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안인은 왜 예능을 해야 할까?
대중문화 이야기/이카루스의 채널고정
“요즘은 예능을 해야 음악도 되는 세상이 됐다”
21일 방영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이하 라스)>에 출연한 배철수의 이 한마디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예능이라는 것이 예전에는 하나의 홍보채널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노래와 앨범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능에 출연하지 않아도 인정받는 뮤지션이 존재하고, 꼭 예능 출연만이 음악을 알리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또 모든 음악인이 대중적인 성공만을 바라보며 작업을 하는 것은 더욱 아니기에, 예능을 해야 음악도 되는 세상이란 건 어쩌면 반만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뮤지션이 <라디오스타>나 <무한도전>처럼 인기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리면, 덩달아 그의 음악까지 재조명을 받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놓는 앨범마다 실패를 거듭하던 데프콘이 <무도> 출연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사실과 예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기반으로 매월 ‘월간 윤종신’을 발매하며 음악적 실험을 계속해 나가는 윤종신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수많은 뮤지션이 이런 예능의 수혜를 입었으며, 많은 뮤지션이 손꼽아 예능 출연을 기다리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대체 왜 음악인은 예능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음악이 유통되는 방식과 이를 듣는 대중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흔히 오늘날 음악을 우리는 ‘소비한다’라고 말한다. ‘소비’란 말 그대로 ‘써서 없애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음악이 한번 듣는 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없애다’란 표현을 쓴다. 바로 거기에 오늘날 음악의 본질이 녹아있다.
불과 며칠 만에 순위가 요동치는 것이 음원 사이트의 현주소다. 인기 있는 가수가 새로운 앨범을 발매하면, 그 음원들이 1위부터 10위까지를 차지한다. 이른바 ‘음원 올킬’ 현상이다. 그리고 하루 만에 다른 가수의 음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음원사이트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인기곡 순위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차트 상위권 에서 멀어지면 그 음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창작물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사장되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가수들이 예능에 출연하여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거나 혹은 충격적인 발언을 통해 이슈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건 그래서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한 시간이 됐든, 하루가 됐든, 우선 음원을 차트 상위권에 올려야 호평이든 혹평이든 대중의 평가를 받을 것 아닌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그 방법만으로 몰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음원사이트가 아니더라도 노래와 음악이 유통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는 것일 테다. ‘음원 올킬’을 못해도 언론과 방송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또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프로그램이 많아진다면, 뮤지션들도 조금은 숨통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이승환은 음악은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소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듣고 싶을 때, 언제든지 꺼내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어야 한다. 유행이 지났다고 듣지 않는 것, 차트에서 멀어졌다고 해서 재생하지 않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상품에 불과할 뿐이다. 뮤지션들은 한번 쓰고 없애는 상품이 아니라, 언제 들어도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질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사회는 그런 뮤지션들이 아무런 걱정없이 음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다 다양한 채널과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예능 역시 뮤지션들에게 있어 생존의 장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예능을 해야 음악도 되는 세상이란, 왠지 모르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