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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김제동
출판 : 위즈덤경향 201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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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KBS 스타 골든벨 하차 이후 우리 사회에서 김제동은 ‘소셜테이너’와 이음동의어로 존재해왔다. 어느 순간부터 김제동은 예능프로그램이 아닌 신문의 사회면과 9시 뉴스에 더 많이 출연했고, 한때 유재석과 강호동과 어깨를 나란히 할 MC로 촉망받던 그는 가장 사회참여적인 연예인, 정치적인 발언을 제일 많이 쏟아내는 연예인, 정권에서 가장 미움 받는 연예인 등 원치 않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변하기 시작했다. 어른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전 세대에게 폭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던 방송인 김제동은 ‘안풀리는 연예인’의 상징이 되어갔고, 사람들은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웃자고 던진 농담 한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일부에서는 그에게 투사의 이미지를 덧씌우기 시작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좌파 연예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를 몰아세웠다. 연예인이라는 것이 참 피곤한 직업이겠지만, 김제동의 경우엔 그 피로도가 상당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민간인 사찰이 터졌다. 김제동은 또 다시 중심에 섰다.

 

 

따뜻한 사람과의 어깨동무를 통해 ‘힐링’ 받은 김제동

 

 

연예인 사찰의 한복판에 놓인 김제동에게 <힐링캠프>에 출연한 김정운 교수는 "억압된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고, 그 결과 김제동은 퇴출과 사찰이라는 피해자 이미지에 ‘억압의 이미지’까지 새로 얻었다. 김제동에게 ‘힐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때를 같이하여 김제동의 인터뷰집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의 두번째 이야기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가 출간됐다. 1권과 마찬가지로 그가 경향신문을 통해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는 20만부 이상이 팔렸던 1권보다 만난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졌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서해성 한신대 교수와의 대담에서는 '먹물 논객'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사회 비평을 선보였으며,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가는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는 사회와 시스템의 오류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문재인 이사장, ‘나꼼수’ 김어준, 공지영 작가를 비롯하여 손예진과 이효리, 윤도현, 하정우, 조수미, 조용필 등과 나누는 김제동의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 속에는 퇴출도 사찰도 그리고 억압도 없었다. 결국 김제동에게는 ‘힐링’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따뜻한 사람들과의 어깨동무를 통하여 치유 받았다.

 

 

진짜 ‘힐링’이 필요한 건 누굴까?

 

 

그렇다면 ‘억압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진짜 ‘힐링’이 필요한 건 누구일까?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말미에 있는 김제동의 심층 인터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야, 너 돈 많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나서는 이유가 뭐냐고요. 제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치열하게 한 6개월 정도 고민했습니다. 서민․약자 팔아서 강자로서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 아니냐. 내가 이중적인 것은 아닐까 하고요. 결론 내렸죠. 그래 뭐. 나중에 작은 집으로 옮기는 것도 좋지만 여기 살면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한테 돈 준 사람들, 나한테 이런 집에 살게 해준 사람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진짜 갚아나가는 길이란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에요…”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中

 

6개월 간 치열하게 고민하여 내린 자신만의 결론이란다. 비록 자신의 행동이 이중적인 모습으로 비추어 지거나 오해를 사더라도 자신에게 사랑을 준 사람들의 문제를 외면하고 싶지 않아서 택한 길이라고 한다. 이는 ‘웃기는 MC’도 ‘좌파 연예인’도 ‘소셜테이너’도 아닌 자연인 김제동의 확고한 신념이다. 자기가 믿는 가치를 위하여 사는 사람을 대체 누가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제는 김제동을 ‘힐링’해야 한다고 혹은 김제동이 예전만큼 웃기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답할 차례다. 자기가 믿는 가치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얼마만큼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말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 ‘힐링’이 필요한 사람은 “공부할 시간이 없고 SNS가 짜증나서 투표를 안했다”는 김장훈을 비롯하여 총선 투표율 54.3%를 만드는데 방조한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학생을 자살로 내몰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침묵하는 우리 모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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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주기자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주진우
출판 : 푸른숲 201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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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는 모든 기자가 가지고 있는 (금지된) 선이나 성역이 없는 기자다. 한국에도 이런 기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김어준 총수의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출연 이후 주진우 기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기자가 됐다. 사람들은 주진우 기자의 강한 정보력과 취재력에 놀라고 그의 굽히지 않는 소신에 열광한다. 한국에도 이런 기자가 있다는 사실에 대중은 자부심마저 느낀다. 시사저널 파업사태와 시사in 창간 과정 속에서 그가 터트린 특종들도 때 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수줍게 정통시사주간지를 읊조리는 그는 이제 대한민국 기자의 ‘기준’이 돼가고 있다.

 

 

그의 인기에 힘입어 책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1주일 만에 10만부가 나갔다. 보수언론의 ‘나꼼수 죽이기’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와중에도 주진우 기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칠 줄 모른다. 오히려 불타오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권력과 부패에 관한 기자 주진우의 심층추적 취재기'를 부제로 달고 있는 <주기자-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이하 주기자)>는 주진우 기자의 서른아홉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물론 책을 구성하는 주요 내용은 그의 기사와 취재기지만 그보다는 간간히 엿볼 수 있는 주진우 기자의 인생스토리가 오히려 더 재미있다. 왜 기자가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취재를 하고 또 기사를 쓰는지 그는 ‘부끄럽게’ 밝힌다. 기사에 진심을 부여하는 그의 고백 덕에 정치·시사·사회를 넘나드는 주제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읽힌다.

 

 

 

 

 

권력을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는 기자

 

 

우리사회에서 ‘권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자본(삼성), 교회, 언론, 검찰….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국민이 힘을 부여한 정치권력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지난 몇 십년간 ‘성역’과 ‘금기’의 다른 이름으로 존재해왔다. 아무리 독한 기자라도 이들을 까기는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돌연 삼성과 종교를 ‘블루오션’, ‘보물창고’라 칭하는 기자가 나타났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기에 건드릴게 많다는 창의적 발상. 삼성이 추구하는 창의적인재가 바로 주진우 기자다.

