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더 중시하나?

[리뷰] 영화 <내부자들>이 씁쓸했던 이유


사람들은 메시지(Message)보다 메신저(Messenger)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언론이 그렇다. 최근 광화문 집회만 보더라도, 그들이 모인 이유(메시지)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복면과 배후세력(?)에 대한 이야기만 넘쳐난다. 언론이 앞장서 ‘메신저’를 공격하면, 힘이 없는 자의 주장은 단순한 정치공작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흠집내기’로 치부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영화 <내부자들>은 바로 이런 현실을 스크린에 담았다.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분)는 대한민국 여론을 움직여 자신들이 원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 권력자들의 비리를 세상에 까발리지만, 그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인 비리장부까지 공개해도, 그의 ‘메시지’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그가 ‘깡패’이기 때문이다.




 

재벌은 돈으로 증인을 매수하고, 언론은 안상구를 파렴치한 사기꾼과 성폭행범으로 몰아세운다. 대중은 ‘깡패’의 말이 아닌, 언론과 정치인의 말을 더 신뢰한다. 여론은 너무도 쉽게 돌아선다. 그렇게 재벌-국회의원-논설주간이 하나도어 저지른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은 희대의 사기꾼이 저지른 정치공작, 즉 ‘거짓말’로 마무리된다.

 

결국,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안상구가 ‘깡패’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입김, 재벌 회장의 돈, 논설주간의 펜은 서로가 서로의 방패막이 되어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 웹툰을 그린 윤태호 작가의 말대로, 모든 균열이라는 것은 내부의 조건이 완성시키는 법이다. 처음에는 그저 대어를 낚아 출세 길에 오르고자 했던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은 이 빌어먹을 시스템에 균열을 내기 위해 스스로 ‘내부자’가 되고자 한다. 언론과 대중이 깡패의 말은 믿지 않더라도, 검사의 말은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장훈은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시스템의 일원이 되고, 그곳에서 ‘결정적 증거’를 들고 나온다.

 

우장훈의 주장은 안상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커다란 폭발력을 발휘한다. ‘메신저’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시스템의 일원이 돼서 가지고 나온 ‘빼박(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결정적이었지만, 만약 우장훈이 검사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그 역시 안상구의 전철을 밞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펜은 칼이 되어 끊임없이 그를 흠집 낼 것이고, 돈은 채찍이 되어 그를 무릎 꿇리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공허한 메아리로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직 검사의 양심선언과 내부고발은 ‘광야의 외침’이 되어, 마침내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들 중 누구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란 변명과 “주어가 없다”란 핑계를 댈 수 없을 만큼 우장훈의 반격은 완벽했다. 그리고 통쾌했다.

 

허나,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부패와 비리의 민낯을 들추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아무리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의문을 제기해도, 언론에서 눈감고 “빨갱이”란 낙인을 찍으면, 결국 ‘메시지’ 싸움은 ‘메신저’ 싸움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이강희(백윤식 분) 논설위원이 대중을 개·돼지로 묘사하고, 재벌 총수가 파업노동자를 향해 “빨갱이”라고 소리치는 건 그래서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안상구는 복수에 성공하고, 우장훈은 정의를 지켜내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다. 오히려 절망적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운명 공동체인 그들 중 누구도 시스템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안상구와 우장훈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메신저’ 싸움에서 패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을 ‘불법세력’으로 규정하는 권력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화 되고, 복면 시위대를 IS와 비교하며 ‘복면시위 금지법’이 일사천리로 발의되는 게 바로 2015년의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메시지(Message)를 지우기 위해 메신저(Messenger)를 부각시키는 건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서늘하다. 기온이 내려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영화 제작사 (유)내부자들 문화전문회사 등 있습니다.

글의 무단 도용 및 불펌을 금지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베테랑>을 향한 열광, 누구를 향한 응원인가?

흥행 열풍 <베테랑>, 판타지를 넘어 삶의 동력이 되기를...

 

<암살>이 그러했듯, 영화 <베테랑>은 쉬운 영화다. 한 마디로 죄짓고 살지 말자는 이야기다. 악랄한 재벌 3세와 정의로운 형사의 대립에서 이미 관객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권선징악’ 내지 ‘정의구현’이란 네 글자의 단어들로 요악할 수 있다.

 

영화는 관객의 예상을 비껴가지 않는다. 영화초반 호쾌한 액션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붙든 류승완 감독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던진다. 뉴스 등을 통해 한번쯤 봤을 법한 재벌가의 일탈과 악행을 보여줌으로써 분노를 일으키고, 이어 정의감 하나로 이들에 맞서는 서도철(황정민 분) 형사를 통해 어떤 통쾌감을 선사한다.

 

 

 

 

그것이 법이든 정의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내가 믿는 가치가 결국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것은 분명 짜릿한 일이다. 더욱이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일수록 스크린에서의 통쾌함은 배가 된다. 7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둔 영화 <베테랑>의 힘이다.

