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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채식주의자, 사회적 금기에 을 던지다

 

 

이 세상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관습에 따라, 혹은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대표적인 사회적 금기로는 여성의 노브라를 꼽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얼마 전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때문에 졸지에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낙인찍힌 설리를 떠올려보자. 브래지어를 입든 말든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영역에 놓인 문제인데, 사람들은 이를 사회적 영역으로 끌고 와서 그녀에게 돌을 던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여자가 브래지어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며, 설리는 그 당연한 것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작품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평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금기에 도전하는 영혜라는 캐릭터를 통해 사회적 억압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탐구한다.

 

 

 


영혜는 여러모로 유별난사람이다. 우선 그녀는 갑갑하다는 이유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을 당연하게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혜의 평범함이 좋아 결혼을 결심한 남편조차 영혜의 노브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호기심으로 바라보거나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거나. 사람들은 영혜가 못마땅하다.

 

게다가 그녀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남편 회사의 간부는 영혜의 채식주의를 수렵생활 때부터 내려온 인간의 본성을 거부하는 행위로 받아들인다. 그냥 고기를 안 먹는 것뿐인데, 영혜는 졸지에 본성을 거스르는 여자가 되고 만다.

 

남편과 가족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억압하며, 그녀의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오히려 타인을 타박하고 억압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야 말로 수렵생활 때부터 내려온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그들은 참으로 인간적인 셈이다.

 

결국, 영혜는 스스로를 자해하기에 이르고, 이즈음 소설은 채식주의에서 몽고반점으로 넘어간다. (참고로 <채식주의자>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3편의 독립된 소설이 이어진 연작소설이다.)



 

몽고반점은 영혜가 채식주의를 선언한 이후 가족들과 갈등을 빚은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다. 남편은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결심하며, 영혜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홀로 살아간다. 그런 영혜를 돌보는 것은 언니 인혜다.

 

몽고반점이 던지는 금기는 바로 가족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성된다. 이른바 피를 나눈 혈족과 계약에 의해 맺어진 인척이다. 처제와 형부는 혼인이라는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인척관계라 볼 수 있다.

 

가족 간의 섹스는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혈족은 물론이고, 인척간에도 금기다.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으나, 작가는 몽고반점을 통해 이 당연한 가족과 가족간의 섹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인혜의 남편은 어느 날 아내로부터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강한 성적인 요구를 느낀다. 예술가인 형부는 영혜를 설득해서 그녀의 알몸에 거대한 꽃을 그리고, 그녀와의 섹스를 위해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려 넣는다.

 

섹스를 통한 두 사람의 정서적 교감은 쉽게 공감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한다. 동생과 남편의 관계를 목격한 인혜는 두 사람을 정신병원에 신고하고, 결국 영혜는 남편으로부터도 그리고 부모로부터도 버림받는다.

 

그렇다면, 사회적 금기의 끝은 어디일까. ‘나무불꽃에 이르러 작가는 이제 삶과 죽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진리처럼 보이지만, 작가에겐 삶이라는 명제조차 뒤집어 생각해봐야 할 사회적 억압과 금기였나 보다.

 

형부와의 사건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어쩐 일인지 음식을 먹지 먹고, 통 알 수 없는 소리만 한다. 나무가 되고 싶다는 영혜는 급기야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다. 지금껏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쳐온 인혜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동생 영혜가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끝내 피를 통하는 영혜를 보면서 알 수 없는 교감을 느낀다.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비로소 삶을 이해할 수 역설이랄까?

 

때로는 폭력에 눈감고,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온 인혜에게 있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동생 영혜의 모습은 오히려 그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삶이란, ‘당연히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독자에 따라 소설은 난해할 수도 있고, 불편함만 가득 안길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평소 당연하게 생각했던 말과 행동이 어쩌면 타인을 억압하는 족쇄는 아니었는지, 또 인간의 본성이라 믿었던 것들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내재화된 폭력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 정도는 될 수 있을 거 같다.

 

끝으로,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가는 식물, 그리고 나무가 되고 싶다던 영혜의 소원이 이뤄졌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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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타이거스 (양장)
국내도서
저자 : 최지운
출판 : 민음사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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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필자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이른바 ‘4대 천황’이 존재했다. 영화 <전설의 주먹>속 황정민 만큼은 아니지만 이 ‘4대 천황’은 저마다 한주먹 하는 걸로 유명했고, 필자와 친구들은 ‘4대 천황’ 선배들의 무용담을 나누는 걸로 학창시절의 무료함을 달래곤 했다.

 

‘4대 천황’ 선배들이 싸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야기는 입과 입을 거치면서 점점 더 과대포장 되어갔고, 급기야 그들이 졸업을 앞둔 시점에 이르러서는 4대 천황 중 한명이 공중 돌려차기로 다른 학교 학생 너댓명을 동시에 떡실신 시켰다는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학교의 영웅과도 같았던 ‘4대 천황’ 선배들이 사실은 폭력서클의 일원이었고, 그들의 잘난 주먹 덕에 누군가는 울면서 학교를 다니거나 돈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담배연기로 가득한 3학년 화장실에 끌려간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인 <옥수동 타이거스(최지운 지음, 민음사 펴냄)>는 용공고등학교 오호장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오호장군이란 삼국지 속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가 아니라 용공고등학교의 전설적인 주먹 5명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옥수동 타이거스>는 필지가 기억하는 ‘4대천황’처럼, 누군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전설의 주먹’을 소재로 한 이야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순히 고등학교 폭력서클의 이야기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다름 아닌 참여정부 말부터 시작해서 지난 MB정부까지 우리사회에 몰아친 재개발 광풍의 시기와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집값 하락을 이유로 폐교 위기에 처한 바 있는 '동호공고 폐교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가는 용공고등학교라는 가상의 학교를 통해 계층갈등과 재개발 광풍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유쾌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바로 용공고의 전설적인 다섯 주먹 ‘오호장군’이라는데 있다.