 

 

그런데 권력은 주진우 기자를 못마땅해 한다. 그가 쓴 기사마다 소송이 걸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은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기자가 되었지만, 꼼꼼한 취재 덕에 소송에 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주기자>를 보면 삼성 측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즉석에서 거절했다. 그 이유가 재밌다.

 

“돈과 관련해서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거부해야 ‘진짜 멋있다’는 생각을 고등학교 때부터 해오고 있었다….”

 

그는 그런 기자다.

 

 

쪽팔리게 살고 싶지 않다는 기자 

 

 

사람들은 그를 ‘특종기자’라고 부르고, 어떻게 경찰과 다른 언론에서는 알지 못하는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때로는 탐정보다 더 정확하게 사건의 맥을 짚어내고, 또 때로는 경찰보다 더 진짜 범인에 근접할 수 있는 무엇일까.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빨대’들과 취재원들 덕분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에 답이 있다.

 

 

내 월급은 기사 써서 받는 돈 20퍼센트,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하고 받는 돈 30퍼센트, 나머지 50퍼센트는 약자 얘기 들어주는 것으로 받는 대가다…. 「주기자 본문 中」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에서 주진우 기자 특유의 ‘디테일’이 묻어 나오는 것이다. 故 최진실 씨와의 인연, 전주 집단 성폭행 사건 등은 바로 “우리는 모두 약자다”라는 그의 신념아래에서 나온 기사들이다. 특히 전주 집단 성폭행 사건의 경우는 죄를 짓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가해 학생들이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주저 없이 이 기사를 가장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기사로 꼽았다.

 

 

주진우 기자에게 기사는 그저 수단일 뿐이다. 지금보다 사회가 나아지는데 필요한…. 그는 자신이 세상이나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벽돌 두 장의 역할만 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딱 벽돌 두장.

 

 

그래서 그는 쫄지 않는다. 분명히 깨지고, 뜨거운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웃으면서 가겠다는 의지만큼은 변함이 없다. 영원히 철들지 않고 소년으로 살다 소년으로 가겠다는 주진우 기자는 오늘도 기도한다. 비굴하지 않은 가슴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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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국내도서>소설
저자 : 미야베 미유키 / 이영미역
출판 : 문학동네 20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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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라진 약혼녀. 영화 <화차>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지만, 이는 영화의 원작 미야베 미유키 소설 <화차>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1990년대초 일본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2010년대 대한민국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설정일 뿐.

 


미스터리 장르에서 ‘실종’이라는 설정은 꽤나 매력적인 소재이다. 실종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도중에 여러 인물과 사건이 얽히고, 결말에 이르러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과정은 미스터리의 정석과도 같다. 실종에 있어 장소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집 앞이든 대형마트든 고속도로 휴게소든 크게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감정의 극을 표현해낼 수 있는 장소를 골라 집어넣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약혼녀다. 성인여자의 갑작스런 실종은 약간의 에로티시즘마저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이름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실종된 여자의 시각보다는 여자의 실종을 수사해나가는 형사의 시각으로 이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고 싶었다. 영화보다 책을 선택한 이유다.

 





그녀는 왜 타인의 삶을 원했나?

 


휴직중인 형사 혼마는 어느날 먼 친척 청년으로부터 사라진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쉬는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혼마는 쇼코를 찾아 나선다. 그녀의 호적과 직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혼마는 쇼코가 과거 ‘개인파산’을 신청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당시 그녀를 도왔던 변호사를 만난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척 청년이 결혼을 약속했던 쇼코는 사실 쇼코가 아니었다. 혼마는 수사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쇼코라는 인물에 의문점을 가지고 시작했고, 쇼코의 개인파산을 도왔던 변호사와 자신이 서로 다른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친척 청년이 찾아 달라고 부탁했던 세키네 쇼코는 사실 진짜 약혼녀의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사정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청년의 약혼녀는 어떤 시점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히 세키네 쇼코로 위장하여 살아왔던 것.

 


‘왜 그녀는 그토록 타인의 삶을 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제 실종 수사 사건은 단순한 ‘사람찾기’를 넘어 세키네 쇼코로 위장하여 살아온 또 다른 여인의 ‘삶’으로 초점이 옮겨간다.한 여성이 신용카드와 소비자 금융의 덫에 걸려 인생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경위는 이제 본격적인 미스터리로 이어지고, 작품의 주제의식 또한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신용불량’은 누구의 책임인가?

 

대개의 미스터리가 그렇듯, 한 가지 수수께끼가 풀리면 두 가지 난제가 주어진다. 혼마는 세키네 쇼코가 진짜 쇼코가 아니었음을 밝혀냈지만, 왜? 무엇 때문에? 라는 또 다른 의문과 마주한다. 실마리는 그녀가 사라진 시점에 있었다.

 


친척 청년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약혼녀는 세키네 쇼코가 과거 개인파산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뒤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이름을 빌려 또 다른 삶을 추구했던 그녀는 쇼코의 개인파산 과거를 모른채 쇼코의 모든 것을 도용한 것이다. 미스터리의 실마리도, 이야기의 중심축도 ‘신용불량’과 ‘개인파산’으로 이어진다.

 


‘신용불량’, 그리고 ‘개인파산’…. 작가는 상당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여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한 신용산업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주로 변호사와 혼마의 대화를 통해서다.