 

비록 돈은 없어도, 쪽팔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아파트 대출금에 아이들에 학자금, 그리고 치솟는 물가와 달리 제자리걸음인 월급을 생각해보면 돈의 유혹 앞에 ‘갈대’가 되지 않을 자 그리 흔치 않다. 그래도 흔들리는 거 까진 괜찮다. 다만, 머리가 좌우가 아닌 위아래로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욕할 자격조차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베테랑>은 어떤 의미로는 판타지다. 애초에 일개 형사가 재벌에 맞선다는 설정 자체가 황당하기도 하거니와, 그가 이길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판타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아마도 진실과 정의를 목말라 하는 이 시대 대중들에게 보내는 류승완 감독의 위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권력을 이기는 정의, 그리고 돈의 무게를 견디는 진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지만, ‘꿈’이 폄훼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암살>이었으며, 이런 꿈을 꾸지 못하니까 <베테랑>이 판타지에 머무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가 다 서도철처럼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의 삶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달콤한 권력과 돈에 맞서 쓴맛 나는 정의와 진실을 지키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현실의 결과는 영화와 달라서, 그들 중 상당수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삶이 망가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에게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차지 않고 응원의 박수를 보낼 때, <베테랑>은 판타지를 넘어 아주 미약하나마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요즘 시대엔 도리어 판타지가 아니냐고 하지만, 실제로 서도철 같은 사람이 존재해요. 재벌의 폭행사건을 파헤친 형사가 있었고, 권력이 감추려는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는 기자들이 있고, 양심에 따라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고발자도 있죠.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응원하는 거라고 봐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류승관 감독은 영화 <베테랑>을 ‘정상적인 사회에 대한 바람’으로 정의한바 있다. 정의롭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 어쩌면 감독이 바랐던 ‘정상적인 사회’의 출발점은 바로 거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베테랑>에 대한 관객들의 열광은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닌 ‘권선징악’에 보내는 응원인 동시에 돈 앞에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을 향한 응원, 그리고 정의가 승리하길 바라는 최소한의 양심에 보내는 박수가 아닐까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암살>은 무엇을 저격했나?

[영화리뷰] 오락영화 <암살>의 오락답지 않은 메시지

 

영화 <암살>이 700만 고지를 넘어섰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고 흥행 성적이다. 개봉 3주차를 맞이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압도적인 좌석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1000만 영화’ 목록에도 충분히 이름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뜨거운 이 여름, <암살>은 제대로 관객들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했다.

 

<암살>을 통해 최동훈 감독은 또 한 번 자신의 이름값을 증명해냈다. 역시나, 오락영화의 거장(?)다운 노림수가 통했다. 무겁고 비장할 수밖에 없는 일제시대의 독립군 이야기를 최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캐릭터를 통해 극복해 낸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무난하지만 배우들의 화려한 액션과 요소요소의 유머 덕에 139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조차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흔히 ‘실패한 역사’는 드라마(혹은 영화)로서의 가치가 낮다고 말한다. 관객(혹은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거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승-전-패배로 이어지는 스토리에 기대감을 가지고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할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그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대부분 저조했으며, 역사극 중 상당수는 승자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최동훈 표 일제시대는 달랐다. 9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당시 시대에 대해 연구와 고민을 거듭한 최동훈 감독은 일제시대를 그저 ‘실패한 역사’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영화 속 대사처럼,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나 암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럼에도 몇 안되는 독립군이 신념을 가지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끝내 광복을 맞이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름없는 독립군)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전한다.

 

 

 

 

영화 <명량>에서 조선 수군들은 ‘과연 후손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고생한 것을 알기나 할까?’ 라고 말한다. 그 대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선조들이 피땀 흘려 지켜왔다는 의미이며,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뜻일 게다. <암살> 역시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영감(오달수 분)의 입을 빌어 최동훈 감독은 몇 번이나 "우리를 잊지 말라“고 전한다. 홀로 남은 안옥윤(전지현 분)을 향해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들을 향한 메시지임을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 중 누구는 경성에서 커피를 마시며 연애를 하고 싶어 했던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했다. 또, 그저 돈을 많이 벌어 편안하게 살고 싶었던 소박한 꿈이 전부였으며, 여자들이 다 벗고 하와이에 가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싸웠고, 목숨을 잃었으며, 끝내 광복을 맞이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특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지금 같은 흥행속도라면 8월 15일 이전에 <암살>의 천만돌파는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1000만 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가? 과거사 이야기는 그만 하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일본군과 친일파를 향해 당겼던 안옥윤의 방아쇠가 전해주었던 그 쾌감을 안고 극장을 나온 우리가 조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일제잔재와 친일파 청산을 여전히 숙제로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암살>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시원하지만 그래서 또 가슴 아픈 영화이기도 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리더십의 관점으로 본 <해무>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어선 한 척.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선장은 절대적인 권한(혹은 권력)을 갖는다. 그에 따르는 책임 역시 막중하다. 선장의 말 한마디에, 그리고 결정 하나에 배의 운명이 결정되고 선원들의 생사가 갈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선장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 배에서는 내가 대통령이고 판사고 니들 아버지야!” 영화 <해무> 속 선장 철주(김윤석 분)는 선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선장이다. 스스로를 ‘대통령’이라고 칭하는 모습에서는 제왕적 리더의 모습이 느껴지지만, 그만큼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결의가 엿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철주는 감척 대상으로 분류될 만큼 낡은 전진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선원들의 밥줄을 지켜주고자 애를 쓴다. 그가 밀항의 조력자로 나서게 된 이유 역시 선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감의 무게 때문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휘두르는 선장의 권력이 누구에게도 견제 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진호에 오른 완호(문성근 분), 호영(김상호 분), 경구(유승목 분), 창욱(이희준 분), 동식(박유천 분)은 모두 선장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뱃사람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한다. 전진호 안에서만큼은 철주의 말이 곧 법이요 진리다.