 

하나의 동네가 재개발로 인해 둘로 쪼개지고, 급기야 빈민촌과 부촌으로 나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코믹적이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두 지역을 대표하는 공고와 외고 학생들 사이의 패싸움을 통해 계층 갈등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끄집어낸다. 한편의 무협지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의 생생한 싸움 묘사는 ‘말초신경’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돈과 빽이 없어서 학교가 폐쇄당하거나 혹은 단지 공고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어른들에게 무시당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의 ‘도덕적 신경’을 대놓고 건드린다.

 

마치 패싸움을 일삼는 이 학생들이 더 폭력적인가, 아니면 부모와 지연 그리고 학벌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어른들이 더 폭력적인가, 하고 묻는 것만 같다.

 

<옥수동 타이거스>만이 갖는 또 하나의 특성을 꼽자면, 오호장군을 기억하는 사함들의 인터뷰와 멘트 그리고 SNS 속 자료들을 취합해서 정보를 보여주는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이다. 소설을 전개해 나가는 색다른 시도라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이런 방식이 소설적 재미와 함께 사회성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책이라는 아날로그적 매체에 디지털매체의 ‘즉각성’이라는 특성을 결합해 새로운 문체, 그리고 도전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작가의 도전을 성공 혹은 실패라고 규정짓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런 도전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 방해가 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능력있는 젊은 작가의 출현은 기분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옥수동 타이거스>는 그 자체가 갖는 재미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최지운 이라는 새로운 작가를 발견했다는 반가움이 더 앞선다. 오호장군이 모두 사회인으로서 성공한다는 결말은 다소 판타지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그럼에도 최지운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까닭은 바로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유머의 내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우리학교 선배들이었던 ‘4대 천황’은 잘 살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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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바디스
국내도서
저자 : 아이작 마리온(Issac Marion) / 박효정역
출판 : 황금가지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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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무한함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그리는데 더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이 물질문명 사회 그 다음을 그리기 보다는 이 사회의 끝을 이야기하는데 더 많은 열정을 쏟아 붓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의 머릿속에서 이 세상은 핵전쟁에 의해, 생태계의 파괴에 의해, 그리고 인류가 아닌 새로운 종의 출현에 의해 종말을 맞이하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문화 콘텐츠의 단골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좀비’ 역시 절망을 그리는 데 더 익숙한 우리의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라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시체’라고 풀이 할 수 있는 좀비는 차가운 몸뚱아리를 비롯해, 느릿느릿한 걸음과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 호감 가는 구석이 없다. 이런 좀비의 이미지는 아마도 좀비를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부터 고착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은 살기 위해 좀비를 죽여야만 했고,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해 좀비는 더욱 더 무서워져만 갔다. 하지만 좀비물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로메로 감독의 3부작(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1968), < 시체들의 새벽 > , < 죽음의 날 >)에서 좀비가 사실은 주체의식 없이 끌려 다니는 현대인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됐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펼쳐졌는지 반성해볼 수 있다.

 

자극의 내성화와 공포의 상업화가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좀비가 점점 차가워지고, 냉혹해진 데에는 인간의 빈약한 상상력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작에 대한 고민은 없이, 다들 좀비를 인간의 적으로 묘사하니까, 너도나도 좀비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그동안 좀비를 소비해온 방식은 왜 인간을 물어뜯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다들 인간을 공격하니까 그 대열에 합류하는 ‘좀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을 본 따 만든 좀비를 인간 스스로가 닮아가는 아이러니의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작 마리온의 <웜 바디스>는 상상력에서만큼은 단연 최고의 점수를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따뜻한 시체’라는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 아이작 마리온은 <웜 바디스>를 통해 좀비라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고 나온다. 좀비를 그저 인간의 반대편 에 선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닌, 문명사회의 종말을 함께 극복하는 ‘동지적 관계’로 재설정한 것이다. 물론 그 새로운 관계설정이 ‘왜 사랑이어야 할까?’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워지지만, 그것은 마치 “왜 제5원소가 사랑이냐?”라고 묻는 것만큼이나 꽤 어리석은 질문에 가깝다. 절망 속에서 사랑을 찾고, 사랑에서 희망을 보는 것은 인류의 DNA 깊숙이 새겨진 본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웜 바디스>는 ‘좀비 로맨스’라는 독특한 장르의 소설이다.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는 등장하지 않지만, 남자 좀비(R)과 여자 인간(줄리)이 묘사하는 순간, ‘아 이들이 사랑에 빠지겠 구나’하고 예측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둘로 인하여 인간과 좀비는 서로 싸우기만 하던 기존의 적대적 관계를 벗어나 함께 해골 족에 저항하는 동지적 관계로 발전해나간다. R과 줄리의 사랑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 책이 재미있는 건, ‘사랑의 위대함’에 힘입어 위기를 극복하는 이들이 러브스토리라기보다는 'R'이 좀비‘주제’에 의식을 가지고 감히 인간 여자를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좀비는 왜 인간을 먹어야 할까, 좀비는 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고민하는 ‘R'의 모습은 좀비를 그저 괴물로밖에 묘사하지 못하는 소설 밖 인간들의 빈약한 상상력을 비웃으며 매우 흥미롭게 진행된다.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첫 번째 수용소 전시장을 벽에 걸려 있는 이 글귀처럼, 역사 속 대부분의 비극은 망각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 속 좀비들은 배고프면 인간 사냥을 나가고, 어린 좀비들에게는 사냥 기술을 가르쳐 주는 등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들은 망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R'은 달랐다.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수많은 좀비들 사이에서 ‘R'은 기억하려 노력했다. 그는 끊임없이 오늘을 기억했다.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기 위해 어제를 기억했다. 그래서 'R'의 오늘은 분명 어제와 달랐고, 오늘을 기억하는 ‘R’의 내일에는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은 필연이었고, 줄리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이 교훈이 비단 소설 속 죽은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희망보다는 절망을 그리는 데 더 익숙한 인간의 상상력, 그리고 주체의식 없이 남들이 사는 대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사실 소설 속 좀비들의 그것과 큰 차이점이 없다.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좀비들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 사냥’을 계속하고 있으며, 수많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경쟁사회 그 다음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오늘의 사회를 얼마나 더 자극적으로 표현할 것이냐 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이 ‘따뜻한 시체’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아마도 우리야말로 현실 속 좀비가 아닐까 하는 섬뜩한 물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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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국내도서>소설
저자 : 박하익
출판 : 황금가지 201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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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KBS <학교 2013>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은 극의 흐름이 지나치게 ‘문제아(권위적 관점에서의 문제아)’ 위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며 호평을 받은 것과는 별개로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너무 진부했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비단 <학교2013> 뿐만이 아니다. 기존 <학교> 시리즈가 그러했고, 수많은 영화와 소설들이 답습한 문제다. 성장드라마가 아닌 이상 교복 입은 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서면 필연적으로 남자주인공은 폭력서클에 몸담고 있거나 여자주인공은 왕따의 피해자로 등장한다. 액션신과 감정신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학교 교육의 진짜 문제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사실 폭력과 왕따는 교실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지극히 선정적인 카테고리에 속할 뿐, 전부는 아니다.