 


보통 사람은 빚을 갚지 못하고 신용불량으로 전락하거나 개인파산을 신청하게 되면 그 당사자를 비난한다. 특히 젊은 사람이 많은 빚을 떠안게 되면, 그 또는 그녀의 허영심이나 과소비를 문제로 지적한다. 물론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화차>속 변호사의 입을 빌려, 갚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빚을 내어준 금융회사가 문제이며 이를 제지하지 못하는 국가와 사회도 공동 책임이 있다고 역설한다. 이른바 ‘거품신용’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그(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혼마는 세키네 쇼코의 모든 것을 도용했던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알아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녀 역시 과거 빚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매우 힘든 삶의 여정을 겪어 왔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어떻게 그녀가 세키네 쇼코의 모든 것을 도용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책을 읽지 않았거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미스터리’로 남겨 놓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소설 속 일본의 상황과 지금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굳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

 


지난 2월 한국은행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은 912조 9000억원이라고 한다. 가계부채 총액은 가계 대출, 카드사와 할부금융사 외상판매를 합한 액수다. 가계부채 900조를 넘긴 것은 사상 처음이며, 이는 한 가구당 4560만원 가량의 빚을 지고 있는 꼴이다.

 


‘생계형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는 하루건너 한번 꼴로 지면과 방송을 장악하고, 가계부채가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분석도 몇 년째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혼마는 모든 미스터리를 해결하고 난 뒤, 어려운 사건을 풀었다는 뿌듯함보다는 자본주의의 이면에서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인생에 주목했다. 그녀를 잡겠다는 의지보다는 어서 빨리 그녀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2012을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까.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는 대학생, 빚에 떠밀려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젊은 여성, 그리고 대출금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따라 죽은 가장의 이야기까지. 세키네 쇼코는 또 다른 이름과 직업을 가지고 우리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판 <화차>는 나오지 않았다. 영화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에 크게 기대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혼마처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세키네 쇼코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끝으로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한다.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중략)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예요.” <화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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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양장)
국내도서>만화
저자 : 최규석
출판 : 사계절 20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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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교주 노홍철에게 띄우는 편지 part2.



안녕하세요 교주님.

 

우선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긍정적인 사고와 낙천적인 마음가짐으로 방송에 임하시는 교주님의 모습에 경외와 찬사를 보냅니다. 긍정교 믿음이 부족한 저는 시간이 없으면 잠을 줄이고 돈이 없으면 굶으라고 윽박지르는 세상에 쉽게 지치곤 하는데요. 그럴때는 늘 교주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은 내 책임이며, 저의 긍정에너지가 부족함을 반성합니다.

 


오늘 이렇게 두 번째 편지를 띄우는 까닭은 긍정교 교인으로서 우리 긍정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알려드릴까 해서입니다. 특히 우리 긍정교가 앞으로 더 발전하려면 교주님께서 꼭 알아야할 거 같아 무례를 무릅쓰고 펜을 들었습니다.

 


긍정교도인 사이에서 ‘불온서적’으로 널리 알려진 <긍정의 배신>에 대해서는 교주님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교주님, 놀라지 마십시오. 적은 내부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금서목록에 오를 정도의 불건전한 책이 출판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긍정교리를 부정하는 대부분의 책들은 두껍고 복잡해서 써먹어야 할 때 기억이 안나고, 결정적으로 잘 안팔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은 고통조차 웃으며 견디고, 우주의 긍정에너지가 자신에게 찾아오길 바라며 오늘도 ‘웃음’과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 덕에 행복해 합니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이야기. 불평불만 할 시간에 자기개발에 몰두하라는 이야기. 낙천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등. 우리 사회에는 긍정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스토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는 우리 긍정교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커다란 힘이 됩니다. 때문에 제 아무리 <긍정의 배신> 같은 불온서적이 인기를 끈다 해도, 막상 읽고 나면 기억에 남지 않아 우리 긍정교에는 별다른 위험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자책하면서 동기유발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대신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비함에 목소리를 높여라” 라는 식의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읽을 때 재미있고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지겠습니다. 물론 지금은 없는 이야기이니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긍정교리에 정면 도전하는 최규석의 도끼질

 


오늘 교주님께 편지를 띄운 이유는 바로 그, 단 하나 우려가 되는 ‘지금은 없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평소 긍정교리에 대해 짜증나고 분노했다는 만화가 최규석은 제가 우려했던 부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적장이지만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는 ‘이야기에는 이야기로 맞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최근 우화집 <지금은 없는 이야기(사계절)>를 세상에 내놓았는데요. 우선 작가의 말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 따위가 몇 개 되지도 않는 이야기로 수천 년 동안 유통되어 온 이야기들과 맞서려는 것이냐고 책망하지는 마시라. 나도 안된다는 것 알고 그럴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이야기들 중 몇 개만이라도 살아남아 다른 많은 우화들처럼 몇 개만이라도 살아남아 다른 많은 우화들처럼 작자 미상의 이야기로 세상에 떠돌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쓰이기를, 그리하여 오르지 못할 나무를 찍는 열 번의 도끼질 같은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 작가의 말 中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긍정교리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최규석의 도끼질을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제 편지를 읽는 교주님의 반응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저도 모르게 책 속에 완전 몰입되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제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최규석의 이야기는 흡입력이 뛰어났습니다. 특히 우화라는 형식은 매회 짧은 이야기가 남기는 여운과 결합하며 강렬한 폭발력을 빚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개와 돼지’라는 이야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신이 만든 돼지는 늘 개에게 뜯기고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개를 없애 달라는 돼지의 요청을 신은 거부하고, 이에 돼지는 개에게 당하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을 달라고 합니다. 신은 돼지에게 ‘웃음’과 ‘망각’을 선물하고, 돼지는 웃고 잊음으로써 개처럼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결말입니다. 무언가 부족한거 같다는 느낌이 들 때 돼지의 상처난 몸과 얼굴 그림이 페이지 끝을 장식합니다. 허탈함 뒤에 ‘쓴웃음’이 밀려옵니다.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뼈아픈 진실

 

