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리뷰토피아

이직 후 인수인계 하러갔다가 쫓겨난 사연

살아가는 이야기/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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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의 활력소라고 할 게 뭐 대단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짬짬이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러 다른 직장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마치 내 이야기 같기도 해서 공감이 되고, 또 때로는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일상의 짜증을 날려버리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나 아니면 저처럼 직장 생활 경험이 3년 미만인 경우에는 그들의 일상다반사 가운데 ‘이직’과 관련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요. 직장인에게 있어 ‘이직’이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인거 같습니다.

 


 

 

‘이직’과 관련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니, 지난해 제가 겪었던 일이 떠올라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기…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네, 결심이 섰는가?"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음..............."




 

며칠 전 운을 떼긴 했습니다. 입사 후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는 정시 퇴근, 생각보다 열악했던 임금,. 그리고 무엇보다 몇 개월 단위로 이뤄지는 계약 시스템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아니, 이해를 하자면 굳이 못할 것도 없었습니다다. 지역에서 대학을 나오고, 기껏해야 1~2년의 사회 경험밖에 없는 20대 후반의 남자가 어디 가서 정시퇴근을 꿈꾸며, 고액 연봉을 바라겠습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순응한다면, 지역 병원의 행정직 특성상 이직률이 높기 때문에 몇 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것도 그렇게 이해 못할 시스템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 걸려온 전화가 문제였습니다. 잠깐이지만 지역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쌓아 놓은 인맥 덕분일까요. 급하게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부랴부랴 이력서를 준비하고, 휴가를 낸 뒤,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면접을 보러 떠나기 전, 팀장님께 언질을 드렸고, 오늘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음……."

 

팀장님은 한참동안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세…."

"네…."

 


팀장님은 조용히 담배를 꺼내 물으셨습니다. 몇 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인지 정이 많이 든 팀장님이십니다. 팀원이 적은 까닭도 있었지만, 워낙 다른 조직원에 비해 개방적인 사고를 하시는 분이셨기에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보다 돈은 많이 주겠지? 조건도 좋고? 허허~"

"……."

"더 좋은 곳으로, 꿈을 찾아 떠난다는데 어쩌겠나…. 그래, 출근은 언제부터 해야 되나?"


 

 

 

팀장님도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하신 모양이었습니다.

 

"저쪽도 워낙 사람이 급한 상황이어서요. 를수록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이쪽 사정에 맞추기로 했습니다."

"음… 그래…. 그럼, 그쪽 가서 일단 급한 일만 해결하고, 여기서 한 보름만 더 해줄 수 있나? 인수인계도 해야 되니까…."


 



팀장님은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어차피 잡지 못할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자, 업무 인수인계 차원에서 2주만 더 있어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죠. 흔히들, "이직을 하려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내뿜는 팀장님을 보자, 저도 모르게 "네"라는 대답이 나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약 열흘간 새로운 회사에서 급한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신문방송학'이라는 전공을 살릴 기회도 많았고, 업무 역시 이전 조직보다 훨씬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열흘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은 흘렀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들은 새로운 회사에서는 약 2주간의 시간을 주었고, 다시금 OO병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열흘간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난 제 모습에 아침 조회시간은 한동안 떠들썩했고, 멀리서 그 모습을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병원 이사장이었죠.

 


조회가 끝난 뒤, 사무실에 들어온 저는 서둘러 인수인계서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부서는 기획마케팅팀이었지만 담당하는 업무가 워낙 이것저것 많아서, 파일을 정리하는데만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았습니다. 게다가 내 업무를 새로 담당하게 될 사람은 전산 업무을 담당하는 사람이어서(채용공고를 냈지만, 몇 주째 지원자가 없어 결국 내부인력에서 충원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되도록 이해하기 쉽게 인수인계서를 작성하다 보니 시간이 배로 걸리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점심 때쯤 팀장님이 사무실에 오셨습니다다. 그런데, 왠지 얼굴빛이 어두우신 게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그쪽도 바쁠 텐데,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여기도 제 직장인데, 저 때문에 피해를 보면 안 되죠. 업무 인수인계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가겠습니다."

"으…음…. 그… 그런데 말이지……."

"네?"

"머라고 말해야 할지… 참……."


 



팀장님은 너무나 미안하셨는지, 몇 번이나 말을 돌려가며 조심스레 말씀하셨는데, 핵심은 하나였습니다다. 병원의 총 책임자이신 이사장님께서 "이직한 사원이 왜 병원에 와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어 "당장 내 병원에서 나가게 했다"는 것.

 

업무 인수인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당장 자신의 눈앞에서 나를 안보이게 지시했다는 것은 다른 동료의 입을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회사에서 당장 나가게!"로 통하는 강제 퇴직이 이런 기분일까요. 정말인지 묘했습니다. 분명, 제가 먼저 나가겠다고 했으니 강제 퇴직은 아니었지만, 인수인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왔는데, 내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싶었습니다. 이른바 '괘씸죄'이지 싶었으나, 차를 타고 두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생각하면, 사실 조금 억울한 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길로 다시 짐을 챙겨 병원 문을 나올 수밖에요….

 

'이직 할 땐, 뒤도 돌아보지 말라'는 속설이 사무치게 다가왔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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