 

 

 

“너 장래희망이 뭐야?”

“4년제 대학 교수요.”

“네 꿈이야? 부모한테 이식받은 거야?”

 

수많은 학생들이 오늘도 열심히 등교하여 공부하지만, 정작 공부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본 학생은 얼마나 될까? 더 좋은 고등학교, 더 이름난 대학을 가기위해 잠을 줄이고, 부모가 이식한 꿈을 마치 장래희망으로 생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교육’은 기실 ‘사육’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종료되었습니다>에 이어 박하익 작가가 들고 온 두 번째 장편소설은 <학교 2013>의 여운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선암여고 탐정단, 방과 후의 미스터리(이하 선암여고 탐정단)>이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이 소설은 선암여고 탐정단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일종의 추리소설이다.

 

 

외고입시에서 떨어져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안채율은 어느 날 등교 길에 ‘무는 남자’라 불리는 신종 변태에게 손목을 물리고, 이 일이 계기가 돼 선암여고 탐정단에 가입하게 된다. 탐정단 아이들은 ‘무는 남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부터 시작하여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왕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심지어 총격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개성 넘치는 탐정단 아이들의 캐릭터는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살아 숨쉬고, 전편 <종료되었습니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하익 작가의 유머도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굳이 폭력서클의 아이들이나 권위주의적 관점의 ‘문제아’를 등장시키지 않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도 반길만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이 갖는 장점은 가벼운 추리소설 형식을 빌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메시지가 매우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교육현실에 대해 ‘돌직구’를 던지는 무거운 소설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작게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안채율의 성장 소설이며, 또 다르게는 탐정단을 이끄는 대장과 채율의 오빠 사이에 펼쳐지는 로맨스 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범인이 밝혀졌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적지만 그럼에도 촘촘한 사건 전개 과정만 놓고 보면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얼개도 잘 갖춘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본 소설을 읽는 듯 한 발랄함과 유쾌함이 지배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과정이나 매 사건이 남겨주는 메시지는 진중하기 그지없다.

 

그나저나 방과 후의 미스터리는 선암여고 탐정단이 풀었다지만, ‘치킨게임’으로 얼룩진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대체 누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출범하는 정부마다 공교육을 바로잡고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공약을 내세우는데도, 왜 교육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져 가는 것일까. 정말 ‘미스터리’다.

 

아무래도 선암여고 탐정단에게 의뢰를 해야겠다.

 

“공교육 정상화 공약을 거품으로 만들고 도망간 진범을 찾고, ‘반값 등록금’이라는 다섯 글자에 담긴 진짜 의미를 해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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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되었습니다
국내도서>소설
저자 : 박하익
출판 : 노블마인 201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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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눈 눈, 이에는 이”

 

최근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는 흉악범죄나 인면수심(人面獸心) 범죄자들을 보면, 그들에게도 피해자가 겪은 아픔과 고통을 똑같이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만큼 범죄의 잔혹성이 심해지고 있으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다른 이를 해치는 일이 빈번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있어 형벌이라는 것은 단지 죄 지은 사람을 벌하는 것에만 그 목적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처벌 보다는 범죄자들의 교화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주장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사회적인 처벌 시스템으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한번 죄를 지은 사람에게 그 죄값을 받게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극단적인 예를 들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로 살인자를 사형시킬 경우에도, 엄밀히 얘기하면 모순이 존재한다. 피해자가 이미 죽은 상황에서 법과 제도로서 가해자를 사형시킨다 한들, 그것은 제3자에 의한 처벌일뿐 ‘완벽한 심판’이 될 수는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에 따르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심판을 해야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이를 가능토록 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죽은 피해자가 되살아나 가해자를 처벌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완벽한 심판’이 될 수 있다.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박하익 작가의 <종료되었습니다(노블마인)>는 바로 이런 상상에서부터 출발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는 ‘완벽한 심판’ 말이다.

 

 

 

죽은 범죄 피해자가 되살아나는 세상, 그것은 희망일까?

 

 

어느 날 눈빛이 흐리고 말은 느린 사람들이 나타난다. 소매치기에게 찔려 죽은 뒤 7년 만에 돌아온 주부, 실종된 날의 옷차림 그대로 10년 만에 돌아온 아이 등…… 이들은 억울하게 죽은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가까운 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종료하였습니다> 속에서는 자신을 살해한 가해자를 찾아내어 직접 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되살아난 피해자는 자신을 살해한 가해자를 찾아내어 직접 죽인 뒤, 빛을 내며 소멸한다. 이로 인해 의문사로 처리된 사건이 해결되며, 법정에서 내려진 잘못된 판결로 누명을 쓰는 일도 없어진다. 되살아난 피해자는 가해자 외에는 공격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은 진범을 밝히는 확실한 방법으로 자리매김한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에 대해 쉬쉬하던 경찰 등 국가기관도 결국 알 수 없는 현상을 인정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게 된다. 언론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이고 사라지는 현상을 ‘RVP(Resurrected Victims Phenomenon)’라고 명명하고, 되살아난 피해자의 존재를 (RV-Resurrected Victims)라고 부른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기괴한 현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지만, 또 한편으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처벌을 받고,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는다. 정말 그것이 희망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법과 정의가 실종된 지금의 사회와 비교해보니, 유일하게 진실을 밝혀주는 ‘RV’라는 존재가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완벽한 심판’이란 무엇일까?