교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의 긍정교는 실패와 고통 등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가혹함이 긍정 교리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단지 마음의 자세로 사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그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불행한 소년’, ‘돼지의 왕’, ‘냄비 속의 개구리’ 등의 이야기는 이런 긍정교의 불합리성에 대한 고발과도 같습니다. 지금껏 현실적 사회모순들에 대해 일어나야할 저항이나 여기에 들어가야 할 사회적 비용을, 주관적 행복이나 인내 같은 미담 윤리로 억제하고 개인에게 전가시킨 우리 사회를 동물과 식물 등을 통해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가위바위보’, ‘팔없는 원숭이’와 같은 이야기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결과를 단지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려서, 개인이 조직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편가르기와 진영논리, 성장지상주의 등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뼈아픈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더군요. 아마도 예전의 저였다면, 책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불편해 중간에 포기했겠지만, <긍정의 배신>을 통해 기른 내성 덕에 한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교주님,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 깊이와 강도, 표현방식의 실험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자책하면서 동기유발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대신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비함에 목소리를 높이라”는 주장만은 명확해 보입니다. 문제는 긍정교의 교리 자체를 흔드는 이 주장이 꽤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주님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해결책이 있습니다. 바로 그동안 모든 상황에 있어 마음가짐에서 시작했던 우리의 ‘출발선’을 사실로 옮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긍정이냐 비관이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외면하느냐 마주보느냐의 진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불안하시다고요? 이런,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하하~ 웃고 잊어버리는 거에요. 어차피 지금은 없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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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 전미영역
출판 : 부키 201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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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주님.


저는 평소 교주님을 흠모해온 긍정교인 중 한사람으로서 평소에도 우리 긍정교를 널리 알리고, 교주님의 긍정복음을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긍정의 배>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이 <긍정의 배신>이 올해 역병처럼 퍼져 교보문고에서 선정한 2011년 올해의 책 10권 가운데 하나로 뽑혔다고 합니다.


! 이럴수가. 교주님 저는 우리 긍정교의 교리를 전면 부정하는 ‘불온서적’을 당장이라도 금서목록으로 지정하여 우리 교인들의 긍정적인 사고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적을 먼저 알아야겠지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잖아요.


그래서 대체 이 책이 무슨 해괴한 괴담을 유포하여 우리를 배신하려 하는지 알아보고자 공사다망한 교주님을 대신하여 제가 먼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교주님의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지은이에 대한 설명부터 드리지 않을 수 없겠네요. <긍정의 배신>이라는 불온서적을 최초로 유포한 사람은 바로 바버라 에런라이크라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아주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죠. 암환자들이 사이에 널리퍼진 긍정적 태도를 못마땅히 여기고, 심지어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동기부여 차원으로 진행하는 동기유발이나 자기계발과 같은 강연 등도 비꼬아 보더라고요. 심지어 우리 긍정교의 교리라고 할 수 있는 ‘긍정주의’가 세계의 위기를 초래하고 우리를 불행에 빠트리고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더라고요. 악질중에 악질입니다.


그런데 교주님. 제 믿음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 주장한 내용이 아주 다 쓸모없는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물론 제가 이런 불온서적 따위의 글귀에 혹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최근 우리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니 <긍정의 배신>에 적힌 내용 중에도 약간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그런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죠. 역병처럼 번지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것 같더라고요.


긍정이데올리가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하다



교주님도 혹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얼마전 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습니다. 25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살던 이 학생은 만화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왔는데요. 진로에 대한 고민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학생 뿐만이 아닙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경찰청에 의뢰해 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매해 평균 대학생 23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들 모두 생각이 부정적이어서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취업이 어려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들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고, 또 잘될거라는 희망속에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등록금과 실업률은 오르는 상황에서 절망했을 거라 생각해요.


<긍정의 배신>은 이들이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자책하면서 동기유발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대신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비함에 목소리를 높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주더라고요. 물론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누가 사회와 국가를 향해 그렇게 외칠 수 있겠어요.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이나 안받으면 다행이죠.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긍정 이데올로기가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는 작가의 말도 일리는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죄송합니다. 교주님. 제가 이렇게 믿음이 약하네요.)


낙천성이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는 거잖아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가혹함이 긍정의 이면 한편에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솔직히 저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긍정은 무조건 좋은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렇다고 교주님과 우리 긍정교를 배신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확신할 수 있는 하나는 마음가짐만으로 사실을 외면할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긍정이 진짜 긍정이 되기 위해서는...



교주님, 감히 제가 한말씀 드립니다. 저는 우리의 긍정이 진짜 긍정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의 고통과 위험을 제거하려는 작은 실천이 뒤따라야하고, 그것을 막고있는 장애물을 치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교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너무 높은 집값에 걱정합니다. 다른 이들이 걱정하고 비판할때 우리 교인들은 언젠가는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우리집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마음먹습니다. 지금껏 그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집값이 내려가지 않는 이유와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가짐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실이니까요.


이렇게 편지를 쓰고보니 저 역시 악질중의 악질이 된 것 같습니다. 교주님께서 이 책을 읽으실거 같지는 않지만, 혹시몰라 파이낸셜타임스의 추천평 일부를 P.S로 남기겠습니다.


P.S: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긍정이냐 아니면 비관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에서 출발하느냐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느냐가 핵심임을 보여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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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김어준
출판 : 푸른숲 200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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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이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는 늘 삶의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채 살아간다.



그래서 각종 고민상담 게시판이나 인생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문의를 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되곤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런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무언인지, 자신은 무엇에 희열을 느끼고 무엇에 분노 하는지 등 정작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남한테 해대는 것이다. 자기 삶에 있어 주인이되지 못하고 ‘이방인’이 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힘이 애초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남들은 어떻게 살고 남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물어보는 이들에게 김어준은 이렇게 외친다.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해지자는 수작 아니더냐. 그러니 나 자신에 대해 먼저 공부하자. 다들 건투를 빈다, 졸라.”




