아비로 둬서, 양반으로 태어나서, 그래서 실은 그것밖에 가진자들 말고, 사람을 측은하게 여길 줄 아는자. 그런 자들이 사또가 되어야한단 말이지...”

 

 

 


사또를 우리사회 리더로 치환하면 현재 우리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마음이 어떤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기득권이 대물림 되고, 부모의 스펙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정해지다시피하는 잘못된 우리사회 현실에 보내는 경고라고 해석한다면, 너무 지나친 망상일까요?


이처럼 주왈이 생각하는 ‘사람답게 사는 것’ 속에 담긴 진짜 의미와 은오가 이야기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길 줄 아는자가 사또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은 곱씹어 볼수록 여운을 남겨줍니다. 물론 지나친 확대해석일 수도 있고, 혹은 귀에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라고 비판받을 수 있는 접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번쯤 그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 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웃기고 재미있는 판타지 사극이라 생각했는데예상치 못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네요. 이제 왠만한 비밀은 다 밝혀진 만큼 앞으로는 <아랑사또전>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그동안 내용없는 대사로 비판받아온 <아랑사또전>이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롭게 도약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오늘도 본방사수 하겠습니다! 아랑사또전 화이팅!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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