 

 

문제는 주인공 서진홍의 어머니, 7년전 살인사건으로 죽은 최명자가 되살아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RVP의 일곱번째 사건으로 기록된 최명자는 그동안의 RV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바로 가해자 외 다른 사람에게 공격 본능을 발휘한 것. 그 대상이 하필이면 또 자신의 아들 서진홍이다.

 

‘RVP'를 연구하는 국정원과 CIA는 그동안의 RV와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 최명숙에 관심을 갖고, 서진홍을 진범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서진홍은 진범이 아니다. 수사기관에 의해 최명숙은 진범을 마주하고, 자신을 죽인 진범을 처벌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남아서 아들을 죽이려 든다. 과연 최명숙은 불량품 ’RV'인 것일까?

 

서진홍은 어머니가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이유를 밝혀내려 고군분투하며, 그 과정에서 국정원과 CIA에 맞서기도 한다. 이때부터 책은 본격적인 추리 서사의 구조를 따라가며 숨겨둔 진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결국 서진홍은 ’RVP'는 현상이 한 박사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임을 밝혀낸다. 살해된 아들을 잊지 못하던 박사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죽은 아들을 살려냈고, 거기서부터 ‘RVP'가 시작된 것이다.

 

사건의 열쇠는 이제 이 박사가 추진했던 'SSS(Silma Silmasta System)' 프로젝트에 숨겨진 듯 보인다. ‘완벽한 심판’을 꿈꾸기 위해 박사가 개발한 ‘SSS 프로젝트’란 과연 무엇일까? 박사는 서진홍을 'RVP'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만든 형벌 시스템은 아니라고 밝힌다. 박사는 오히려 가해자에게 벌을 줄 수 있는 방법보다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완벽한 심판’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범죄와 ‘사이코패스’의 엽기 행각을 볼 때면, 때론 이들에게는 죽음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따른 형벌은 결코 가해자를 심판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복수일 뿐이다.

 

그렇다면 <종료되었습니다> 속 박사가 개발한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도록 하는 ‘완벽한 심판’은 과연 무엇일까? 가해자만 심판하도록 설정된 ‘RV'는 왜 범인이 아닌 아들을 죽이려 들었던 것일까?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은 앞으로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위해 남겨 두도록 하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터무니없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종료되었습니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죄 지은 사람에게 온당한 처벌을 주는 사회인가?” 라는 질문에 묵직한 고민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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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시대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강준만
출판 : 인물과사상사 201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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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터틀타웁 감독의 <마법사와 제자>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대화가 나온다.

 

 

“정말 왜 이러는 거예요! 당신은 내 멘토 아닌가요?”

 

“이런, 난 너의 멘토가 아니야. 스승이지.”

 

 

혹독한 마법 수업에 불만을 품은 데이브 스터틀러(제이 바루첼 분)가 자기 입장도 좀 생각해주라는 의미에서 던진 질문에 발타자 블레이크(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멘토가 아닌 스승”이라고 못 박는다. 바로 여기에 ‘멘토’와 ‘스승’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통적 위계질서에 따른 수직적 관계가 스승과 제자의 출발점이라면, 멘토와 멘티는 수평적 위치에서 출발한다. 스승과 제자가 ‘가르침’으로 연결되는 것에 비해 멘토와 멘티를 이어주는 것은 ‘정서적 교감’이다. 그래서 멘토와 멘티는 상황에 따라 멘토가 멘티가 되고, 멘티가 또 멘토가 되곤 한다.

 

 

기워전 8세기경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남긴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보면,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일과 아들의 교육을 친구인 멘토르(Mentor)에게 맡긴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년 동안 멘토르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봐주었다고 한다. 이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르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이후 지자체와 행정기관에서 저소득청층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을 담당하는 하나의 사업프로그램으로 ‘멘토링’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대중적으로 ‘멘토-멘티’ 문화가 널리 퍼진 것은 2011년 봄부터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이에 대해 강준만 교수가 펴낸 <멘토의 시대>는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어른에 대한 동경, 향수, 갈구가 멘토라는 판타지 형태로 형상화된 것”이라는 중앙대 사회학과 주은우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며, 이 분석에 힘을 실어줬다.

 

 

 

 

 

 

우리사회에 불어 닥친 멘토 열풍....왜?

 

 

 

“한국 사회는 왜 멘토를 갈망하는가”를 부제로 달고 있는 <멘토의 시대(인물과 사상사)>는 우리사회에서 멘토로 각광받는 12명의 인물을 소개하며, 그들의 멘토 기법과 특징을 분석한 책이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멘토로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 1위로 꼽히는 안철수 원장을 ‘비전․선망형 멘토’로 분류하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를 ‘교주형 멘토’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왜 우리사회에는 이렇게 ‘멘토 열풍’이 거센 것일까? 사람들은 멘토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일까? 책의 저자 강준만 교수는 <멘토의 시대>를 통해 멘토 열풍은 ‘디지털 시대의 하이테크로 인한 하이터치(고감성) 욕구’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하이터치 욕구란 우리의 삶이 기술에 젖어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더 원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 대체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육체가 아닌 머리로 컴퓨터에 몰입하면 레저 활동은 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방향으로 기운다는 것. 멘토링 역시 하이터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흥미롭다.