책임못질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거 무례이자 반칙이라고 생각하는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메뉴얼, <건투를 빈다>는 약 80건의 고민에 대한 상담일지다. 책에는 가족과 친구, 직장, 그리고 연인사이에서 겪는 다양한 고민이 등장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자기 삶에 주인이 되지 못한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학의 통찰로 짚어주는 김어준의 답변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가 새겨들음직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선택의 순간에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꿈과 현실, 어느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꿈과 현실에서 방황하는, 그러면서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며 고민하는 사람들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김어준의 답은 “어느것도 포기할 수 없다 하지 말고,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를 따져라”다.




특히 꿈이란 말 대신 목표라고 표현하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꿈은 때로 자신의 무능과 태만과 불안에 자체 발부하는 면죄부로서 작동한다. 목표는 현실적일 때 성취된다. 그러자면 일정이 매우 구체적며 적극적이야 한다. 꿈을 이야기하기 전에 본인의 목표는 얼마나 구체적이며, 또 그것을 위해 당신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은 어디까지 인가? 어느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 어느것도 가질 수 없다. 어느것도 포기할 수 없다가 아니라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꿈은 목표이지 핑계일 수 없다.



 

2. 기대가 큰 부모님께 솔직해지기 힘들어요


 

굳이 부모가 아니더라도, 가끔 우리는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정작 본인에게 솔직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주 본다. 자기 삶에 주체로서 존재하는 ‘나’보다 사회적 존재로서 존재하는 ‘친구’, ‘아들’, ‘선배’ 뭐 이런 종류의 ‘나’를 앞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 김어준은 한마디로 정리한다.



“내 인생, 남의 기대 위해 쓰는 거 아니다. 부모라도”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당신 삶의 기준은 부모의 기대가 아니라 당신 욕망이어야 한다. 부모에 대한 예의로, 기왕이면 그들 기대치를 반영하려고 노력할 순 있다. 하지만 당신, 부모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거 아니다. 자기 인생, 남의 기대를 위해 쓰는 거 아니라고. 그것이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3. 된장녀 같은 여친, 고칠 수 있을까요?


 

연애에 있어 사람들은 누구나 정산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일종의 ‘give & take’.


내가 해준만큼 내가 준 사람만큼 상대방이 해주지 않을때, 사람들은 손해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애할때 매번 돈을 본인이 내고, 선물도 나는 비싼거 사주는데 상대방은 직접 만든 선물을 주더라. 그래서 날이 갈수록 손새 보고 있다는 느낌이든다.” 라고 고민을 남긴 남자역시 마찬가지다.



연애에서 거래란 물질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품성과 지성, 그리고 감설까지 포괄해 서로가 주고받는 것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처럼 경제적 정산만을 관계에 있어 기준으로 삼으면, ‘내가 손해보는 느낌’과 같은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연애에 있어 균형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아니다.


이에 대해 김어준의 답변은 이렇다.



연애할땐, 되돌려 받을 생각 말고 그냥 주고, 줬단 사실 자체를 잊으시라. 그리고 상대를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오로지 당신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기쁨 그리고 상대가 당신에게 주는 환희에 집중하시라. 그렇게 최선을 다해 그녀와 할 수 있는 연애에, 할 수 있을 때, 집중하시라. 그게 연애의 정수다.


그러다 그녀의 허물만 자꾸 눈에 들어오고 손해보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거든, 그녀를 고칠 생각말고, 헤어지시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든가, 감당할 수 없거든 포기하든가.




끝으로, 책 전반에 걸쳐 김어준이 강조하는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 삶에 대한 장악력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며 마무리하겠다.



우리는 누구나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많게는 하루에도 수십번의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은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만의 기준이 있는가? 선택은 그 자체가 삶이다. 때문에 선택의 기준은 자기 삶의 기준에 다름 아니다.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였을때,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을 길러라. 그래야 자신이 어떻게 생격먹은 인간인지를 적나라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먹은 자신의 바닥도 보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인가 알아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행복을 기점 삼아 내 삶의 기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삶의 문제들에 맞서 나가겠다는 결의, 자신에게 닥치는 세상만사를 주변의 기준이나 눈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관대로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 그런게 바로 삶에 대한 장악력이다. 그게 있는자, 졸라, 섹시하다”  <건투를 빈다, 본문 中>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어차피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해지기 위한 수작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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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국내도서>인문
저자 : 김정운
출판 : 쌤앤파커스 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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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당신, 진짜로 나와 결혼한 걸 후회해?”

 

그러자, 남자가 대답한다.
“응..가끔....”


다시 여자가 말한다.
“난 만족하는데...”


여자의 말에 당황한 남자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쭈뼛거리는 사이, 다시금 여자의 한마디가 들려온다. 남자의 가슴을 아주 깔끔하고 깊숙하게 찌르는 한마디.


“아주 가끔...”

 


김정운 교수의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이렇게 ‘가끔’ 후회하는 남편과 ‘아주 가끔’ 만족하는 아내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부부관계가 항상 행복할 수 없는 이유, 나아가 우리의 일상이 재미없는 이유를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내는 이 책의 부제는 그래서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이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책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책의 저자 김정운 교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얼마 전 KBS 승승장구에 출연하여 특유의 입담을 자랑한 통통한 곱슬머리의 안경낀 교수를 떠올리시면 빠르시겠습니다.

