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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군대 이야기 나오면 침묵했던 후배의 속사정

군대 이야기 나오면 침묵했던 후배의 속사정

살아가는 이야기/일상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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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병대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군 내부에 뿌리박혀 있는 잘못된 병영문화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군부내 내에서 알게 모르게 이뤄져 온 각종 구타와 가혹행위, 그리고 ‘짬밥’ 곧 ‘법’이 되는 내무생활이 뻔히 ‘존재해 온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와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게 좀 뻔뻔해 보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악습이므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비역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구타와 가혹행위에 대한 기억이 때로는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특히, 술자리에서 서로의 군생활이 더 힘들었다며, 그 근거로 제시하는 내무생활에는 꼭 구타와 가혹행위, 악마로 표현되는 선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하는 것이 바로 ‘군대 이야기’인데요. 지인들과 만났을 경우, 특히 남자끼리 모여 술을 마시게 되면, ‘군대 이야기’는 ‘여자 이야기’와 ‘연예인 이야기’, 그리고 ‘정치 이야기’와 더불어 꼭 하고 넘어가야 할 필수코스가 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으레, 해병대나 특수부대를 전역한 사람이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그 다음은 전방에서 근무한 사람이 어깨에 힘을 줍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심리적 위계질서가 잡히는 상황 속에서 유독 침묵하는 이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얼마 전 공익근무를 마치고 소집해제 된 후배입니다.

 




그 후배의 경우에는 누가 먼저 물어보기 전에는 자신의 군생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 아닌데요. 과연 공익은 힘들었던 군대의 추억을 훈장처럼 생각하는 현역 출신 예비역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솔직한 심정을 한번 물어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회적인 시선 자체가 공익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아. 그렇지? 그런 시선을 직접 느낄 때가 있어?

 

“당연히 많죠. 그런데 솔직히 저도 멋있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맞으며 어깨에 총을 메고 나라를 수호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체중 미달이 나와 훈련소에서 5일 만에 퇴출당한 거예요. 그땐 너무도 뜻하지 않은 일이라 너무 놀랐는데, 이젠 뭐 다 지난일이니까... 오히려 집에서 자유시간도 갖고, 전역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공익을 가게 되었다는 후배는 지나고 보니 오히려 공익 생활이 더 좋았다고 평가했는데요. 그런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대놓고 이야기하기에는 괜히 손가락질 받을까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모여 군대 이야기 나눌때는 좀 신경쓰이는게 사실이지?”

 

“뭐랄까.... 당당함? 현역 나온사람들은 군대 이야기할 때 뭐 그런게 있잖아요. 어차피 똑같이 2년 보낸건 맞는데, 더 힘든 곳에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당당하게 표현하는 형들 보면 좀 그렇긴 하죠... 괜히 제가 이야기 꺼내면 ‘공익이 뭘 아냐고’ 그런 소리 나올거 뻔하고...그래서 그냥 기분 맞춰주려고 저는 아무 소리 안하는 편이에요.”

 


후배는 본인 스스로에게는 떳떳하지만, 괜한 불상사(?)를 막기 위하여 왠만하면 군대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될수 있으면 말을 아끼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후배가 공익 생활을 하면서 어떤 업무를 담당했는지 궁금해졌는데요. 일종의 보직을 물어보았습니다.


 

“전 연구소에서 근무를 했는데요. 오전에는 연구소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청소를 시작으로, 점심을 위한 장을 보기 위해 시장을 다녀와요. 오후에는 시험용 동물들에게 사료를 주고, 연구소 텃밭의 채소를 가꾸는 일을 하고요. 그 밖에 제가 담당했던 업무로는 나뭇가지를 자르는 일이나 제초작업, 커피심부름 등이 있죠."

 


순간 저도 모르게 “편했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는데요. 그러자 후배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습니다.

 


“현역 중에도 부대마다 사정이 다르잖아요. 편한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죠. 공익도 마찬가지에요. 일하는 영역이 다를 뿐, 우리 역시 연구소 안에서 일하면서 받는 스테레스는 일반 현역과 다를 바가 없거든요.”

 


‘어디서 목소리를 높이냐는’ 저의 장난에, 후배는 곧 이성(?)을 되찾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는데요. 공익의 경우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라고 합니다. 주로 공무원들과 일을 하는데, 이들이 공익의 존재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죠. 물론 그들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공익이 있는 것이지만, 소각로 청소라든지 각종 폐수처리, 가축 똥으로 뒤범벅인 사육장 청소, 땡볕 아래서의 나뭇가지 치기 같은 3D 일을 아주 자연스레 맡길 때면, 존재의 회의가 들 정도라고 합니다.

 


아.......어디에서 군생활을 하든, ‘군바리’에게 3D업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후배는 특히, 공적인 업무만 지시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시킬 때, 혹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불필요한 일을 시킬 때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털어놓았는데요. 공무원의 위계질서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고스란히 공익이 떠안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마디 했습니다.

 

“그런 불만 나한테 얘기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공익들 사이의 선·후임의 관계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는데요. 공익은 대부분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특별한 차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굳이 꼽자면,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의 경우 화장실 청소를 면제해주거나 밥을 먼저 뜨는 특권을 부여한다고 하네요.

 


혹시나 해서 끝으로 한가지 더 물어보았습니다.

 


“공익끼리 모여서 군대 이야기 나누면, 서로 더 자기가 힘들었다고 하지?”

 


이 후배 녀석. 말없이 미소만 남깁니다. 무언의 긍정인거 같습니다. 하하.



후배는 끝으로 ‘공익에 대한 현역의 조롱’은 결국 현역에 비해 좀 더 보장된 자유의 반대급부라는 생각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는데요. 앞으로도 당분간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침묵을 유지할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는 제가 “공익 너무 무시하지 말라”며 전도사로 나서야겠습니다. 편하고 안편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 아래 젊은 날의 소중했던 시간을 함께 보낸.. 공익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또 다른 전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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