 

물론, 철주의 제왕적 리더십이 옳은 방향으로 쓰일 땐 아무 문제가 없다. 가령 영화 초반 뱃일에 서툰 동식(박유천 분)이 그물에 발이 끼어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 갈 때, 그를 구한 건 다름 아닌 철주의 냉정한 판단력이다. 다른 선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를 때, 철주는 과감히 기계를 부수는 결정을 내린다. 철주의 과감하고 빠른 판단력 덕분에 동식은 다리를 잃을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전진호 안에는 정과 의리가 넘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철주 역시 한명의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선장이라는 직위를 떼어놓고 보면 그 역시 IMF 여파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보통의 가장과 다를 바가 없다. 돈을 향한 세속적 욕망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그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밀항자를 실어 나르는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만다.

 

걸리면 모두 감옥행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머지 선원들 역시 선장의 판단에 침묵으로 동의한다. 왜냐하면, 뱃사람은 선장의 말에 따르는 것이 덕목이니까. 그리고 그들 역시 누구보다 돈이 필요했으므로.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리더의 잘못된 판단에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했고,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라는 허울 아래 계속해서 그릇된 행동을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철주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전진호의 '질서‘는 밀항자들이 배에 오르면서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전진호 입장에서는 ‘이방인’인 밀항자들이 전진호의 규칙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전진호의 선장인 철주는 폭력을 동원하여 이를 일시 봉합하지만, 이로써 철주의 리더십은 이제 책임의 리더십과 제왕적 리더십을 거쳐 폭력의 리더십으로 폭주하고 만다. 더 나아가 철주는 선원들끼리 묻어둔 전진호의 비밀을 폭로할까 두려워 기관장인 완호를 살해하기에 이르고, 이를 목격한 동식은 더 이상 철주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신뢰를 잃은 리더는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다.

 

 

 

철주의 리더십이 무너지자 전진호는 광기의 장으로 변하고 만다. 나머지 선원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고, 전진호에서는 아무런 규칙과 질서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로지 욕망에 눈이 먼 자들, 그리고 살려고 몸부림 치는 나약한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과정의 중심에는 밀항자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홍매(박예리 분)가 존재하지만, 전진호가 비극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철주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든 선원들을 지키려던 책임의 리더십이 끝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과 광기의 리더십으로 변질되면서 결국은 동식의 저항에 부딪혔고, 그 연쇄작용이 전진호의 침몰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물론, 전진호의 비극을 모두 철주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 나머지 선원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너무나 고분고분했다. 쉽게 믿었고, 의심 없이 따랐다. 완호와 동식이 문제를 제기했을 땐, 너무 늦어버렸다.

 

한 사람의 리더십에만 의지하는 ‘질서’가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그리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어떤 식으로 변질되어 가는지, 영화 <해무>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화 스틸컷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저작권은 제작사 해무에 있습니다.

글의 무단 도용 및 불펌을 금지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기와 술수가 판을 치는 놀음의 세계에도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 화투가 되었든 마작이 되었든 혹은 바둑이 되었든, 일차적으로는 게임 그 자체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박의 세계에 폭력이 빠질 수야 없겠지만, 그건 가진 것을 모두 잃어 걸 수 있는 게 목숨밖에 남지 않았다거나 혹은 사기가 발각되었을 때에만 허용되어져야 한다. 게임보다 폭력이 앞서게 되면 ‘도박판’이라는 세계관 자체가 무너지게 되고, 이야기의 긴장감 또한 떨어지기 때문이다.

 

영화 <타짜>에서 아귀(김윤석 분)가 폭력을 동반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상대방이 판돈을 모두 잃었을 때, 혹은 속칭 ‘기술’을 쓰다 걸렸을 경우다. 만약,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고 해서 아귀가 다짜고짜 폭력을 동반했다면, 그는 타짜의 세계에서 결코 1인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승부에서 이긴 지든 결국 ‘주먹’으로 판가름이 나는 게임이라면 그게 무슨 도박판이란 말인가. 그저 주먹싸움이지.

 

내기 바둑의 세계를 그린 <신의 한수>의 ‘패착’은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바둑의 고수들이 벌이는 불꽃 튀는 두뇌싸움이나 혹은 상대편의 훈수를 밝히기 위해 벌이는 속임수 대신, 모든 승부가 끝내는 칼과 주먹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가령, 태석(정우성 분)측의 꽁수(김인권 분)와 살수(이범수 분)측의 선수(최진혁 분)가 처음으로 맞붙는 바둑 대결만 봐도 그렇다. 두 사람은 각각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주님(안성기 분)과 왕사범(이도경 분)의 훈수를 받았다. 속칭 ‘기술’을 쓴 것이다. 둘 다 똑같이 기술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면, 결국 바둑이라는 승부에서 이기거나 혹은 상대방의 기술을 먼저 밝혀내는 자가 돈을 먹어야 한다. 그게 도박판의 세계관이다. 그런데 왕사범과 선수는 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다짜고짜 칼을 들이밀며 이 도박판의 세계관을 뒤엎는다. 그들의 목적은 애초부터 돈. 굳이 ‘바둑’이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태석과 살수의 최종대결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두 사람이 두는 바둑에서는 그 어떤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둑의 승부는 곁가지이기 때문이다. 바둑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훈수 여부와는 무관하게, 주먹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결국에는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관객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신의 한수>에 등장하는 소재가 바둑이 아니라 오목이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라는 일부의 조롱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바둑을 소재고 도박판의 이야기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은 정우성의 액션 뿐이다. 교도소에서 바둑이 아닌 싸움을 연마한 태석은 사실 바둑의 고수가 아닌 싸움의 고수였던 것이고, 승부의 향방을 가늠하는 것은 ‘신의 한수’가 아닌 ‘신의 주먹’이었던 셈이다. (물론, 상대의 수를 내다볼 줄 안다는 점에서 바둑 고수 태석이 싸움 고수로 성장해 나간다는 설정은 나름 의미가 있다.)