 


김정운 교수는 승승장구에 출연하여 5가지 소통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는데요. 그가 소통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만져라, 정서를 공유하라, 입장을 바꿔보라, 의미를 부여해라(리추얼), 감탄하라” 등 이었습니다. 배꼽 빠지게 웃기면서도 단순한 농담 따먹기가 아닌 이유는 그가 제시한 방법이 모두 문화심리학이라는 탄탄한 이론을 배경으로 한 본인의 성찰 속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인데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그의 주장은 그래서 더 흥미롭습니다.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전임강사를 지냈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김정운 교수의 이력을 그의 식대포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정운’은 팔뚝 굵은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상에 감사하며, 아침마다 그날 가지고 나갈 만년필 고르기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거리의 망사스타킹을 보면 가슴이 뛰어 낚시가게 그물만 봐도 흥분하고, 자동차 운전석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목 놓아 따라 부르며 주책없이 울기를 좋아하는 사십 끝줄의 대한민국 남자다. 귀가 얇다 못해 바람만 불어도 귓바퀴가 귓구멍을 덮을 정도고, 한번 폭발하면 대로변에서 삿대질도 일삼는 욱하는 성격이지만, 한번 마음에 담아두면 며칠 밤 잠 못 자며 고민하는 소심남이기도 하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中

 


‘삶은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대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역시 재미있습니다. 보통 유머를 가르쳐 주는 책들은 전혀 유머스럽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지만, 재미있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 책은 이 책을 읽는 거 자체를 재미있게 해줍니다. 재미있게 책을 읽으니, 더욱 재밌게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지요. 아마도, 저자 스스로가 재미있게 살기 때문에 그 바이러스가 독자들에게도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공을 위해 달려왔고,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 왔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행복. 책이 겉으로 추구하는 독자는 위로받고 싶은 이 시대 ‘중년남성들’ 이지만,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데에서 이 책의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에게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 가슴, 마라톤, 폭탄주의 공통점은?

 


삶이 재미없는 이 시대 중년남성들이 유난히 집착하는 것이 3가지 있습니다. 네, 바로 여자의 큰 가슴과 마라톤, 그리고 폭탄주입니다.

 


그의 주장을 따르면, 인간이 가장 완벽한 소통을 경험하는 곳은 바로 어머니의 가슴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 어머니의 가슴에서 평온함을 느꼈던 남자들은 소통 부재의 불안과 재미없는 삶으로부터 오피하려는 퇴행적 현상이 나타나고, 그게 여자의 큰 가슴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이죠.

 


마라톤의 경우는 건강을 위해서 달리는 이들도 많으나, 더 큰 이유는 ‘존재의 확인’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입니다.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통해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통해 느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마라톤의 참가하여 완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뛰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와 닿습니다.

 


끝으로 한국의 중년 남성이 집착하는 폭탄주를 그는 집단 자폐증이라 부릅니다. 서로 정서를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려워, 빨리 취하려고 마시는 술자리는 결국 소통 부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하는데요. 샐러리맨도 마시고, 교수들도 마시고, 공무원들도 마시고, 정치인도 마시고, 기자도 마시고, 학생들도 마시는 걸 보니, 정말인지 대한민국은 ‘소통 실종 공화국’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왜 골프장으로 몰리는 것일까?

 


물론,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겠지만, 큰가슴과 마라톤, 그리고 폭탄주 외에 중년남성들이 목을 매는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골프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정운 교수 역시 가진자의 귀족적 취미라는 자책과 환경파괴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같은 ‘도덕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주말이면 어김없이 골프장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골프가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왜 재미있을까요? 책은 그 이유를 ‘스토리텔링’에서 찾습니다. 골프를 통해 바로 ‘내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요. 본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골프는 운동이 아니다. 이야기다. 한국남자들이 술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네 시간 이상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는 골프밖에 없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이렇게 길데 하지 못한다.
매번 비슷한 골프 이야기 같다. 하지만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끝없이 재생산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골프가 재미있는 것이다. 아니, 살면서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이토록 많이, 흥미진진하게 한 적이 있었던가? 무슨 일인들 이야기가 없겠냐마는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상실한 중년들에게 골프만큼 공통의 화제를 만들어주는 일은 없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中

 


“오빠”소리에 환장하는 남자들…“중요한건 감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누구보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김정운 교수는 삶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는 감탄하려 산다. 아닌가?”


 

산을 올라가서 내뱉는 “우와~!”도, 골프를 치며 외치는 “나이스샷~”도, 여자들의 수다 중에 “맞아 맞아”를 반복하는 까닭도 결국은 ‘감탄’이라는 것인데요. 김정운 교수는 삶의 가장 궁극적 경험이 우리에게 와 닿는 통로가 바로 감탄이라고 해석합니다.

 


어머니가 아기의 작은 행동과 변화 하나 하나에도 반응하며 “이야~”, “우와~”라는 말을 하는 것도 감탄으로 양육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 땅의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로 이 감탄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욕구 좌절이 되고, 이 욕구 좌절이 분노와 공격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입니다. ‘어디 한번 건들기만 해봐라’라는 표정으로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표정은 바로 이 감탄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라고 하는데요.

 


바로 이 아저씨들에게 감탄을 연발해주는 곳이 단 하나 있으니, 룸사롱입니다. 화려한 화장을 한 젊은 아가씨들은 “어머, 오빠!” “오빠는 왜 이리 멋있어?”하고 감탄을 연발하는데요. 이 싸구려 감탄에 환장한 사내들은 기꺼이 넥타이를 풀고, 지갑도 풀어 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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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요. 어렸을 적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은 선생님과 부모님의 칭찬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어렸을 적 들었던 이 칭찬도 결국은 ‘감탄’의 일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와~ 우리 아들”, “우리 딸이 최고야” 부모의 감탄에 아이들은 기뻐하고 행복을 느낍니다.

 


“우와, 자기야~” “우리 여친 쵝오”, 애인의 감탄이 이어져야 사랑도 지속됩니다.

 


“역시, 우리아빠~”, “엄마밖에 없어” 자식들의 감탄이 있기에 허리가 휘어도 부모들은 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보, 와~”, “당신, 이야~!” 부부관계가 좋아도 감탄은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감탄하려 사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 삶이 재미없으신가요? 당신은 언제 감탄을 하나요?

 


바다를 볼 때? 그럼 지금 바다로 떠나십시오.


영화를 볼 때? 그럼 지금 영화표를 예매하세요.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퇴근 후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내가 뽑은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그럼 투표를 하세요.