 

 

안철수 원장을 예로 들어보자. 원철수 원장을 멘토라고 생각하는 세대는 단연 20~30대가 많다. 이들은 컴퓨터 세대다. 피상적 인간과계를 주로 겪어온 이들이 대면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갖는 멘토링에 열광하는 건 결국 ‘하이터치 욕구’라는 분석이다. 물론, ‘멘토 열풍’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디지털 시대의 ‘균형찾기’로 단순화 할 수는 없겠지만, 이 멘토 열풍이 사실상 SNS라는 특정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멘티가 주로 젊은 세대라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를 갖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멘토 열풍’, 세대 갈등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

 

 

 

그럼, 본격적으로 왜 ‘멘토 열풍’은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가를 생각해보자. <멘토의 시대>에서 제시하는 우리 사회 12명의 멘토를 살펴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안철수, 박원순, 문재인, 이외수, 김제동, 공지영, 박경철 등에서 알 수 있듯, 이른바 우리사회에서 ‘멘토’로 각광받는 사람들이 주로 개혁․진보 인사들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일정 부분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이외수를 제외하고 보면, 나이대는 주로 40대다. 성공한 40대가 후배 20~30대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커다란 폭발력을 갖고, 이들이 현재 우리사회의 ‘멘토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멘토’ 열풍에 50~60대는 없다.

 

 

지난 총선 결과에서 알 수 있듯 20, 30대와 50, 60대의 정치적 성향은 그 간극이 확연해지고 있다. 그 간극은 단순한 여·야 지지를 넘어 불안한 사회를 극복하는데 있어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치적인 성향이야 세대 간에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최근 들어 그 차이가 뚜렷해지는 것은, 아마도 ‘세대가 계급이 되어 간다’는 사회학적 분석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멘토들의 ‘멘토링 기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대가 계급이 되어 가는 현실을 전제하는 멘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멘토도 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방법과 내용도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을 ‘멘토의 시대’를 주도하는 멘토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까닭은 이들이 20, 30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고민하기 때문이다. 스승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똑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제시하는 의견이 20~30대에는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불어 닥치고 있는 ‘멘토 열풍’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이 적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12명의 인물 분석과 그들의 멘토링 기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재미는 분명 <멘토의 시대>를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이외수 작가가 트위터에 소개한 <멘토의 시대> 추천사를 소개한다.

 

 

 “강추합니다. 이 척박한 시대에 한국을 맨정신으로 살아가야할 사람들의 필독서.”

(본인이 소개돼 있어서 조금은 후한 평가가 아니었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필자 역시 대선을 앞두고 한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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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남편’ 방귀남(KBS 주말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주인공, 유준상 분)의 행복론은 ‘자기희생’으로 귀결된다. 그는 고민 많은 아내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혼자서 걱정을 떠안고, 심지어 어렸을적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작은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가족들을 위해 덮기로 한다. 혼자만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이 ‘자기희생적 행복론’은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상처, 고통, 분노를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외롭고 힘든 길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방귀남에 ‘완전 빙의’돼 최근 대한민국 남편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돼가고 있는 배우 유준상의 행복론은 무엇일까? 그 역시 드라마 속 배역처럼 스스로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타입일까? 아니면, 주도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쟁취해나가는 스타일까? 최근 그가 펴낸 에세이집 <행복의 발명 (열림원 펴냄)>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 아닌 발명하는 것”


 

한편의 동화같은 <행복의 발명>은 “유준상이 쓰고 그리다”라는 부제를 괜히 달고 있는게 아닐 정도로 다양한 그림과 글이 섞여 있다. 책 속에는 논리 정연함 대신 자유 분방함이 자리잡고 있으며, 설득보다는 공감의 힘에 크게 기댄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그가 지끔껏 써온 ‘배우 일지’, 그러니까 일종의 일기를 엮어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배우 유준상은 약 20여년 전 대학교 1학년 시절, ‘기초 연기’ 수업 시간에 안민수 교수로부터 “배우는 일지를 써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의 몸 상태를 적어보고 어떨 땐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라는 교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는 매년 한 권씩 일기를 써왔다고 한다. 그렇게 써온 일기가 스무권. 이제는 그 일기가 배우 유준상을 바로잡아주는 나무가 되고 채찍이 되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는 모습이다.

 


하루하루 일기를 써 내려가고, 한 달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면서 저는 무언가를 발명해내는 사람처럼 신기해했고, 일기를 읽고 또 읽으며 정말로 내가 이 글을 쓴 게 맞나, 신기해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즐거웠습니다. 큰 발명은 아니지만 소소한 곳에서 느꼈던 어느 배우의 행복한 발명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행복의 발명 中>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행복론은 방귀남의 ‘자기 희생적 행복론’과는 달리 주체적이며 또 자기 중심적이다. ‘발견’이라는 것은 이미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찾는 것 뿐이지만, ‘발명’은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기에 누구나 본인 의지에 따라 행복해 질 수 있다. 행복의 주체가 ‘나’가 되는 것이다.

 


행복에 도달하는 가지수가 적은 나라일수록 후진국”이라는 김어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발견’보다는 ‘발명’의 가지수가 많아야 진짜 행복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엉뚱한 배우 유준상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내가 아는 준상이는 늘 진지하다. 그런데 또 엉뚱해서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정직하다. 그래서 난 어린 후배 준상이를 항상 예뻐한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유준상의 엄마 역을 맡고 있는 윤여정은 배우 유준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엉뚱함’을 빼놓지 않는다. 유준상이 출연한 영화 <다른 나라에서>, <로니를 찾아서>, <북촌방향> 등을 떠올리면 그와 엉뚱함의 연결고리를 쉬이 찾을 수 없는게 사실이지만, <행복의 발명> 곳곳에서 그의 엉뚱함을 마주할 수 있다.

 


일례로, <행복의 발명>은 인용구가 참 많이 등장한다. 보통 인용구는 유명한 저자의 글귀나 누구나 알법한 책 속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행복의 발명> 속에서는 처음 접하는 책 제목이 유독 눈에 띈다. 가령 <박람회장><꿈의 동반>이 그렇다.