 

 

 

물론,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할 만큼 이 영화가 갖는 오락적인 재미는 충분하다. 속편을 염두하고 생략한 몇몇 이야기가 다소 불친철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정우성의 호쾌한 액션과 명품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 덕에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덫에 덫을 놓거나, 살을 주고 뼈를 치는 전략은 찾아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살과 살이 부딪히며 칼부림이 난자하는 액션을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단, 영화 속이든 우리의 인생이든 ‘신의 한수’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과, ‘주먹 센 놈이 이긴다’는 폭력영화의 진리는 <신의 한수>에서도 유효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메이스엔터테인먼트,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에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마땅히 볼 영화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 사람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29일 전해진 한 영화의 개봉소식이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바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해 제작한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양우석 감독, 위더스필름 제작)에 대한 이야기다.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의 누간가의 변호인을 자청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인물과 배경에서부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은 이영화의 예고편이 공개되고, 오는 12월 19일 개봉을 확정지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변호인’에 대한 기대감은 수직 상승중이다. 대체, 언론과 대중은 왜 ‘변호인’에 뜨거운 관심을 쏟아내는 것일까. 아직 개봉일이 50여일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집중 조명 받는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송강호의 3연타석 홈런은 성공할까?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는 2013년 누구보다 빛나는 한해를 보냈다. 930만을 불러 모은 <설국열차>에 이어 <관상>마저 900만을 넘기는 등 올해만 1800만명 이상의 관객과 만났다. 여전히 막강한 흥행파워를 자랑하는 그가 주연으로 나선만큼 12월 개봉하는 ‘변호인’ 역시 충분히 기대해 볼만한 하다는 생각이다.

 

그가 연기한 ‘변호인’ 속 송우석 캐릭터가 <설국열차>와 <관상>속 캐릭터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도 관객들의 구미를 자극할 만한 요소다. 평소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능했던 송강호이니 만큼 그가 연기할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 짧은’ 변호사의 역할도 충분히 기대해 볼만 하다.

 

송강호는 <변호인> 출연과 관련해 “잊지 못할 작품을 만났다. 감히 내 작은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한 영화다”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묻어난다. 굳이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배우 송강호가 한해에 자신이 출연한 3편의 영화를 모두 흥행시킬 수 있을지 여부를 지켜보는 건 <변호인>을 기대하게 만드는 충분한 요소임에 분명하다.

 

 

 

 

천만 넘긴 <광해>…혹시 <변호인>도?

 

<변호인>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광해> 자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대통령 선거 전에 개봉하여 1000만을 넘긴 <광해>는 바람직한 지도자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하게 만들었다.

 

<광해>의 추창민 감독은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히 있지만 특정 인물이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며 선을 그었지만, 원작자인 황조윤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 부분을 드러내려는 의도는 있었다”고 밝힌바 있다. <광해>를 본 관객들이 자연스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린 것이 잘못된 판단은 아니라는 의미다.

 

<광해>가 천만을 넘긴 힘은 대선 전에 개봉했다는 시기적 요소와 영화 자체가 갖는 스토리의 힘, 그리고 주연배우 이병헌의 연기 등이 복합적으로 아우러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변호인>은 새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지난 시점에 개봉된다는 점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과연 두 영화의 이런 차이는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변호인>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이 모아지는 또 다른 이유다.

 

 

 

<변호인>은 하반기 한국영화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영화 <변호인>이 기대되는 마지막 이유는 이 영화가 올해가 거의 끝나는 시점에 개봉된다는 점이다. 잘 나가던 한국영화의 흥행세가 한풀 꺾인 하반기, <변호인>이 한국영화의 ‘구세주’로 떠오를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은 <변호인>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의 흥행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천만을 넘긴 <7번방의 선물>을 시작으로, <베를린>과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700만을 넘겼다. <더 테러 라이브>와 <숨박꼭질>역시 500만을 넘기는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900만을 넘긴 <관상> 이후에는 이렇다 할 영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 흥행세가 한풀 꺽인 <화의>와 <소원>은 300만을 넘기기 쉽지 않아 보이며, 지난 24일 나란히 개봉한 <톱스타>와 <배우는 배우다> 역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오히려 외화 <그레비티>가 선전을 거두고 있으며, 또 한편의 헐리웃 대작 <토르:다크월드>가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영화를 압도하고 있다. 이종석과 서인국이라는 청춘스타를 앞세운 <노브레싱>은 예상과 달리 기대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공범>, <응징자> 등 10월 개봉한 한국영화 대부분이 이렇다 할 힘을 못 쓰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은 다시금 한국영화의 흥행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소재 자체는 관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하고, 송강호를 비롯한 오달수, 김영애, 곽도원, 조민기, 이성민, 임시완 등 배우진도 나쁘지 않다. 중요한 점은 서거 이후에도 여전히 정쟁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인 만큼, 개봉 전 얼마만큼의 상영관을 확보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예고편 공개만으로도 상영운동이 벌어질 만큼 대중과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변호인>. 이 영화가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방송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해당 언론사에 있습니다.>

공감하셨다면 구독과 추천을 눌러주세요^^ 글쓴이에게 커다란 힘이 됩니다.^^

아래 손가락 버튼을 꾸욱~^^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동화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기 마련이다. 비록 약간의 각색은 있을지언정 오랜 시간 동안 동화가 구전되어 내려져 온 까닭은 그 안에 담겨진 인간의 본성이 어느 시대에서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재해석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에 선과 악이 모두 담겨 있듯,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속엔 세상의 잔혹함과 인간의 욕심이 어떤 파멸을 불러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다만,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스토리를 단순화시키고, 권선징악과 같은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기는 과정에서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 중심으로 후대에 전해질 뿐이다.