 


삶에는 분명 많은 감탄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감탄을 받을 때 우리는 행복이라는 감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 감탄은 TV속에도, 인터넷에도, 책 속에도 있으며, 촛불집회에도 희망버스에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언제 감탄을 느끼는지 스스로 알고, 그 감탄을 찾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감탄’이야 말로 삶이 재미없는 당신에게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가 주는 단 하나의 확실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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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컴퍼니
국내도서>소설
저자 : 하라 고이치(原 宏一) / 윤성원역
출판 : 북로드 201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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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말이나 글로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는가’에 따라 ‘명시지’와 ‘암묵지’로 나뉩니다. 명시지란 우리가 ‘정보’라는 형태로 흔히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인데요. 학교나 책, 인쇄매체 등을 통해 얻는 지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반면, ‘암묵지’는 그 형태가 불분명하며, 이른바 어머니의 '손맛'처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가 지식강국, 지식기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암묵지 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는데요. ‘암묵지’를 비밀로 여겨 자기 혼자 소중히 간직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른바 ‘노하우’로 일컬어지는 개인의 시행착오와 깨달음 등을 후세에 전달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그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사회 ‘암묵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대표적인 예를 꼽자면, 바로 정년퇴임을 하는 은퇴 고령자들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최근 고위공무원의 전관예우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었는데요. ‘전관예우’에 따른 비상식적, 비도덕적 특혜는 없어야 마땅하겠지만, 분명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다른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우리사회 ‘암묵지’ 활용 차원이라는 시각으로 봤을 때, 썩 좋은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죠.

 



하라 고이치 작가의 최근작, <극락 컴퍼니>는 바로 정년 은퇴자들의 암묵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게 노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일과 인생, 그리고 노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 정도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문제가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주제만은 아니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가벼운 터치와 유머는 부담없이 다음 장을 넘기도록 만들어주는데요. 그렇다면 본격적인 책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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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스고우치는 정년 퇴임 후 시립도서관에 가서 잡지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데요. 이 마저 지겨워질 시점에 자신과 같은 처지인 기리미네를 만나게 됩니다. 둘은 아침에 출근하고, 상사로부터 혼나고, 점심을 먹고, 거래처 사람을 만나고, 회의를 하고, 또 퇴근 후 술 한 잔 하는, 이른바 ‘회사 생활양식’을 서로 그리워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데요.

 



둘은 가상으로 회사를 만들고, 이른바 ‘회사 놀이’를 통해 다시금 직장생활의 활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회사놀이’는 다른 정년퇴직자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되고, 지사가 생기는 등 다른 도시로 들불처럼 번져나갑니다.

 



비록, 돈은 오가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움직이지만 실제 회사생활처럼 재무제표를 만들고 매출 계획을 짜고, 거래처를 만드는 등 이들은 ‘회사 놀이’를 ‘진짜 회사’처럼 진지하게 임합니다. 아마도, 정년이라는 허탈감에서 벗어나 활기차게 직장생활을 했던 자신들의 황금기를 그리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케팅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심리치료 효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언제나 돈이 꼬이고, 돈이 얽히게 되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기 마련이죠. 처음 순수한 의미로 시작했던 ‘회사 놀이’는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읽어보세요..)

 



작가는 이 ‘회사 놀이’를 통해 은퇴자들의 정년 후라는, ‘인생 2막’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는데요.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하게, ‘실버산업’이라고 해서 은퇴자들의 소비를 강요하거나, 그들의 지갑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고령자가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암묵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회사 놀이’는 수십년간 현장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은퇴자들이 모여 회사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그 어떤 회사보다 안정적이고 탄탄하게 운영됩니다. 비록, 어디까지나 가상이라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실물경제에 도입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겠으나, 시뮬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와 비슷한 직종에 근무했던 은퇴자들이 가상으로 모여 '회사놀이'를 하고, 그 회사 놀이에서 나온 결과물을 토대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새로운 사업에 따르는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은퇴자들의 경우 젊은 세대처럼 큰 돈이나 욕심을 위해 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 일이란 ‘자기만족’이라는 가치가 제일 우선인 셈입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처럼 비정상적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비록 적은 돈이지만 가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생업 현장에 나서는 고령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책의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부분인 만큼 논외로 하겠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 일하는 은퇴자들의 경험과 노하우, 즉 그들의 ‘암묵지’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이는 앞으로 다가올 초고령화 사회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안내잡이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암묵지’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회일수록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식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 그리고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은퇴자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품 속 주인공 스고우치와 그의 아들이 겪는 갈등과 화해 과정은 ‘세대갈등’으로 표현되는 우리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입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주제와는 상관없이 작품 말미에 미디어(언론)에 대한 작가의 의식이 녹아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디어는 늘 그렇듯 부정적으로 묘사되네요.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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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리뷰하는 블로그입니다. 영화, 책, TV, 그리고 우리의 인생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류가 창조 혹은 만들어낸 수많은 유․무형의 것들 가운데, 인간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두 가지를 꼽자면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이 두 가지가 인류역사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바지한 측면이 많다 하더라도 그 부작용에 대한 반론의 여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작가 황석영이 2001년 발표한 역사소설 <손님>은 인류의 ‘보편적 행복’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어떻게 폭력성을 가지게 되는지 그 과정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손님>은 1950년 10월, 한국전쟁 중 일어난 <신천군사건>을 소재로 남과 북이 서로에게 저질렀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고발함과 동시에, 이 땅에 들어온 손님(기독교, 사회주의)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에 끌려 달리는 우리들에게 내면적 성찰을 요구합니다.

 


소재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심지어 글의 구성마저도 평범하지 않은 <손님>은 사실 쉽게 읽어 내려가기에는 부담이 많이 따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기 힘든 알 수 없는 마력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아마도 무당굿의 12마당을 빌려와 12장으로 구성한 전개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각각의 인물들이 1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구성은 흡사 꼬인 실타래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날줄과 씨줄이 엮여서 한 폭의 베를 짜듯, 자연스럽게 결말을 향해 나아갑니다.