 

그런데 ‘유준상이라는 배우가 참 책을 많이 읽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박람회장><꿈의 동반>은 그가 아직 준비중인 ‘어른동화’로 아직 출간되지 않은 책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언제 출간될지 모른다”고 까지 밝힌다. 자신의 책 속에 자신이 집필중인, 그것도 아직 출간되지 않은 책의 인용구를 사정없이 남발하는 엉뚱함, 분명 진지한 배우 유준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떨어지는 비를 관찰하고 얻은 교훈이 “정확한 과정 속에서 반복되는, 그러나 너무 투명하게 빛나는 예측불허의 낙하와 생성”이라는 것이나, “아무런 준비 없이 주사를 맞으면 더 아프듯 우리네 삶도 항상 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그의 독특한 시선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그가 ‘발명’한 행복은 무엇일까? 그가 발명한 행복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정답은 없다. 그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 남과 다르게 바라본 시선, 그리고 엉뚱한 상상력을 기록할뿐, 결코 무엇이 행복이다 라고 정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음과 같은 그의 ‘기록’에서 그의 행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게으름과 여유의 기준은 뭘까? 그 차이의 여백은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여유로운가!”

 

꿈이여, 내게 현실이 되고, 상상이 되고, 오늘이 되고, 내일이 되어라”

 

시간은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어서 그 셈을 조금만 미루어도 한참을 달아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펴내고 싶다는 배우 유준상. 그가 출간을 준비중인 <박람회장>은 몇년전 그가 캐나다와 쿠바를 여행하면서 쓴 글로, 모든 것들에 이름을 달아주고 싶은 마음에서 쓰게 된 글이다. <아빠는 기부스 중>은 한때 다리가 부러졌을 때 느꼈던 글들과 아빠로서의 삶이 담겨 있으며, <꿈의 동반>4년 동안에 걸쳐 그가 쓴 엽서 묶음이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능가하는 그의 ‘어른 동화’를 손꼽아 기다리겠다.

 


P.S <행복의 발명>인세는 배우 유준상의 뜻에 따라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단체에 전액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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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이효리
출판 : 북하우스 201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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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하는거 아니야”

“이미지 메이킹이겠지…”

“언제까지 가나 두고보자”

 

 

유기동물 보호, 채식주의, 모피 반대 등 최근 이효리는 김제동이나 김여진과는 또 다른 의미의 ‘소셜테이너’로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변화가 지난 4집 앨범 표절 논란 이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녀에게는 늘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바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쇼’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우홍보대사로 활동하고 난 뒤 채식에 들어가거나 모피 반대를 선언한 뒤 가죽 자켓을 입은 모습이 노출되는 등 대중의 심리에 반하는 정황과 실수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때문에 “연예활동에만 충실했으면 좋겠다. 나서리 말라”와 같은 일부 대중의 반응은 ‘연예인’ 이효리가 감당해야할 당연한 몫이었다.

 

 

트위터를 통해 제주 강정의 해군 기지 건설을 위한 구럼비 바위 폭파를 반대하고, 파업 방송국 노조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을 때도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녀는 “자연과 동물, 약자의 편에 서서 다 같이 행복하고자 하는 것이 정치적이라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잘 알다시피, 이효리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동물 보호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채식주의 등은 그녀의 반려견 순심이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발소집 막내딸로 태어나 톱스타가 되어 영광을 누리던 때까지가 그녀 인생의 1막이었다면, 순심이를 만나고나서부터 그녀 인생에 제 2막이 열리게 된 것.

 

 

한때 '애주가'에 '고기마니아'였던 그녀가 동물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채식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그녀가 펴낸 에세이집 <가까이(북하우스)>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표절 논란에서부터 순심이를 만나기까지

 

 

톱스타 이효리가 추락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2집 앨범에서 한차례 표절 논란을 겪은바 있는 그녀는 정말 ‘다시’라는 말 외에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돌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바심을 견디면 만든 4집 앨범. 그러나 또 한번의 폭풍이 그녀를 덮쳤다.

 

 

“나는 믿었다. 그러나 얼마 후 사실은 내가 받은 노래들의 원곡이 따로 있다는 걸 확인했고, 나는 좌절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조심에 또 조심을 기했는데 말이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지 허탈하고 기가 막혔다. 세상이 밉고, 사람이 미웠다. 거짓말로 곡을 넘긴 작곡가도 싫고 그 사기꾼의 곡을 받아서 아무 의심 없이 건네준 회사도 싫었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미웠다…” <가까이 中>

 

 

꼭대기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진 그녀는 술과 눈물, 하소연과 넋두리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도리어 그녀에게 있어서 긍정적 변화를 겪을 수 있었던 의미있는 공백기였다. 쉬는 동안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산을 오르며 자연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MBC 스폐셜-도시의 개>를 시청한 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대표 임순례 감독을 만나고 유기견 봉사활동에 나서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순심이를 만났다. 순심이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진짜 해야할 일도 선명해졌다고 밝혔다. 사설 보호소를 찾아 개들의 똥을 치우고 밥을 챙겨주는 것으로 끝날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상에 알려진 ‘이효리’라는 이름을 이용해보기로 한다.

 

 

“여론을 모으고, 캠페인에 힘을 쏟기로 한다. 가식이야, 거짓이야, 속임수야 식의 나를 향한 삐뚤어진 손가락질은 못 들은 척하면 그만이다. 진실이 아니니까. 지치지 않는 의심의 눈초리, 그것도 상관없아.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에 시간을 쏟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가까이 中 >

 

 

 

 

 

 

 

새로운 아이콘이 되고자 하는 이효리  

 

 

동물 보호에 대한 이효리의 관심은 자연스레 공장식 사육방식에 대한 우리나라 축산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애초 채식주의를 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동물보호 활동을 하면서 본인이 먹는 고기가 어떤 경로를 거쳐 눈앞에 놓이는지를 알고 난 뒤부터는 더 이상 고기를 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책을 통해서도 그녀는 “나는 육식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공장식 사육을 통한 육류를 먹지 않겠다”고 밝혔다.