 

 

 

영화 <잭 더 자이언트 킬러>의 원작인 영국 동화 <잭과 콩나물> 역시 주인공 잭의 모험담으로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져있지만, 이 동화를 한꺼플 벗겨놓고 보면 잭은 콩나무를 타고 거인나라에 올라가 황금알을 낳는 닭과 스스로 연주하는 하프를 훔쳐 내려온 ‘도둑’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화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잭의 왕성한 호기심과 모험심을 포장하고, 끝내 거인을 죽이게 된 잭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훔쳐온 보물을 가지고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론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결말을 선보인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손에 의해 영화 <잭 더 자이언트 킬러>가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왜 잭이 거인나라로 올라가서 보물을 훔쳐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와 혹은 거인을 죽여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던 그럴듯한 개연성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 영화는 단순히 동화책을 3D 판타지로 구현한 영상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쉽게도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했다. 동화에 대한 재해석 보다는 화려한 영상미에 집중했고, 결국 원작 동화를 충실하게 스크린으로 옮겨 놓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마저도 다른 판타지 영화와 차별성을 갖지 못했고, 오히려 약한 스토리의 힘을 CG로 극복하려 했다는 비난마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브라이언 싱어와 이완 맥그리거 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임에 틀림없다.

 

물론 감독은 원작에 없는 이자벨 공주를 등장시킴으로써 잭이 콩나무를 타고 거인나라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충분한(?) 계기를 마련해줬다. 더불어 잭과 이자벨 공주의 로맨스를 앞세워 왜 인간과 거인의 한판 승부를 벌여야만 했는지도 나름 설득력있게 설명하려 했다. 문제는 애초 거인을 ‘악’으로 규정해 놓았다는 점이고, 거대한 제작비를 들여 완성한 거인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비호감’으로 비춰졌다는 데 있다. “왜 거인은 악일까?”라는 질문 앞에 영화는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한다.

 

게다가 나약한 인간과 초월적인 힘을 가진 거인과의 전쟁에서 승부의 분수령이 되는 ‘왕관’의 존재는 판타지 영화가 갖는 일차적 재미인 ‘짜릿함’을 반감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인간과 거인의 전쟁이 절정에 다다르기도 전에 ‘왕관’이라는 절대적인 힘 앞에 모든 싸움이 완료되는 건 약간의 허무함마저 만들어 낸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데 오는 카타르시스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잭 더 자이언트 킬러>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일지도 모른다.

 

애초 인간과 거인이 전쟁을 벌이게 된 이유는 거인을 이용하여 인간세계를 지배하려는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다. 탐욕은 바로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 탐욕에 맞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 역시 인간이다. 희생 역시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다.

 

 

조금만 시선을 비틀어서 인간의 내면에 탐욕과 희생이 공존하는 것처럼 거인들 역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존재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호감형 거인과 비호감형 거인 등 거인들의 캐릭터도 다양해졌을 테고, ‘절대 왕관’에 의존해 인간과 거인의 전쟁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엄마 아빠와 함께 영화를 보는 어린 친구들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착한 거인을 응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건 거인들만 나오면 흉직하다며 고개를 돌리거나 잔인하다고 소리치는 상황이니….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끝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 그 오랜 시간 동안 하늘나라에 갇혀 살면서 인간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워 온 거인들은 왜 왕관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두지 않았을까? 왕관 따위 엿이라 바꿔 먹으라고 큰 소리 치는 반전을 기대했건만….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영화 제작사 측에 있습니다.>