 


영화 <노트북>과 <If only>를 보신 분은 그 구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텐에요. ‘나’의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볼 경우, 주관적인 감정 묘사가 세밀해지지만 상대방의 감정과 상대방의 이야기를 모른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신 그 한계는 독자(청자)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요소가 됩니다. 때문에 다양한 인물들의 1인칭 시점이 계속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조금 더 풍성해지고, 어느덧 결말에 이르러서는 시점 전환과 함께 비밀이 밝혀집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경험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죠.
 

 



본격적인 책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손님>의 소재가 된 ‘신천군 사건’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지금까지도 남과 북에서는 ‘신천군 사건’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미군측의 양민 학살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남에서는 반공투쟁 사건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황석영 작가의 경우에는 ‘기독교 우파와 사회주의 좌파간의 대립과 대결이 폭력으로 악화된 사상대립에 따른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듯 보입니다.

 


참고로, 2002년 4월에 방영된 MBC〈이제는 말할 수 있다-망각의 전쟁편〉에 따르면, 이 사건은 ‘좌우 대립의 결과’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데요. 작품을 만든 조준묵 피디는 “당시 미군은 평양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붙어 신천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았다”며 “‘미군 주도 주장’을 확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를 죽이고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주체가 된 것은 기독교인과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인과 사회주의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책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 ‘손님’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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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신을 믿지 않는 사탄이요, 악마일 뿐이었고, 인민이기를 거부하며 외래 신을 떠받드는 ‘예수쟁이’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나와 함께 구원받아야 할 대상임에도, 함께 평등을 누려야 할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총이 주어진 순간 살육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힘이 주어지면 그 힘은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그 힘을 조금 더 의미있고 생산적인 일에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같은 의미에서 권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힘의 존속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힘에 도전하는 혹은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를 제거하는 일입이다. 복수를 잉태시키는 원인이지요. '우리'가 '적'이 되는 순간은 찰나였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작가는 ‘화해’와 ‘용서’의 길로 나서는 법을 제시합니다. 책 속의 주인공 요섭 목사는 죽음을 앞두고 고향에 찾아가 당시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데요. 이제는 혼령이 되어버린 당시 마을사람들과 마주하며(소설적 장치) 과거를 회상합니다. 또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 당시에는 듣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귀신(당시 죽었던 마을사람)을 한데 모아 푸닥거리하는 것은 곧 서로에게 총칼을 들었던 마을 사람간의 화해이자, 종교와 이념의 화합으로까지 해석 가능합니다.

 

특히, 요한의 형수가 말하는 대목이야 말로 두 손님(기독교, 사회주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생각해
보게끔 합니다.

 


내 평생을 생각해봤디. 모던 것이 다 사람덜 좋게 할라구 나왔넌데 어째 기렇게 서로 미워했을꼬 말이오. <손님> 中

 


종교든, 이념이든, 혹은 학문이든 예술이든 문화든…. 결국은 사람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나타난 것들 아니겠습니까. 사람에 대한 가치를 소홀히 한다면, ‘손님’에 의한 비극은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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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리뷰]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를 읽고….

 

 

여덟 살의 나이. 가구회사에 다니시던 아버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사장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 많은 돈을 수십 명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 아버지가 일하는 낮에는 일하지 않으니, 직원들이 모두 다 퇴근한 밤에 '무슨 일'을 해서 많은 돈을 버는게 아닐까?’

 


저는 아버지가 사장처럼 밤에 일을 해서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하는 일'이 결국 '기업 운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까지는 십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정치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하워드 진은 ‘미국 현대사의 양심’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오만한 제국>,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와 같은 그의 저서를 통해 알 수 있듯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실천적 지식인입니다.

 


하워드 진은 열일곱 무렵에 「공산당 선언」을 처음 읽었다고 하는데요. 만약, 제가 아버지 회사의 사장이 하는 일을 궁금해 했을 당시에 「공산당 선언」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저는 ‘빨갱이’가 돼있었을까요?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기분은 매우 유쾌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모노드라마라고 밝힙니다. 그래서 책의 구성은 주로 마르크스의 1인칭 독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재림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는 돌아왔다"라는 발칙함을 보여주며, 21세기 뉴욕으로 돌아온 마르크스가 관객(독자)을 향해 묻고, 묻고, 또 묻습니다. 자본주의는 승리하였는지, 승리했다면 누구에게 승리하였는지를 말이죠.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취한 까닭은 아마도 그동안 제기됐었던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마르크스가 직접 해명 혹은 반론하면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지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자못 흥미로운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마르크스조차 두려워했던(?) 정직한 비평가 아내 예니와의 대화가 그렇고, 아나키스트였던 바쿠닌과의 논쟁이 그렇습니다.

 


특히, 사회주의의 실패로 거론되는 구소련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소련은 경찰국가였지 결코 사회주의국가가 아니었다"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체제비판은 아직도 '유효'한 셈이죠.

 


저자는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가장 근접했던 사회로 파리 코뮌을 꼽습니다. 그것은 몇 개월 밖에 가지 못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최초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한 합법적인 정치기구였던 점을 근거로 듭니다. 거리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찼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항상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자주 웃는 거 같았습니다. 모두 친절하고 상냥했죠. 거리에는 경찰의 '경'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안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였습니다.

 


「공산당 선언」등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었거나, 혹은 여타의 마르크스 논쟁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좀 더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든 아니든,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었든 아니든 모두가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읽는 까닭은 아마도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르크스의 마지막 제안 때문일 것입니다.

 


저의 내면적 성숙을 도운 책으로 이 책을 꼽은 이유이기도 하죠.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니 시회주의니 하는 말은 하지 맙시다. 그냥 이 지구의 엄청난 부를 인류를 위해 쓰자고 합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도록 합시다. 식량과 의약품,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나무와 풀, 즐거운 가정, 몇 시간의 노동과 그보다 많은 여가 시간을 줍시다. 그리고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인간은 누구나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참, 마르크스가 왜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에 갔는지에 대해 답을 해드리지 않았군요. 그 이유에 대해선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한 ‘배려’로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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