 

 

"구제역 생매장 현장, 공장식 사육을 당하고 있는 동물들, 법적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지역에서 자행되는 모피 동물에 대한 학대의 실상 등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닥치는 대로 찾았고, 책도 찾아 읽고 영상도 찾아보며 공부했다. 알면 알수록 그 심각성에 대해 깊이 깨달으면서 내 다짐은 더 단단해졌고, 그 즈음 더 이상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다" <가까이 中>

 

 

그녀는 줄탁동시(啐啄同時) 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줄탁동시(啐啄同時)는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단단한 껍질을 안에서 병아리가 쪼고, 밖에서 어미 닭이 부리로 함께 쪼며 돕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효리는 알 속의 병아리가 자신, 그리고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어미 닭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은 한 곳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서투르고 부족한 부분도 많고, 그러다 보니 실수도 하게 되고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한다는 것. 아직 덜 자란 병아리의 부리가 약하듯,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무엇을 당장 바꾸기는 여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지만 사람들이 도와준다면 좀 더 빨리 밖으로 나오고, 길도 덜 헤매지 않겠냐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어차피 연예인이 본업인 만큼 그녀는 지금도 또 앞으로도 화려한 모습으로 대중을 마주할테고, 대중과 언론의 입에서는 ‘이효리’라는 이름이 끊임없이 오르내릴 것이다. 한때는 ‘요정’으로, 또 한때는 ‘섹시 아이콘’으로 불렸지만, 이효리는 지금에서야 '진짜 아이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의 표현법에 따르면, 그것은 ‘겉모습이 아닌 마음에 기반한 꽤 괜찮은 지표’이다.

 

 

“나는 내 몸이 견딜 수 있을 만큼 일을 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덜어내고, 경국에는 동물등과 자연 앞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 인생 최종 목표다”

 

 

어느때보다 지금이 행복하다는 이효리.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 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허나, 이 땅 위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과 함께 행복해지길 위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그녀가 움직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책 판매 수익금 전액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에 기부되는 <가까이> 역시 또 다른 한 걸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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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슬로우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플로리안 오피츠(Florian Opitz ) / 박병화역
출판 : 로도스 20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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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문명사회의 종말을 그린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다. 핵무기를 이용한 대량살상이나 생태계의 재앙, 외계인의 침공, 기계나 로봇의 역습,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세계는 종종 멸망의 길을 걷는다. 각종 소설이나 영화는 이런 소재를 끊임없이 차용하면서 경쟁과 이익에 몰두하는 사회를 비판하거나 인간의 존엄성과 환경을 파괴하는 현대 사회 시스템에 경고를 보낸다.

 

 

종말을 가정한 우리의 상상력은 너무나도 풍부해 아주 짧은 미래부터 먼 미래까지 세계가 멸망하는 방법을 헤아리는 길은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상상력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경쟁과 이익에 몰두하는 과정 속에서 소외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파괴된 환경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한 소설과 영화는 쉬이 만나볼 수 없다.

 

 

 

플로리안 오피츠의 <슬로우>는 바로 종말이 아닌 대안에 초점을 맞춘 상상력의 출발점이라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프리랜서 방송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저자 플로리안 오피츠는 어느날 문득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돌아본 뒤, 현대인의 시간 부족 문제와 가속화 현상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들어오는 메일을 수시로 확인하며, 컴퓨터로 작업의 대부분을 수행하고, 늘 마감시간에 쫓기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디지털기기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불안해서 살 수 없는 그의 문제의식은 그래서 보편적이며 그가 던지는 질문들 역시 공감을 자아낸다.

 

 

대체 우리 모두가 들어가 사는 이 다람쥐 쳇바퀴를 돌리는 것은 누구일까? 우리는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인간의 영원한 물음이라 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 찾기. 종말이 아닌 대안을 찾고자 하는 저자의 여행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간을 아껴 쓰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우선순위를 정해서 일을 해라”,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써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등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주장은 일면 타당하지만, 사실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매 순간 중요하지 않은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흑과 백을 나누듯 딱 잘라 구분 지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에 있어 우선순위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마음을 다르게 먹고, 시간이 부족한 것은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자기 반성을 해봐도 시간의 압박은 사라질 줄 모른다. 무언가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시간 관리 전문가와 시간 연구자, 그리고 디지털 세계에서 벗어나 아날로그로만 작업을 하는 기자를 만난 플로리안 오피츠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는 개인이 아무리 시간을 아껴 쓰려 노력을 해도 사회 전체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은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유행의 주기가 짧아지고,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기간도 짧아지고, 심지어 배우자와의 결혼기간마저도 짧아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시간이라는 것이 개인의 문제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그렇다면 시간문제는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제 속도와 경쟁을 부추기는 세력추적에 나선다.

 

 

속도와 경쟁에 집착하는 세상

 

 

저자가 만난 세계적 기업컨설턴트는 ‘속도’와 ‘효율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누구보다 빠르게 일을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컨설턴트에게 있어 효율성과 경쟁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다. 하지만 문제는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하는 기업 경영 논리가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었다는 데 있다.

 

 

「경쟁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시대. 초·중·고교나 대학교 간에 더 많은 경쟁이 있어야 하고, 전기회사나 가스회사, 보험회사 간에 더 많은 경쟁이 있어야 한다고 모든 정당이 생각하는 시대, 사람들이 점점 시간 부족을 호소하는 시대에 이런 현상은 우연이 아닙니다. ‘경쟁’을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시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입니다…」본문 中

 

 

저자는 세상이 점점 빠르게 돌아가고 우리 모두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 데는 자본주의 경제와 경쟁논리가 큰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기 마련. 우리 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저자는 초 단위로 뉴스를 생산하는 로이터통신 유럽본사를 찾아 그곳에서 컴퓨터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사람의 현실을 마주한다.

 

 

조금 더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개발한 기술이 결국은 인간을 대체하고, 심지어 인간을 위협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기술이란 말인가?