공감하셨다면 구독과 추천을 눌러주세요^^ 글쓴이에게 커다란 힘이 됩니다.^^

아래 손가락 버튼을 꾸욱~^^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첩보 액션 영화의 기본은 배신과 복수다. 속고 속인다는 대전제 하에서 스토리의 잔가지가 생겨난다. 제 아무리 탄탄한 구성과 연출력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스토리 자체는 새로울 게 전혀 없다. 첩보 액션 영화가 갖는 일종의 한계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역시나 액션의 새로움이다. 총격전만으로도 놀라움을 자아냈던 첩보 영화의 액션은 이제 핵미사일이 등장하고 궁전이 폭파되는 장면을 보여주는 데 까지 진화했다. 007시리즈나 <미션임파서블>의 새로운 버전이 나올 경우 관객은 이제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번에는 어떤 신무기가 등장할까?’하고 기대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베를린>의 스토리를 분석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첩보영화에 북한이 등장하는 건 매우 자연스런 결과이며,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한 개인의 생존기’는 수많은 첩보영화 스토리의 기본이다. <베를린>을 보면서 익숙함이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고, 그 ‘익숙함’이야 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베를린>이 거둔 성공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헐리웃영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배우가 출연하고 우리나라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이런 블록버스터급 오락영화가 ‘제대로’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반길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일차원적인 액션에 주목했던 류승완 감독은 생애 처음 100억대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베를린>에서 원 없이 액션을 ‘질렀다’. 규모면에서는 007시리즈나 미션시리즈에 못 미치고, 스토리 면에서도 본시리즈에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 액션영화 가운데 이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가 있었냐는 질문을 던지면, 마땅히 대답할 만한 영화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베를린>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건 류승완 감독 개인에게 해당하는 시작점일 수 도 있고, 좀 더 큰 틀에서 본다면 이제 우리나라 액션영화의 변천사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지점일 수 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에서 이 정도의 액션을 ‘낯설음’이 아닌 ‘익숙함’으로 포장해 낼 줄 아는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이라면 새로운 도전도 가능하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베를린>을 보면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지금껏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한국형 판타지 액션이라는 장르를 류승완 감독이 도전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헐리웃 영화 가운데서는 <트랜스포머>처럼 로봇들이 싸움을 하거나 아니면 <스파이더맨>이나 <베트맨> 시리즈처럼 영웅들이 등장하여 고차원적인 액션을 소화해내는 영화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이를 동양의 관점에서 재해석 한다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장르의 액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아쉬운 게 바로 류승완 감독이 만들었던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다. 이 영화에서 류승완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기존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액션을 선보인 바 있는데, 확실히 다듬어지지 않은 CG와 스토리와 액션이 따로 노는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익숙함’보다는 ‘낯설음’이 더 먼저 느껴졌다. (그리고 액션의 진화 순서상 CG를 이용한 판타지 액션은 <베를린>이후에 선보이는 게 더 자연스럽다.)

 

국내 판타지소설계의 대부격이라 할 수 있는 이우혁 작가의 여러 작품 가운데, ‘한국형 판타지’라 칭할 수 있는 작품은 단연 <왜란종결자>다. 보통 판타지소설의 세계관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거나 아니면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를 원형으로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우혁 작가는 <왜란종결자>를 통해 저승사자와 호랑이 등을 중요 등장인물로 내세웠고, 우리나라 토속신앙을 판타지와 버무리는 색다른 시도를 펼쳤다. 시대적 배경 역시 임진왜란이 있었던 한반도의 조선시대다.

 

비록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은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폭망’을 겪었지만, 기술력과 연출력이 현저하게 발달된 지금에서는 <왜란종결자>를 영화화 하더라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액션을 기반으로 한 제대로 된 판타지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 영화의 연출은 누가 뭐래도 류승완 감독이 제격일 것이란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피 튀기는 액션. <베를린> 이후 류승완 감독의 시선이 어디를 향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만약 기회가 된다면 그가 만드는 영화 <왜란종결자>를 꼭 보고 싶다.

 

“류승완 감독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싸우는 액션도 가능하죠?”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영화 제작사 측에 있습니다.>

공감하셨다면 구독과 추천을 눌러주세요^^ 글쓴이에게 커다란 힘이 됩니다.^^

아래 손가락 버튼을 꾸욱~^^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가운데에는 우리의 의지나 선택과는 무관한게 많다. 예를 들면 내가 태어난 나라와 지역, 부모의 경제적 지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인생은 때로 선택이 아닌 운명에 비유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이 여기에 추가될 수 있겠다.

 


결국 지역차별과 경제적지위의 세습, 그리고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더 가까운 문제인데, 이중 사람들은 유독 남북분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역차별과 경제적지위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가능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방은 식민지다” 혹은 “우리는 모두 노동자”라는 말보다는 “쟤 빨갱이야”라는 말에 우리사회의 흥분지수는 요동친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왜 우리는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우리 인생의 다른 ‘주어진 것’들처럼 극복 가능한 문제로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그 궁금증은 결국 영화 <코리아>의 선택으로 이어졌다.

 

 

 

 

 


 

1991년 지바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 탁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그들의 선택이 아닌 주어진 현실, ‘남북단일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극복했을까.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 질문은 여전히 머릿속에 ‘물음표’로 남아있지만, 몇가지의 ‘느낌표’는 발견한 거 같다. 영화로 들어가보자.

 


적이잖아? 그런데...이제와 믿으라고?”

 


 

남북단일구성팀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만년 대표팀 코치였던 이코치(박철민)가 남한 대표팀 감독으로 승격된 후 그 기쁨을 누릴새도 없이 다시 단일팀 코치로 내려가야 했을 만큼 아무런 예고없이, 갑작스러웠다.

 


적이잖아! 60년동안 적이다, 빨갱이다, 절대 믿지 말라 세뇌시킨게 누군데! 그런데, 이제와서 믿으라고?!”

 


<더킹투하츠> 이재하(이승기) 대사처럼 선수들에게 남북단일팀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적이라고 세뇌시킬때는 언제고, 이제와 정치적인 이유로 힘을 합쳐 싸우라니. 마음만 먹는다고 용서되고, 화해하고, 힘을 합칠 수 있다면 그렇게 기나긴 시간동안 분단을 해오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남북 선수들에게 혼란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서로를 팀이 아닌 경쟁자로 의식하는 것은 동물적인 ‘생존본능’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다시 적이 되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적은 언제라도 이겨둬야하는게 그동안 배워온 것이니까.

 

 

 

 

 

 


실제로 영화와 관련하여 현정화 감독은 당시 남북단일팀이 꾸려지고 합숙 훈련을 할 때에도 선수들은 서로가 더 잘해야 겠다는 경쟁의식밖에 없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차가웠다고 한다.

 


영화는 그렇게 남북 선수들이 처음 만나 신경전을 벌이고 서로 갈등하는 모습에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그 갈등 구조가 조금 더 세밀하게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화해와 극복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영화 내에서 그려진 갈등 정도가 딱 적당했다는 생각도 든다.

 


남북 화해의 실마리는 로맨스와 웃음?

 


 

영화를 보기 전에는 현정화와 리분희의 자존심 대결, 혹은 남과 북의 에이스가 벌이는 신경전이 꽤나 심각하게 그려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화는 현정화와 리분희에게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남과 북 선수들의 갈등과 화해, 그리거 피할 수 없는 이별로 이어지는 큰 흐름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최연정(최윤영)과 최경섭(이종석)이다. 영화 내 유일의 로맨스를 담당한 이들은 적극적인 남한 여성과 수줍음 많은 북한 남성이라는 설정을 통해 2시간 내내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들의 로맨스는 그 과정상에서 유머를 자아내는데는 성공하지만, 애틋함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왜냐면 우리는 아직 남과북의 러브라인에 공감할만한 ‘기억’을 갖고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더킹투하츠>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재하와 김항아의 이념을 초월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과 북이 만들어낸 애틋함은 이산가족의 상봉정도다. 수십년만에 만난 가족이 전해주는 감동에는 교감해도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남과 북의 연인 혹은 사랑은 피부로 와닿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독은 최연정과 최경섭을 현정화와 리분희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영화의 전면에 배치, 극의 흐름을 이끌어 나간다. 거기에는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남과북의 로맨스가 현실이 될 때, 아마도 정치적 이유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북교류 혹은 화해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감독의 질문이 숨어 있는 듯 싶다.

 


중국이라는 더 큰 적을 물리치기 위해 “화이팅”?


 

의외로 쉽게, 로맨스와 웃음이 곁들여지면서 남북 선수들은 갈등을 넘어 화합의 길로 넘어간다. 이쯤에서 영화는 이제 탁구에 있어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중국을 남북 공통의 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진부한감이 있지만 공통의 적이 생겨야 연합이든 뭐든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영화는 ‘악당’으로서의 중국을 잘 그려낸다. 이겼을 때의 통쾌함도 통쾌함이지만,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때가 아니다’는 감정을 적절히 자극한다.

 

 

 

 

 

 


그렇게 우승을 위해, 중국을 이기기 위해, 여자 탁구 사상 최강의 복식조 현정화 리분희 팀이 꾸려지고, 영화는 ‘우리 민족이 힘을 합치면 강대국과도 맞설수 있다’라는 식의 해묵은 통일의 당위성을 전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는 또 한번 롤러코스터를 탄다. 영화에서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는 감독의 의도대로다. 영화는 현정화, 리분희에게서 남과 북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탁구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두 주연 여배우의 공이 크다.

 


결승 마지막 복식경기에서 하지원과 배두나 보여준 드라이브 랠리와 스매시는 풀샷으로 잡은 화면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스포츠영화로서의 ‘리얼리티’에 힘을 불어 넣는다. 네트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공의 궤적과 탁구대의 끝에서 마찰음과 함께 솟아오르는 스피디함도 ‘합격점’이다.

 

 

 

 

 


영화 말미 중국이라는 더 큰 적을 물리치기 위해 시작된 ‘화이팅’이라는 외침은 결국 그동안 이야기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했던 최고의 라이벌이 서로의 행복한 앞날을 기원하는 응원의 메시지로 바뀌어져 있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이념적인 구호 넘어 살과 살을 맞대고 경기를 펼쳐온 ‘너와 내’가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필자가 찾은 '느낌표'하나. 1991년 탁구 세계 선수권 대회도 끝났고, <코리아>의 마지막 경기도 끝났지만, 여전히 조그마한 탁구대 위에서 랠리를 이어가는 남과 북의 탁구는 끝이날줄 모른다. 최근들어 서로에게 강력한 스매시만 날려대는 모습도 보인다.

 

 

차라리 기왕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임, 중간에 물한잔 마시는 건 어떨까. 어떻게 살아왔는지, 탁구는 왜 배우게 됐는지 얘기 좀 나누면서 말이다. 어차피 우리가 시작한 게임도 아닌데, '타임'좀 외친다고 큰일날까? 

 

 

 

보너스 기사- 인물로 본 <코리아>

 


배두나: 영화 내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 배두나 캐스팅은 제작진에게 있어 ‘신의 한수’로 평가하고 싶다. 적당히 시크한듯 내뱉는 북한 사투리도 잘 어울린다. 하지원에게 언니 소리를 들으며 그정도의 탁구실력을 뽐낼수 있는 여배우가 또 있을까? 어쨌든 ‘베스트 초이스’다.

 


하지원: 이름은 현정화인데, 현정화는 보이지 않고 하지원만 보인다. 조금 더 헤어스타일을 촌스럽게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1991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속에 녹아들지 못했다. 특히 김항아의 북한사투리가 자꾸 떠올라 몰입에 방해가 된 것은 누굴 탓해야 할는지...

 


 

최윤영, 이종석: 영화 내 유일한 로맨스 커플. 이들 덕에 영화가 심심치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남남북여가 아니라 남여북남이라 더욱 좋았다.