 

 

종말을 넘어 대안을 향한 상상력을 위하여

 

 

행복과 속도 사이에서 고민하는 저자는 이제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찾고자 한다. 그는 제도권에서 탈출한 금융 전문가를 만나고, 산골 농장을 방문한다. 황무지로 떠난 기업가는 물론이고 ‘국민총행복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나라 부탄을 찾아 조건 없는 기본 소득에 대해서도 고민을 한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가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중 누군가는 도시 생활에 지쳐 귀농을 결심,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파괴된 환경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환경운동가 혹은 생태주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그들 중 누구의 삶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저자 역시 결론을 내리지 않고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점을 자세하게 기술, 독자들의 판단을 돕고자 한다. 다만, 저자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부탄의 ‘국민총행복론’과 조건 없는 기본 소득에 대해서는 그것이 희망찬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 바꾸자면 ‘보편적 복지’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지금 당장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진다면, 당장 오늘 해야 할 일에 급급해하기 보다는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상상력은 이제 세계의 종말을 넘어 물질 문명사회의 대안을 향해 더욱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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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포 킬러
국내도서>소설
저자 : 미즈하라 슈사쿠 / 이기웅역
출판 : 포레 201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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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사우스포 킬러’.


야구계에서는 “왼손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리고 와야한다”는 속설이 있을정도로 왼손투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대체 왜 왼손투수를 노린단 말인가. 혹시 좌투수에게 어떤 원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미즈하라 슈사쿠의 <사우스포 킬러>는 승부조작스캔들에 휘말린 냉정한 좌투수가 본인의 무죄를 증명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본격 야구 미스터리다. 야구와 미스터리를 접목시켰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하필이면 소재가 승부조작이다.


자연스레 얼마전 국내 프로야구를 떠들석하게 했던 박현준, 김성현의 승부조작 사건이 떠오른다. 물론 일본 야구를 배경으로는 <사우스포 킬러>와 국내 야구 승부조작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좌투수’, ‘승부조작’, ‘미스터리’라는 세 단어는 국내 야구팬은 물론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게다가 본격적인 야구 시즌이다. 야구의 계절에 야구와 관련된 미스터리는 대중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미스터리의 긴장감은 떨어지지만 경기묘사는 발군


 

주인동 사와무라 와타루는 일본 최고 명문 인기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모델로 한 오리올스 소속 2년차 좌투수다. 마운드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냉정하기 그지없는 그는 뛰어난 두뇌를 소유했지만, 팀내 다른 선수들과는 융화되지 못하는 ‘주변인’이다. 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뛰어나서 팀내 차세대 ‘에이스’로 각광을 받는다.


그런데 어느날 그는 폭행시비에 휘말리면서 급기야 ‘승부조작’ 누명을 쓰기에 이른다. 스캔들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언론은 사실보다는 선정성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대중들로부터 ‘승부조작’ 선수로 낙인 찍힌 그는 2군행을 통보받는다.


이야기는 이제 사와무라가 자신을 누명에 빠트린 존재를 찾기 위해 조사에 나서며 본격적인 미스터리 장르의 공식을 따른다. 여러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크고 작은 복선들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사건과 범인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난다. 사와무라는 한걸음씩 자신이 휘말린 스캔들에 숨긴 진실에 다가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왼손투수들이 연달아 어떤 사건사고에 휘말려 트레이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최종 배후는 바로 ‘사우스포 킬러’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종 범인이 밝혀지기 까지의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말미에 이르러서 드러나는 ‘사우스포 킬러’의 존재는 누구나 한번쯤 의심해보게 되는 인물로, 사와무라와 같은 팀 소속의 노장 투수다.


사실 <사우스포 킬러>는 팀내에서 젊은 좌투수가 계속해서 사라질 경우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 라는 기초적인 질문만 던져도 범인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스터리 장르로서는 부족함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도 남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야구 경기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다.

특히 투수인 사와무라가 마운드에 올라 느끼는 감정, 경기 진행 과정, 사와무라의 심리묘사 등은 실제 야구를 보는 착각마저 일으킬 정로도 생생하고 입체적이다.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 없이는 그려낼 수 없는 ‘디테일’은 때때로 야구만화를 보는 느낌마저 자아낸다. 순간 순간마다 긴장감이 넘치고 투지가 느껴진다.

 

 

젊음을 질투하는 노장의 그릇된 욕망


 

사우스포 킬러’의 최종 배후 미우라는 한때 최고 투수라 불리울 정도로 실력과 인기를 겸비했던 노장 투수다. 비록 팀내에서는 ‘에이스’라 불리우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우라 본인 생각일뿐, 시대는 바뀌었다. 언제 트레이드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약해진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같은 팀 좌투수들을 계속해서 스캔들에 휘말리게 해 팀을 떠나게 만든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젊음에 대한 ‘질투’라고 그려내지만, 어찌보면 그것은 수컷 본연의 욕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는 영화 <은교>에서 보여지는 이적요의 욕망과도 맞닿은 부분인데, 육체적인 혹은 생물학적인 부분에 있어 나이든 수컷은 자연스레 젊음이라는 그 자체에 질투와 욕망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냐가 문제 될 순 있어도 욕망 그 자체가 ‘악’이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젊음이 상이 아니듯, 늙음 역시 벌이 아닌건만, 때때로 세상은 나이든 사람을 ‘퇴물’취급하고, 그들의 욕망을 ‘주책’이라고 치부한다. 그런의미에서 젊었을때 최고의 자리에 올라본 미우라는 단지 시간이 지나 힘이 조금 떨어졌다고 자신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는 구단이나 관중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어필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 쓸만하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미우라의 경우는 젊음에 대한 질투가 그릇된 욕망으로 표출되어 문제가 되었을 뿐, 그의 행동이 전혀 이해못할 수준의 광기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사와무라 역시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했던 미우라에게 분노를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동정심을 갖게 되는데, 그런 사와무라의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마도 남자든 여자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젊음에 대한 욕망을 한주먹 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끝으로 꼽고 싶은 명장면 하나. 사와무라가 무죄를 밝히기 위해 자신의 선수생명을 걸고 나선 선발피칭. 실제 야구 경기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우연 등이 겹치고, 선발투수의 외로움과 책임감, 그리고 자존심 등이 감동으로 어우러진다. 이는 리얼리티와는 별개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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