 


 

박철민: 역시 재미있다. 비록 기존 박철민이 담당했던 캐릭터와 차별화된 점이 없지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잘 소화한듯. 하지만 건축학개론의 ‘납득이’에 비한다면 존재감이 떨어진다. 당분간 ‘납득이’를 넘어서는 코믹 캐릭터를 만나기는 힘들 듯.

 


김응수: 역시 그가 출연하면 흥행한다는 공식이 성립하는 듯. 모든걸 내려놓는 아기 표정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악역이 아닌 그의 따뜻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 만족.


 

 

 

 

구독과 추천을 눌러주시면 글쓴이에게 커다란 힘이 됩니다...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아래 손가락 버튼을눌러주시면 됩니다... 제 글을 구독하시면 새 글을 편안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정면승부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에 묵직한 ‘돌직구’를 꽂아 넣은 셈이다. 그것도 최고 구속으로. 마운드에 선 에이스는 이게 자신의 ‘승부구’라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어서 빨리 타석에 들어서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연극 <아버지>의 제목 세 글자를 보고 느낀 첫 번째 감정이었다.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희생. 그리고 감동, 눈물 등…. <아버지>의 주제를 예상하는 것은 투아웃 풀카운트에서 1루 주자가 무조건 뛰고 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으며, 그래서 별다른 기대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 역에 배우 이순재 선생님이 나설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번쯤 그 ‘돌직구’를 타석에서 맛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필이면 또 연극을 보기로 한 4월 21일은 비가 내렸다. 동숭아트센터 동숭홀로 향하며 ‘아버지’와 참 잘 어울리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공연 팜플렛을 보니, <아버지>는 1940년대 미국 대공황기 상황을 그려낸 아서 밀러의 작품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을 원작으로 하며, 연출가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의 손을 거쳐 한국적 사회상을 담은 작품으로 재해석되었다고 한다.

 

 

문득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아버지>라는 강속구의 구질과 정체도 모른 채 삼진을 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불 꺼진 무대 위로 냉장고와 싱크대 등 주방의 모습이 보였고, 그 옆으로 침대, 그 위로 이층 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집’…. 이라고 느낀 순간 무대에 불이 켜졌고, <아버지>라는 ‘돌직구’가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던진 직구, ‘계약직’과 ‘정리해고’

 

 

평생을 외판원(방문판매원)으로 근무해온 장재민(이순재 분)은 오늘도 수백km를 달려 출장을 다녀오고, 직장인 대부분의 하루가 그러하듯, 한 잔 술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평범한 가정집 치고는 가족 분위기가 그다지 화목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갈등의 요소가 딸이 아닌 아들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실망하려는 찰나, 첫 번째 직구가 날아 들어왔다.

 

 

“기껏해야 난 계약직인데 뭘…. 두고봐, 꼭 정규직 될거니까!”

 

 

백화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딸의 대사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직업을 설정하는데 있어서도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계약직. 세 글자로 충분했다. 정규직을 꿈꾸는 모습도 영락없는 ‘88만원 세대’,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미취업자의 소원이 “올해는 꼭 취업했으면….” 이라면, 취업자의 소원은 “올해는 꼭 정규직이 되었으면….”이라는 2012년 대한민국 현실이 <아버지> 속에서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두 번째 직구는 외판원 장재민의 정리해고다. 30년을 꼬박 전국으로 돌며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했건만, 회사는 그에게 책상하나 내어주지 않는다. 여전히 아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딸은 계약직 근로자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는 상황. 돌아가는 시계 바늘을 거꾸로 부여잡는 ‘슈퍼맨’이 되어도 모자를 판에 해고라니. 비극을 향한 전주곡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멸치처럼 국물만 내고 사라진 <아버지>, 고독한 에이스의 뒷모습 

 

 

자식, 특히 아들이 잘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된 정서다. 하지만 거기에는 과잉기대가 섞이기 마련이고, 심지어 균형감각마저 잃게 만든다. 장재민은 자신의 형이 말레이시아에서 진주조개 체취로 성공한 것처럼, 아들 또한 머지않아 성공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푸른 바다”로 과감히 뛰어들어야 하는데, ‘돈’이라는 벽 앞에 부딪히고 만다.

 

 

보험금을 가족에게 남기고 자살한 가장의 이야기. 이제는 신문 사회면과 인터넷 뉴스 한 귀퉁이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사례가 되어버렸지만, 그 서사 구조를 뜯어보면 정말 슬프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세 번째 직구는 그렇게 날아들었다. 새 출발을 다짐하는 아들의 사업자금을 위해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새벽이슬처럼 사라졌다.

 

 

“끼이익~~~~~~~~~~ 쿵, 쾅쾅쾅~”

 

 

교통사고의 굉음만이 무대 밖으로 퍼져 나갔다. 유서대신 시 한편만이 ‘아버지’의 옷 속에서 나왔다. 마종기 시인의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라는 시다. 아버지의 존재를 국물만 내고 버려지는 멸치에 빗댔다. 탁월한 비유다.

 

 

삼구삼진. 주변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형용사도 부사도 동사도 필요 없었다. 오늘도 가족을 위해 세상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마운드를 지키는 에이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숭고했다. 이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아버지’, 명사 하나로 충분했다.

 

 

구독과 추천을 눌러주시면 글쓴이에게 커다란 힘이 됩니다...추천은 로그인 없이도 아래 손가락 버튼을눌러주시면 됩니다... 제 글을 구독하시면 새 글을 편안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블로그 이미지

이카루스 이카루스83

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